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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30. 2022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직접 세계를 짓고, 잠시 머문 뒤에, 스스로 허물고 흩어지는 사람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이제 이 가사를 좀 안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며 들을 수 있게 됐다. 처음으로 참여한 연극이 막을 내렸다.


   우리는 종종 어떤 경험을 기점으로 우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고 표현한다. 경험을 겪어내고 나면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에 대해 가끔 곰곰이 생각한다. 새로운 내가 되는 것과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 그 경험이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내가 겪은 경험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하는 소소한 물음들을 이리저리 연결지어 본다. 어쨌거나 이번 글은 인생 처음 연극에 참여하면서 새롭게 가지게 된 시선에 대한 기록이다.


   스탭을 충원하는 기간의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 이번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커서 합류했다. 코로나로 2년 동안 극을 올리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준비하게 되면서 급하게 스탭을 구하는 것이었다. 연극은 연출, 조연출, 기획, 무대, 배우, 조명, 음향, 의상/소품, 디자인 각 파트의 공연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중 한 팀의 팀원으로 합류하면서, 얼떨결에 연극회의 정식 일원이 되었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사소하지만 꾸준한 난관들이 있었다. 코로나19로 동아리 활동이 금지면서 연극을 올리는 것조차 불투명해지자 새롭게 외부단체로 극단을 만들어야 했고, 대학 내 공연장이 아닌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올려야 했다. 선뜻 후원을 해주겠다던 어느 단체가 돌연 미안하다며 취소를 통보해오기도 했다. 배우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연습이 중단되기도 했고, 우리 팀의 스탭들은 코로나에 걸린 와중에도 줌으로 온라인 회의를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공연을 올리기 이틀 전에는 주요 인물을 맡은 배우가 확진되면서 급하게 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명만 더 걸리면 3개월 동안 공들여 준비한 연극을 정말로 못 올릴 수도 있어서 꽤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공연 주간동안은 스탭 중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 준비했던 연극의 내용은 액자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관객들은 프레임 속의 프레임을 보고 있다가, 결말 부분에서 실은 하나의 프레임이 더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름의 반전과 주제의식을 깨닫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원작을 거의 그대로 가져갔지만 연출님이 생각한 주제의식이 좀 더 두드러지게 약간의 각색이 들어갔다. 내가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 생각했던 해석과는 약간 다른 방향이었다. 액자식 구조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무대 구성도 앞쪽, 뒤쪽에 액자 같은 기둥을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없는 기둥을 만들어 세우는 것을 보고 꽤 놀랐다.


   연극의 내용과 별개로, 나 역시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여러 겹의 프레임을 가지고 새롭게 연극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경험이었다. 기존에는 관객으로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극 바깥에서 진지하게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을 보았고, 또 한 발 물러나서는 그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배우들 개개인과 뒤에서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는 많은 스탭들을 보았다.


   내가 속한 팀의 경우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했어서, 무대 셋업 기간에 처음으로 현장에 나가보았다. 무대 감독의 지휘를 따라 열심히 땀 흘리며 배우, 기획, 무대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공연진이 무대 제작에 참여했다. 때로는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엄격하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만들었다. 나는 연극회에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아 현장에 있으면서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았는데, 왜 예술계가 더 권위적이라고 하는지 조금 이해했다. 물론 다들 친한 사이이고 서로 배려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친절하게 얘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굳이 강하게 의견을 얘기하는 것 같은 장면들이 가끔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 말하길, 내가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권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의견을 내고 쉽게 굽힐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무대 셋업을 마치고 처음으로 만들어진 무대에서 배우들이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떠오른 감상들이다. 조명 포커싱을 하느라 배우들이 연출과 조명감독의 지시에 따라 동작을 멈췄다가, 했던 장면을 반복했다가, 두 배속으로 대사를 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건 감동이라기보다, 저들은 저런 방식으로 이 세계를 견뎌내기로 결정한 사람들이구나, 저 작은 세계로 걸어들어오기 위하여 직접 그 생김새를 빚고, 빛과 시간의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슬픔이었다.

   기존에는 잘생긴 배우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화려한 모습만 보았다면, 이번에는 아직 학생이거나 이제 막 배우를 본업으로 삼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 며칠 동안 직접 무대를 땀 흘리며 짓고 몇 개월 동안 수 없이 연습했을 연기를 하며 안간힘을 다해 무대에 머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당연히 완벽한 연기는 아니었고, 조금은 어색하게 과장된 대사처리가 가끔씩 보였다. 그래도 충분히 벅찼다. 사실 어떤 관점에서는 굉장히 무용한 과정이다. 이렇게 고생해서 만든 아주 작은 세계는 3일의 연극이 끝나면 곧 무너진다. 원래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전문인들도 아니어서 돈도 못 번다. 그런데, 왜. 나를 포함한 이들은 이런 일을 하고 있지?

   모든 말과 동선이 완벽하게 설계된 아주 제한적인 작은 세계, 이런 세계를 지어야 지금의 세계가 견딜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크게 보면 새로운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써내야 하는 사람들,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머릿 속에 떠다니는 멜로디를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해야 하는 사람들, 수많은 창작자들이 창작을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그 방식이 세상을 견뎌내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연극은 끝나면 물질적으로 쥐어지는 것이 없으니 좀 더 특수한 측면이 있지만, 비교적 생생한 하나의 세계를 잠시나마 짓는다는 점에서 창작 중에서도 유일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컴컴한 관객석에 앉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밝은 조명 아래 감독의 지휘에 따라 엄중하게 움직이는 배우들을 지켜보았다. 저 세계는 이 연극이 끝나면 곧 무너지겠지. 다시 돌아온 원래의 세계에서 그들이 무사하기를, 부디 조금만 쓸쓸해 하기를, 혼자 속으로 바랐다.


   그렇게 준비를 무사히 마치고 3  공연을 올렸다.   전에 전문 극단에서  이야기를 처음으로 연극으로 만드셨던 감독님도 방문하셨고, 연극회를 거쳐  많은 선배님들이 다녀가셨다. 몇몇 분은 돈이  봉투와 주스 같은 간식거리를 쥐어주고 가셨다.  공연진은 우연히 식당에서 유명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공연 이야기를  그는 선뜻 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를 지키기 위해 그가 실제로 방문하는 재밌는 일이 있기도 했다. 이외에도 공연진들의 지인들이 꽃을 사서 방문하는 다정한 광경들이 있었다.  역시 배우가 아니었음에도 작년에 시험 공부하던 애가 공연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지인들이 몇몇 와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책상  켠에서 말라가고 있는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온다.


   공연 마지막 날에는 쉴 틈도 없이 극장을 비워야 하는 시간 전에 무대 철거에 돌입했다. 어설프게나마 열심히 뛰어다니며 짐을 나르고 쓰레기를 분류했다. 뒤풀이는 나중으로 미루고 밤 열한 시 즈음 지하철에 탔다. 우리가 지은 세계를 스스로 허물고 돌아오는 길,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현실로 덤덤히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연극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남긴 나의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 공연이었다. 몇 년 동안 내가 미련을 가지고 있던 어떤 대상을 떠올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리기로 다짐했다. 안녕, 혼잣말로 인사를 건네면서. 다시 앞서 말한 내용으로 돌아가서, 이번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는 분명 조금 달라졌다. 이후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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