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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사람

by 대낮

어떤 해거름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해거름은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일. 또는 그런 때를 말한다. 어느 날 문득 해가 영영 저버린 듯 느껴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지난 것이 아니라 밝고 뜨거웠던 인생의 어떤 시기가 지나버린 듯 느껴지는 것이다.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열심히 궁리하지 않을 때, 옷 고르는 일이 귀찮을 때, 통장에 큰돈이 입금돼도 기쁘지 않고 덤덤할 때 그렇다(곧 출금될 돈일뿐).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될까.


두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 1

몇 달 전, 대학병원 화장실.

대기줄이 길었다. 한 어르신이 한 명 한 명에게 양해를 구하며 줄 앞쪽으로 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이 화장실 칸을 사용했는데, 휴대폰을 두고 나왔어요. 다음 차례에 잠시 들어가 확인만 하고 나오겠습니다."

어르신의 말투는 반듯하고 예의 발랐다. 다행히 누구도 시비 걸지 않았고, 어르신은 화장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은 거기에 없었다.

"몸이 아프니 기억도 온전하지 못해서...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렵게 본인 사정 얘기까지 하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가만히 있었다.

어떡해요. 다른 데 두셨나 보네요. 진료실 쪽을 한 번 가보세요. 이런 말은 들리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어르신의 깍듯한 예의가 무색해졌다.


# 2

다른 장면은 버스 안에서.

어르신은 홈플러스에 가냐고 물으며 버스에 탔다. 기사는 간다고 했다.

한참 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할머니가 소리쳤다.

-홈플러스 간다며?!

-네.

-이거 아니잖아. 간대 놓고 왜 안 가!

-아니 왜 다짜고짜 반말이세요!

싸움이 났다. 그 버스 노선에는 홈플러스가 두 개 있었다. 기사가 말한 홈플러스는 노선 끝까지 가야 있었다. 할머니가 말한 홈플러스의 정류장 이름에는 홈플러스가 없었다.

애초에 할머니는 방향을 잘못 알고 버스에 올랐던 것이다.

할머니가 우악스럽게 반말로 고함을 쳤고 기사 아저씨도 지지 않았다.

모두가 그걸 보고만 있었다. 나도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리더니 정차해 있는 차를 향해 욕까지 했다.


언젠가 초등 아들은 내게 물었다.

-엄마 버스 탈 때 이거 어디 가냐고 묻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야?

-궁금하니까. 확인하려고.

-그걸 모르면서 버스를 탈 수 있어?

-자주 안 나오면 모를 수 있어. 우리도 기차 탈 때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있잖아.

-핸드폰 보면 되잖아.

-물어보면 누구든 대답해 줄줄 알았겠지. 어르신들은 핸드폰보다 그게 쉬우니까.


노인이 아니더라도 낯선 사람에게 대꾸해 주는 사람은 보기 드물어졌다.

핸드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묻는 것은 민폐라는 것이 새로운 예절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노인 쪽이다.

나는 욕하는 어르신을 상당히 싫어한다. 예의 바른 어르신이 당연히 좋다.

그런데 노인들은 예의 발라도 욕을 해도 세상 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세대 차이나 문화 차이 세계관 차이가 아니더라도 늙은 사람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들은 자꾸만 세상과 어긋난다. 그들에게 대꾸해 주는 이들이 줄어든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인지 어제 본 영상에서는 코뿔소도 늙으면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산다는 내용이 나왔다.


덤덤해졌다가도 쓸쓸하고, 홀가분하다가도 외로운, 늙은 사람들.

내가 늙은 사람이 됐을 때,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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