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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낮 Oct 31. 2024

62-1

편집자가 침묵하는 이유 

얼마 전 소설 3교를 보냈다. 이번 소설 작업은 좀 속상했다. 내가 2교에서 수정한 내용을 작가가 많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열자 자리에 적힌 내 이름에 빨간 줄을 그어 삭제 표시를 했다. 돌이켜보면 별 의미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  


작업을 마치고 살펴보니, 이번 교정지는 좀 묘했다. 내가 수정한 문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 문장을 통째로 뺀 게 여러 개다. 일부는 문장을 지우고 새로 적었다. 우연인가 싶은데, 그런 문장이 꽤 됐다. 사실 글자 몇 개 바꾸는 교정만으로는 바로잡기 어려운 어색한 문장들이 있다. 그럴 땐 작가가 다시 쓰는 게 낫다.  하지만 이번 교정지는 느낌이 좀 달랐다.


작가 중에는 내가 교정한 조사 하나를 다시 점검해 더 훌륭하게 바꿔 놓는 사람이 있다. 의미가 담겨 있는 조사를 내가 잘못 건드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교정 내용을 확인한 뒤 확실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다시 적는 작가도 있다. 사실 긴 글을 보다 보면, 모든 문장에서 완벽하긴 어렵다. 그러니 세 번씩 보고, 번갈아 보는 것이다. 나는 교정지를 열심히 보는 작가를 신뢰하고 존경한다. 자기 문장에 '바른' 고집이 있는 게 멋지니까. 일반 독자가 알면 놀라겠지만, 경험상 교정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 작가가 훨씬 더 많다. 이와 별개로 나는 문장력 있는 작가보다 주제 의식 있는 작가가 훨씬 위라고 여긴다. 그래서 작품에서 만난 비문으로 작가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번 교정지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싸했다. 작가는 자기 문장에 빨간펜 그은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듯했다. 작가가 새로 적은 문장은 완벽하지 못했고, 오타도 있었다. 내 빨간펜이 그어진 문장을 버리다가 이야기의 인과관계에 오류가 나기도 했다! 그런 걸 살피고 있자니 황당했지만, 나는 작가의 요청대로 되도록이면 문장을 수정하지 않았다. 어색하더라도 작가가 고치지 않겠다고 한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표시만 해두었다. 


일을 끝내고 여유가 생기니 좀 감정적인 면이 보였다. 

내 교정지에는 문장 교정 외에 소설의 오류(앞에 나온 내용과 상충하는 상황 설정 등)를 지적하는 메모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작가는 내가 초교 재교에 지적한 자잘한 오류들을 모두 수정했다. 나는 '틀린' 게 보이면 빨간펜을 그을 수밖에 없다. 그게 내가 돈 받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후의 처분은 당연히 작가 몫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다시 살펴봤더니, 속상할 것 같았다. 작가가 교정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내가 속상했던 것처럼. 지적은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고생해서 쓴 장편소설인데, 여기저기 고치라는 메모가 많았으니 짜증 났을 것 같다(예전에 이 작가의 단편소설을 교정볼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혹시 나만 문제가 없었던 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문장 하나를 썼다 지웠다 하는 마음을 아니까. 


새로운 책의 원고를 받았다. 초교를 보는데, 좀 소극적인 자세가 된다. 이전 책의 영향이 있는 듯하다. 작가의 표현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교정을 보고 있다. 아, 그런데 문장 호응이 안 맞으니 또 손을 안 댈 수가 없다. 오늘도 메모를 계속 달았다. 이렇게 수정하길 제안한다고. 


편집 후기 같은 글을 종종 쓰는 것은 내 작업에 도움이 된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는 옆에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은 출간을 앞둔 혹은 출간한, 책이나 작가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다. 솔직하려면 나를 감추는 수밖에. 어떤 편집자는 '왜 이런 원고가 내게 들어오는 걸까'라고 푸념하는 글을 적었다가 그 당시 작업하던 작가와 크게 틀어져 버렸다. 그 편집자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하고 있었고, 화가 난 작가는 글의 당사자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오해를 풀긴 쉽지 않았다고. 


브런치는 참 숨기 좋은 글쓰기 플랫폼인데, 그래도 늘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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