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과 희망이 어우러져 때로는 술에 취해야 견딜만한 우리네 인생사
영화는 키에르케고르가 쓴 격언으로 시작한다. 젊음과 늙음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도 번번이 입시에서 실패한 한 학생의 마지막 졸업시험에서도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에 대한 격언이 언급되는데, 그 학생의 상황과 이를 지켜보며 격려하는 선생의 상황 각각에 모두 겹쳐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다른 또래는 쉽게 거쳐가는 것 같아 보이는 삶의 한 시절이 유난히 버거운 한 젊은이에게도, 젊은 날의 단계를 모두 거쳐 안정에 이르렀으나 동시에 권태에 빠진 중년의 선생에게도, 삶은 불안하다. 이들은 술을 매개로 서로의 고통에 다가서고, 다가감의 동작이 만들어내는 희망을 본다. 나는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의 형태가 다르지만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삶의 진실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것이 참 귀한 것임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마르틴은 한 때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선생이었다. 지금은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젊은 날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모두가 자신을 지루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만 같다. 다행히 그와 친구들에게는 서로가 있다. 가장 무기력해보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역사 선생 마르틴은 가장 먼저 0.05% 알코올 농도 유지하기 실험을 시작한다. 활기를 되찾은 그의 변화를 보면서 다른 세 명의 친구들도 본격적으로 함께 실험을 시작하고, 총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보고서가 작성된다. 심리-수사학적 어쩌고 있어 보이는 단어가 그럴 듯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재밌다.
마르틴이 적당히 취하면서부터는 학생들에게 재밌고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가족과의 문제도 해소되는 듯이 보인다. 아이들도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아내는 다정히 다가오는 마르틴에게 그리웠다고 말한다. 막막한 듯 눈물을 보이는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적당히 덮고 모른 척 넘어가려던 예감은 결국 만취를 통한 객기를 빌려서야, 아내의 외도 사실과 마주하게 되면서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다가온다.
다른 친구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술은 권태로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지만, 결국 술은 술을 부르고 술이 술을 먹는 지경에 이른 그들의 현실은 전보다 더욱 비루해진다. 삶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술기운은 분명 좋은 수단이 되어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임시방편이다. 과거의 실패와 부족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 정말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용기를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비틀거리는 와중에 우아한 매즈 미켈슨과 마지막에 나오는 ost가 잘 어우러져 인상적인 라스트 씬을 완성했다. 비극과 희망이 어우러져 때로는 술에 취해야 견딜만한 우리네 인생사,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을 한바탕 춤에 담아낸다. 실패, 불안, 노화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생에 취해 춤추듯 살아갈 것. 고 이어령 평론가의 말을 빌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