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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joou Nov 02. 2022

첫 번째 사건 기록; 부당함

나에게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을 기록하기

나의 10대 시절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이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을 받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는 또래와 비슷한 언어와 행동, 사고방식 그리고 관점들이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나는 그것에 부합하지 못한 아이었다.

그런 일상이 나는 늘 의아 했고, 지인들은 대체적으로 불편해했다.


그중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몇 가지 주요 키워드 중 ‘이치에 맞지 아니하다’라는 뜻의 ‘부당함’이 떠오른다. 여기서 ‘이치’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를 의미하는데 내가 기록하고자 하는 두 개의 사례를 보면 모든 면에서 부당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부당함’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약 50대 정도의 정년을 앞둔 분이셨다. 3학년에 올라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책에 칠판 글을 받아 적고 있을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내 옆에 오시더니 갑자기 나의 손을 세게 내리쳤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고,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을 그렁거리던 나 자신이 떠오른다.


그가 나의 손을 가열차게 내리쳤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내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이었다. 왜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안되는지 아마도 말하셨겠지만 나는 납득하지 못했고, 3학년 내내 수업시간에는 늘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야만 했다. 나는 그저 왜 왼손을 쓰면 안되는지 다시 질문하기 두렵고 혼나기 싫은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이 불편했던 9살이었으니까. 4학년이 올라가자마자 나는 다시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편했고 나다웠다. 그래도 그 덕분에 깜지를 쓰거나 한자 숙제를 할 때 양손을 번갈아 가며 글씨를 쓸 수 있는 스킬을 터득하게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6학년 1학기 때였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린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싶었다. 아마도 친언니가 같은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학생회장을 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릴적엔 언니가 하고, 갖고 있던 모든게 좋아보였던 동생이었던 것 같다. 


결심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선거에 출마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달래며 2학기 때 출마하자고 설득했다. 그 이유는 1학기에는 남자가 학생회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도 역시 납득하지 못했다. 성별이 어째서 선거 출마의 순서표가 되는것인지.

하지만 여전히 난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12살의 아이였다.


나는 한 학기 내내 그 아이를 질투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2학기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각종 시와 도에서 주최하는 행사들이 하반기에 모두 몰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흥미로운건 자신보다 더 큰 임명패와 지역 방송사와 신문 지면에 출연하는 모습에 그 아이 또한 한 학기 내내 나를 시기했다. 

결과적으로 한 반에서 모두 학생회장이 나왔으니 최고의 승리자는 담임선생님이었으며, 우리는 1년 내내 서로를 시기 질투했으니 패배자나 다름이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왜’라는 질문을 꼭, 자주 하는 사람으로 컸다. 납득을 하지 못하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라는 답변을 결코하지 않는 고집센 사람으로 자랐다. 두 번째 직장에선 팀장님이 "너는 왜 그냥 '네 알겠습니다'란 말을 못하니?"라고 하소연 하시던게 생각이 난다.  

어쩌면 이 두개의 사건이 나의 이런 성향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생각보다 크고 작은 부당한 일들이 많다. 그저 똑같은 일상이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 당황하거나 인식하지 못한채 그 상황을 지나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자신을 누구나 한 번쯤 발견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왜’라고 꼭 물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수긍하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 작은 조각들을 손에 쥐고서 나 나름의 퍼즐을 맞추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 됐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할테니까.


내가 가장 나답게 사는 방법 중 하나는 나를 결정짓는 '키'를 내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이 키가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나에게는 맞아야 한다. 그래야 이 무한한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는 내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다. 그게 은장도와 같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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