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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un 07. 2023

Q 새벽 3시25분 이 사람들 도대체 뭘 하는 걸까요?

드로잉, 타로, mbti, 맛있는 거, 사색에 진심인 자

이거이거 무슨 대화하는거야?


고대 상형 문자 동굴 문자를 닮은 책상 위 화려한 낙서들.

새벽 5시 29분까지 뭐가 이리 재밌길래?

도대체 이 모임은 무슨 대화가 오가는 거지?

궁금하면 뽀미님 소셜링에 오시면 됩니다.


밤샜지 짤

한옥 드로잉은 우천으로 취소돼서 뽀미님의 놀이터에서 드로잉을 하게 됐어요.


초면에 존댓말이 편한데..

첫 시작 반말하는 규칙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어요.

편한 분위기에서 말을 하고 코드가 맞으면 수다쟁이가 되는어떤 사람들과는 낯을 가려서 조용해지곤 해요.

반말이 점점 익숙해지지만 내가 반말하는 건 불편해요.


메인은 그림 그리기라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서 초반에는 주변 사람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완전 잘 그리진 않아도 드로잉에 진심인 자

외향, 내향이 반반인데 멀티가 안 돼서 그림 그리거나 집중하며 뭔가를 하고 있을 때는 말이 없어져서  내향인 같단 소릴 듣곤 .


그림을 더 수정하고 싶었는데 마감 시간에 미완의 아쉬운 여운을 뒤로하고 정성 가득 뽀미님의 핸드메이드 홈파티 음식들을 맛봤어요.


상큼하게 절인 토마토와 닭꼬치 구이, 부드러운 고기, 김치전, 포도 등이 모두 맛있어서 감탄했어요.

단백질과 과일은 사랑이징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잡채. 꺄아.

이봐... 주인장 이거 이거 남는 게 없잖아.

참여자 1은 주인장이 걱정되기 시작해요.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의 다양한 취미 대화가 오갔어요.

사실 일찍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타로를 봐준다는 솔깃한 이야기에 끌려서 다시 조용히 착석했어요. 

타로, 사주, mbti는 꿀잼이지. 꺄륵 너무 재밌잖아!!

이런거 넘 재밌어. 전 좀 과몰입러였어요.

나는 욕심많은 막대기 콜렉터.

주인장의 취미들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에서 카드캡터체리의 마법진을 닮은 양탄자 위에 슬며시 꺼내드는 비장의 타로 카드들의 향연.


어쩌다 보니 일도, 사랑도 이것저것 다 묻고 싶었는데 '언제 또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를 물어보게 됐어요. 현재 상태는 스스로  연애 생각 없이 자기계발 셀프 케어를 좀 하려고 한다는 거 기막히게 맞추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멀티가 안되서 일 아니면 사랑 둘 중에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도 지금은  나를 위한 시간을 쏟겠다고 하는 것도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욕심쟁이였어요.


솔루션은 다 하려고 내 능력 이상으로 자꾸 욕심부리지 말고 10개 중 3개는 좀 내려놓아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2개월 안에 자연스레 가치관과 말이 잘 통하는 여왕 같은 여유를 가진 인연을 만나 3개월 안에 연애를 시작한다는 풀이가 나왔어요.


?? 그럴리가 없는데? 2, 3개월 너무 빠른데???


한동안 지쳐서 쉬고 싶고 혼자 있는 자유로움이 좋아서 연애를 시작할 준비도 안 됐고 이 여유를 즐길 생각이라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보여도 굳이 매력을 안 보려고 차단하는 시기예요. 지금은 나를 돌보며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그냥 지금처럼 맘 편히 나를 케어하며 채우고 회복하자연스레 인연이 오겠지. 싶어요. 다음 사랑을 위해 추스르고 준비하는 시기 같아요.


사주에서는 말년에 자수성가해서 많은 부를 거두지만 인생이 순탄치 않고 남자가 없다는 부정적 풀이를 들었는데 타로는 미래에 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희망 편을 얘기해 주니 좋더라고요.


그냥 지금처럼 자신을 돌보고 할 거하면 자연스레 다시 새로운 인연이 찾아든다는 얘길 들었어요.


오 좋은데? 괜히 기대하게 되고 기분이 좋았어요!

누가 짝꿍이 될진 모르지만 다음엔 놓치지 않도록

여유있는 사람이 되도록 날 채워야지!


타로를 100% 믿진 않지만 그냥 기분 좋게 미래를 꿈꾸도록 매듭짓게 만드는 게 좋았어요. :)

사람들의 특징이 드러나는 그림 모음

타로 이후에는 경험치 만렙의 매력적인 entp 주인장의 말에 점점 빠져들어요.


밤새 여러 이야기들을 하며 탄생한 동굴 벽화를 닮은 낙서의 흔적들. 함께 이야기하는 건 참 재밌어요.


정성 가득한 집밥,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 매주 소셜링을 열지 않고 바쁘신 분이니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 분들은 뽀미님의 놀이터가 뜰 때 경험해 보시길 추천해요!!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은 매력적이에요.

요리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듣고 개인적인 얘기들을 밤새 나누며  여러 가지 시도 속에 빛나는 뽀미님과 다양한 사람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러 사람들과 그림을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는 건 행복이에요.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

뽀미님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였어요.♡


막대기 콜렉터.  선물로 받은 타로.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 배설하기

이따금 머릿속 생각이 너무 많아서 두서없이 정해진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글로 토해내고 친구와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작업을 해보곤 해요.
아님 머릿속 생각이 하얗게 비워지도록 운동을 하기도 해요.
운동과 글쓰기, 말로 생각을 비워내는 과정이 없었다면 복잡해서 정말 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릴 땐 단순하고 섬세한 s가 이따금 부럽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좀 잡생각이 많은 n인 나의 상태도 좋아해요.

잘 써서 정리하는 글이 아니고 그냥 마구잡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잡한 상태로 종종 생각들을 배설해 봐요. 그중에 몇 개는 추려서 다시 정리해 보면 좋은 글감이 되기도 해요.

경험에 따라 내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 변화 추이를 지켜보는 게 좋아서 반복되고 정돈되지 않았어도 그냥 날 것 그대로의 그 생각을 남겨두는 것도 좋아해요.

그냥 그때의 솔직했던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고 서툼을 볼 수 있고 조금은 성숙해져서 돌아봤을 때 이전에 글들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땐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구나.
그만큼 내게 간절한 무엇이었기에 괴로워했구나 싶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닌데.. 우습기도 하고

이때는 정말 행복했구나. 근데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 행복에 취해서 생각보다 글을 안 남겼던 경험도 많은 것 같아서 행복했던 것도 좀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수정하고 예쁘게 쓰려고 한 글보다 그냥 별로였던 나의 흑역사도 썩 애정하는 것 같아요.
글을 기록하고 남기면 나의 성장기를 볼 수 있으니까요.

잘 쓰지 않은 투박하고 별로인 조금은 솔직한 나의 글들은
가끔 황당하고 어이없고 재밌을 때도 있어요.
그냥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게 아닌 그냥 나의 상태의 기록이죠.

앞으로 이 기록들은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바뀔 것들이니까요.
남겨두면 재밌는 것 같아요.
지금의 나와 미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은 분명 다를 테니까요.

다음은 나의 다양한 생각 모음이에요.

Mbti가 전부 맞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메타인지가 높다면 그때그때 바뀌는 선호, 상태의 지표다 보니 살펴보면 재밌어요.


Entp 주인장 덕에 떠오른 nt 특징들

NT 친구들은 NF 특유의 섬세함, 따뜻함, 편안함, 인류애, 이상적, 가치, 의미, 진정성, 힐링, 결이 맞는 느낌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들이 있어요.


NT 유형 친구들을 보면 똑 부러지고 아는 지식들과 옳고 그른 것, 현실적인 논리를 설명해 주고 지적 호기심들  충족시켜 줘서 함께 있을 때재밌을 때가 많았어요.


진짜 세상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보완해 주면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며 상상에 나라(?)에 가 있는 날에는 현실로 끄집어내 주고 진지하고 심각한 생각에 깊게 빠질 때 농담하듯 가볍게 툭 환기시켜 줘서 오히려 사이다 같고 편안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땐 극단적인 찐 내향인 infj(p) 시절은 무조건적인 감정적 공감이 중요했고 넘 팩폭을 아프게 날리면 쭈구리가 돼서 지구 내핵을 뚫을 기세로 숨어버리곤 했어요.


근데 조금씩 나이가 드니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같이 상상에 나라에서 회피하며 행복 회로만 돌리는 것보단 실질적 해결책, 대안을 제시해 주는 친구가 좋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혼자 펑펑 울고 와서 괜찮은 척할 억지웃음을 짓고 있을 때 별거 아니라며 함께 웨이트로 힘들게 굴려주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던 T친구의 솔루션은 아직도 기억에 남고 고마워요.


그땐 너무 고마워집 가서 감동으로 눈물이 찔끔 나고 세상은 살만하고 너무 아름답다면서 일기 쓰듯 글로 남겼던 기억이 떠올라요.


그래서 함께 행동해 주고 같이 감정으로 빠지기보단 움직임으로 힘든 상황을 환기시켜 주던 친구의 위로 방식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T 유형의 친구들이 F친구들을 무조건 따라가려고 하며 감정적 공감만을 하려고 들며 자신을 너무 바꾸려들지 않고 해결책 제시도 좋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F는 F대로 매력이 있고 T는 T대로 매력적이니 서로의 다름을 알고 이해하고 배우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유행 중 요새 너 T야? 이러면서 손가락으로 T 만드는 거 T친구들 마음 상하면 어쩌지?라는 괜한 걱정이 됐어요. 뭔가 장난인데 T도 로봇이 아닌 사람인데 T친구의 억울함 하소연을 듣고 난 이후로 뭔가 쫌 불편해지더라고요. 장난인 건 아는데 뭔가 선비에 진지충이라 전 장난이 이따금 불편해요. F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좋아하는 J라 그런지 기준없이 모호하게 선을 넘을랑 말랑 발언을 하면 이따금 불편해요.


어떤 장난들은 가볍게 즐기지 못하고 매사 진심, 진담으로 받게 되서 종종 삶이 피곤해요. 서브텍스트, 비언어적 제스처 자체가 가벼운 장난임에도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언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휘둘리곤 했어요.

남들은 지나가는 일들도 종종 불편감을 느끼게 되요. 그래서 정화할려고 예쁜 말 모음집인 시집이나 에세이도 종종 찾아보곤 했어요. 중심을 잡기 위해 일부로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요. 안 그럼 제 주관이 사라지더라고요.


타인이 부정적 감정을 하소연할 때 예전엔 다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고 싶었었는데 이건 사람에 따라 바뀌더라고요.

가끔 선이 없이 정이라는 말로 단호히 끊어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어요.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유지하고 연결시키려는 상대의 결핍감에 끌렸는데 헤어진 이후 그 모호한 연결감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고 미워하게 되니 아에 기억에서 도려내듯이 잘라내고 차단해야 또 내 삶을 살아가지. 싶었어요.


타인의 그 정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과 기준 없음이 때로는 희망 고문이 되기도 하고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행위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한 번 나를 동정했던 상대는 무의식 중에 나를 존중하기보단 내 태도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듯 불편감이 느껴지는 워딩으로 장난을 쳤어요. 그러다보니 나도 상대에게 존중할 수 없게 됐고 예전 같은 공감을 할 수 없는 상대를 판단하는 상태가 됐어요.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강하게 연결감을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서로의 거리와 선, 관계를 명확히 정의 내리고 지키는 책임감과 기준이 필요함을 느꼈고 선을 그음으로 오히려 관계가 더 유연해짐을 느꼈어요. 그 안에서 다름을 인정하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함께 할수록 서로에게  마이너스라 느껴지는 인연에게는 상대가 아이 같은 감정적 공감을 원하는 걸 뻔히 보여도 그 말을 해주기 싫어서 일부로 침묵하거나 상대가 듣기 싫은 쓴소리, 피드백을 내뱉게 됐어요. 상대와 공감하기를 거부한 거죠. 사실 상대가 원하는 답이 공감과 지지임이 뻔히 보여도 마음에 선이 생긴 순간 자연스레 할 수 없음을 느꼈어요.


조곤조곤 따지며 내가 느낀 의견과 경험(팩폭) 날리는 걸 상대는 분명 그런 것도 좋아한다고 본인이 말은 해도 분명 아프고 불편해지더라고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결국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라면 이걸 계기로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겠죠. 모든 사람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답정너란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이가 듣고 싶은 말은 감정적 공감이고 함께 옆에 있을 거라는 지지의 말일 것이고 그 심정을 알아주는 게 힘이 되고 누군가는 실질적인 해결책, 같이 행동해 주는 것이 원하는 답이니까요.


현명한 건 그 사람을 생각하며 경청하고 그 사람에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감동을 주는 게 아닐까 해요.

잘 듣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의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마음이 동해야 그만한 실행력을 가져다줄 수 있고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각자 원하는 것이나 결핍감에 따라 감동을 느끼게 되는 포인트들은 다 다를 것 같아요.


나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순간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일부로 안 하게 되고 내 경험담에 의거한 프로 팩폭러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불건강하니 오히려 내 경험에 의거해서 가능성보다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경험은 내 경험이니 상대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별 소용이 없을 때도 있는 거죠. 그게 때론 서서히 거리를 두게 만드는 방법인 것 같아요.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그 말을 던지더라도 그 말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공감은 한 겹 더 그 상대방을 이해하며 섬세하게 맞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때때로 공감보단 서툰 감정이입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하려면 경청을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정말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쓰고 에너지를 쓰며 상대방을 살피고 그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때로는 내 마음과 몸까지 아플 수도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아픔에 대한 공감은 꽤나 어렵다 보니 이젠 소수의 내 사람 한정 선택적 공감만을 하려고 해요. 오지랖은 이제 그만 부리려고요.


지난 목요일 모임에서 어떤 사람의 이야길 들었어요.

3주간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본인의 얘길 털어놓으셨어요.

굉장히 몸 컨디션도 가볍고 아픈 곳 하나 없이 기분이 좋은 상태로 모임을 갔어요.


근데 그분이 와르르 쏟아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대 맞은 것처럼 묵직한 무언가가 파도가 덮치듯 나를 강하게 짓누르고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갑자기 왼쪽 갈비뼈 라인과 윗가슴의 오른쪽 쇄골 라인 부근이 계속 쪼이는 듯 뻑쩍지근해졌고 먹먹한 감정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숨쉬기가 버거웠어요. 눈이 굉장히 뻐근하게 느껴졌고 오른쪽 뒷목 라인이 콱 잡은 듯 갑작스럽게 아팠어요.


가슴이 갑작스럽게 너무 아프게 아려오는 게 느껴졌어요. 해소되지 못한 분노의 감정이 먹먹한 슬픔으로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아서 눈시울은 붉어지고 자꾸 눈물이 맺혔어요. 갑자기 장이 뒤틀리는 듯 아프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것처럼 아팠어요. 이야기를 듣고 1분도 안 돼서 일어났던 몸의 반응이었어요.  즉흥예술 감독님은 신기있는 거 같다며 무당같단 얘길 하고 표현예술치료 선생님께도 영성이 있단 얘길 듣고  무용교수님께도 몰입감이 좋단 얘긴 듣긴 했었는데..그냥 과하게 감정이입하고 온 몸으로 받는게 이따금 굉장히 괴로워요.


난 그냥 복잡하지 않게 단순하게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고 싶거든요. 이 복잡한 작용을 글이나 그림으로 말로 배설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차단하고 살려고 하다보니 F지만 이따금 T같단 소릴 들었나봐요.

그렇게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그분을 꼭 안아주고 싶어서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 애썼다며 등을 두드려 드리면서 몇 마디를 더 나누었던 기억이 있어요. 상대방에게는 따뜻한 선생님이란 소릴 들었어요.


한번 상대에 심정을 마음과 직관으로 느끼고 나면 그 사람의 심정을 전부 헤아릴 수 없지만 마음으로 와닿아요.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그냥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이야기를 하라고 강요는 안 하지만 누군가 힘들 때 연락하라며 먼저 건네주었던 따뜻한 한마디가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말을 건네주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내가 힘들 때는 저 역시 들어줄 여유가 없더라고요.

그냥 사람은 잘 들어주는 것과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해결할 힘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여유가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했어요. 저도 힘들 때 굉장히 도움을 받았고 들어줬던 기억이 고마웠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감정 이입의 여파가 몸을 한번 쓸어내리고 난 이후 나와 비슷한 경험들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 대해 동정하지 않고 이해하고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감정 이입을 넘어서 마음으로 공감하려면 경험도 많이 필요하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근데 가끔 긴장이 풀리고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일 경우엔 원치 않아도 자동 감정이입이 순식간에 이뤄지다 보니... 내가 여유가 없을 땐 몸이 힘든 거죠.


여파로 몸살이 오듯 아팠어요.

포커싱 작업을 통해 왜? 이리 공감을 할까? 개인적 이슈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내 감정도 아닌 타인의 감정일 뿐인데 내 몸이 부서질 듯 아프니 현타가 오더라고요. 굉장히 답답하고 머리가 뜨거워졌어요.


난 화라는 감정보다는 슬픔에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했나 봐요. 근데 너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라 내 원래 감정이 아니고 그 에너지를 받은 상태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몸살에 운동도 못 하고 계획을 왕창 세운 걸 잠시 스톱하고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잠시 늘어져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을 참 좋아하는데 마음을 주거나 관심을 기울이면 그게 온몸으로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감정을 받는다는 거 공감한다는 게 한마디를 잘 못 던진다는 게 예민해서 힘든 탓에 때론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에너지가 없을 땐 일부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약간은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마음속에 선을 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나 봐요. 생각해 보니 유독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는 시기는 몸이 약해지는 pms시기였고 이 기간만 되면 주기적으로 3일 정도는 타인의 감정 상태에 유독 잘 휘둘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술도 안 먹고  운동하고 건강 챙기기에 유독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굉장히 예민하게 타인에게 휘둘리니까요.

그래서 규칙적인 습관이 무너지지 않게 루틴을 가질려고 했어요. 근데 잠을 늦게 자면 확실히 이성적인 판단이 무너지고 감정적인 상태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기 좋았던 것 같아요.


피곤하면 관심사가 많아 단톡방이 많다 보니 그냥 폰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 기가 빨려서 모든 에너지가 털리는 느낌이라 확인도 느려지곤 했어요. 평상시 밝게 나오는 텐션과 꽉꽉 채우는 풀스케줄, 외부에서 사람을 좋아해서 에너지를 쏟는 나와는 달라sns도 원래 잘 안 하지만 멀리하고 혼자서 산책을 하든 책 읽고 힐링을 해야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느낌이에요. 단순 지식을 전파하는 수업과 운동 모임, 무언가를 배우는 워크숍들은 오히려 에너지 소모가 적고 충전되는데 밀도 있고 딥한 이야기가 오가는 소셜링은 기 빨림을 경험해서 충전이 필요했어요. 소수의 사람과 1:1 대화는 충전인데 너무 많은 사람과는 기가 빨려요. 앞에서는 신나서 같이 둠칫거리며 놀 수는 있지만 굉장히 기 빨려서 잘 가질 않아요. 근데 놀게 되면 끝까지 남는 최후의 1인이 되고는 해요.


생각해 보니 타인의 불안한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투사하고 공감하게 되면 그 여파가 증폭되면서 내 불안함이랑 마주하게 됐던 것 같아요. 타인의 감정이었지만 그 감정이 나인 양 착각하고 잠식됐던 거죠. 썸이 끝나게 된 것도 상대와의 대화에서 봤던 상대방의 아주 작은 불안의 씨앗을 마주하고 공감한 이후 그 여파가 남아 내 속에 감춰져 있던 상대방과는 상관없는 다른 불안들을 건드려서 같이 증폭시켜 두려움이 커져 회피했으니.. 상대에 이야기를 다 듣고 감당하고 끌어안을 수 있다며 자신만만했던 내가 오만했단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면 상대를 지켜주고 싶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모든 것을 끌어안아줄 수 있는 힘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서툴다는 반복되는 표현에 연애에는 영 자신이 없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능력 없는 내가 버려질까 봐 무섭더라고요. 함께 할수록 상대가 좋았지만 같이 있을수록 사소한 장난들이 어딘가 날 부족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어요. 


항상 도움이나 힘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힘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당시 연애에 있어서 경험이 많지 않아 무능력한 존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항상 일이나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고 단순히 외적인 칭찬이 아니라 나의 내면적인 가치, 노력, 진정성, 실력들과 같은 다른 장점들과 내가 하고자 하는 가치 있게 여기는 일들로 인정받고 지지받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상대에게도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지지를 받고 싶은 사람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유독 서툴다.라는 표현이 거슬림과 결핍감을 건드렸고 내가 능력이 없으면 버려질 것이라는 불안을 마주하게 된 거죠.


전 그 당시 칭찬받고 지지받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해주려고 상대방 장점 리스트를 적어서 메모장에 적어두고 어떤 칭찬을 할까?를 고민해 보고 표현하고는 했어요. 연애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굉장히 뚝딱이가 되고 서툴렀어요. 친구 대하듯이 못 하고 여유가 없었죠.  원래 좋아하는 게 많고 뭐든 새롭게 좋아할 수 있으니까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평상시의 내 모습을 바꿔서라도 상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고 꾸미는 것 또한 행복했으니까요. 그렇게 상대방에게 올인하고 싶어 했어요.


만약 좋아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스타일을 얘기해줬다면 신나서 관련 스타일 다 찾아봐서 이상형이 될려고 코디부터 노력 했을거에요. 맨날 주구장창 출근할 때 교복처럼 레깅스, 츄리닝만 입다가 사복을 예쁘게 입을 기회가 생기면 굉장히 신나서 전날부터 옷을 잔뜩 늘어놓고 고민했었거든요.


사실 편한 옷보단 이성의 깔끔한 셔츠에 슬랙스 정장룩을 선호했지만 상대방은 그런거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상대방이 뭘 입든 그냥 좋았어요. 상대방은 자꾸 내가 꾸민게 불편해보인다며 편하게 입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 당시 간만에 꾸미는게 넘 좋아서 자꾸 정장이나, 원피스를 찾게 됐던 것 같아요. 


난 익숙하진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내가 입은 코디에 만족했는데 상대방이 자꾸 불편해보인다니까 상대방의 편하게 입고 오라는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이런 모습도 그냥 나인데 어딘가 자꾸 스스로의 행동에 의문이 들게 만들었어요.

그냥 예쁘다. 하면 될 것이지 불편해보인다고 편하게 입고 오란 얘길 들으니 저도 조금 머슥해졌어요. 본인이 그런 편안한 스타일을 선호하니 배려를 하며 한 말이었어서 그게 참 고마워서 감동이었지만.. 그건 순전히 본인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바라봤던거죠. 캐쥬얼한 복장이 편해보이고 불편해 보이는 건 본인의 관점이었던거죠. 상대방의 심리를 다 꿰뚫고 알고 있다며 단정지어 확신을 갖고 얘기하다보니..나를 그만큼 생각하고 섬세하게 정의내리는 것 같아 고마웠고 좋아했지만 혼란스러워졌어요.  난 그 당시 그냥 내가 신나서 설레는 맘으로 입고 온건데 말이죠. 상대방과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싶으니까 안 입던 옷을 입는 것도 즐거움이었으니까요. 나를 바꾸는 부담이 아닌 그냥 음식 고르듯 즐거운 선택이었으니까요.


함께할 땐 참 좋았는데 결국 이 순간을 즐길 수 있게끔 내게 확신을 주지 않는 관계는 옳고 그름, 맺고 끊는 마감을 좋아하는 내게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불안하게 해요. 상대가 매력적이어도 가볍고 모호한 기준없는 관계, 나와 생활 패턴이 다르면 결국 감정적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너무 좋아도 아니었구나. 불닭볶음면같은 달고짜고매운 자극적인 연애는 피눈물을 흘리며 중독되고 즐거웠지만 아니었구나. 능이백숙처럼 담백한 건강 식품같은 결이 맞는 사람, 불안하않게 확신을 주고 표현해주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저도 믿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듣고 끌어 안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 생기는 리스크가 꽤나 컸음을 느끼게 됐어요. 난 상대의 부모가 아닌데 약간은 부모처럼 능력이 안되는데 그냥 모든 걸 전부 다 듣고 끌어안고 이해하고 싶은 묘한 감정들이 생겼어요. 상대의 말에 영향 안 받는다며 상대를 넘 알고 싶어서 모든 이야기들, 힘든 하소연, 감정적 하소연들도 전부 다 듣고자 했던 욕심과 마음 가짐들이 결국 숨겨둔 나의 불안함을 가증시켰고 나의 불편한 부분들을 마주하고 괴로워하게 됐던 것 같아요. 


만약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불안에 매이지 않았을거에요. 너무 빠르게 많이 알고 싶은 욕심, 전부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무너졌구나.. 저는 아직 그만큼 다른 사람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닌 상태였음을 느꼈어요. 결국은 내 안에 이슈가 해결되지 않아 불편감을 느꼈던 거죠. 


헤어짐을 계기로 저의 불편감을 한번 제대로 마주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조금은 감이 잡혀요. 

다음에는 처음부터 상대에 대해 너무 알려고 들고 푹 빠지기보단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상대의 짠한 부분을 보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결국 그 부분으로 걸림이 되고 문제가 생김을 발견했으니까요. 스스로 변화하도록 가능성을 믿고 지지할 순 있지만 자꾸 구원자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너무 올인하지 않기를 다짐해요.


나를 불안하게 확신을 주지 않는 상대의 모든 걸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착각 따위는 하지 않을려고요. 한없이 다 퍼주는 아가페적 사랑을 꿈꿨는데.. 칭찬하고 좋은 말을 할 수록 날 함부로 대하는 사람, 똑같이 존중하고 칭찬을 해주고 감사로 받는 사람 둘로 나뉨을 느껴요.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하기로 해요. 만남  이후 불편감이 느껴지는 사람들과는 결국 선택적으로 관계를 정리 할 필요를 느껴요.


본능적으로 내 몸이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갈 수록 불편함과 쌔함을 느끼게 되면 조금은 칼같이 마음 속 선을 그어 침범하지 않도록 보호해요. 너무 계산적으로 볼 수는 있는데..밤새 수다떠는 에너지 넘치는 외향적인 첫인상과 달리 사람의 상태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내 몸이 반응하는 만큼 내가 죽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를 시전하게 되요. 나를 케어하고 손가락 안에 드는 소수의 내 사람만 챙기지 굳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신경쓰느라 허덕일 필요를 점점 못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한때는 넓고 깊은 관계를 가지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지만 에너지도 소진되는거라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느꼈어요. 넓고 얕은 관계보단 좁고 깊은 소수의 관계를 선호해요. 다수를 챙기느라 정작 내 사람을 소훌히 하지 않도록 이제는 나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선택과 집중을 할려고요. 관계에도 우선 순위를 두고 가지치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 가져가려다 무너져버리면 정말 소중한 내 사람에게 잘해주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될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왜 이렇게 들어주는 것에 집착했을까?

남의 감정적 하소연을 듣고 싶었을까?

감정 이입을 깊게 하게 됐을까? 를 생각하면


과거 내가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서

동생이 병원에 가고 아팠고 엇나갔다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찌르며 누나면서 책임지지 못했다며

괴로워 했던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다며 이야기를 들어달라 요청할 때

외면해서 그 사람이 엇나가는 일을 다시 반복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종종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 했어요.

그냥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줬더라면

믿어줬더라면 어떤 시도라도 해봤다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췄다면

그때 내 일로 힘들다며 동생을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후회했거든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데난 동생의 부모가 아닌데도 그 당시 오만하게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굉장히 괴로워했거든요. 지금은 이성적으로 내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고 스스로를 찌르던 엉뚱한 죄책감에서 벗어났지만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다 받아들이고 끌어 안아주기로 힘든 속 사정도 다 듣기로 마음 속 깊이 다짐했어요.


근데 슬프게도 전 그 불안함이 녹아든 작은 한마디로

휘청거리며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버림받을까봐 두려워서 깊숙히 숨어버렸으니 제가 여러면에서 꽤나 오만했던거죠. 다시 내 사정을 뒤늦게 얘기한들 상대방도 상처를 입어 나를 밀어냈으니 참 허무하게 끝남이 공허했어요.

난 다 끌어안을 각오로 다가갔지만 정작 결정적 순간에 믿지 못했어요.


이젠 동굴에 들어가도 미리 얘기 좀 하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아등바등거리지 말고 타인에게 조금은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상대방도 힘들고 버거워보여서 조금 불안해보여서 정작 내가 기대기에는 어려웠어요. 힘든 얘길 털어놓아도 된다고 내가 먼저 얘기했으면서 정작 상대의 힘든 얘길 들으니 상대가 위태로워보여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가 무섭더라고요. 괜히 힘든데 부담을 더해줄 것 같았고 상대는 계속 밝은 긍정적인 부분만을 보며 부정적 감정은 정작 회피하고 외면하는 분처럼 보였고 본인도 벅차보여서 결국 난 상대를 믿지 못했고 내 고통을 얘기하기 더 어려워졌어요. 난 힘이 되주는 사람이고 싶었지. 힘듦을 건내주는 사람이긴 싫었고 그 당시 미움받고 버려지기는 죽도록 두려웠으니까요.


혼자 감정을 해결하는게 익숙했고 오지랖 부리며 남의 얘기도 잔뜩 들어주고 내 속 이야기도 종종 잘 하곤 했지만 정작 아프고 진짜 괴로운 부분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꺼내기가 너무 벅찼고 버려질까봐 무서워하는 두려움에 잠식됐었네요.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비슷한 모습을 마주하면 괜히 안쓰럽다라고요. 어쩌면 상대를 짠히 여기는 마음 이면에는 자기연민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해결되지 못한 그 짠한 부분은 저의 불편한 결핍을 마주하고 건드렸으니 상대를 동정하지 않았고 분명 우러러보고 존경했지만 이젠 그런 아픈 짠한 사랑을 반복하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헤어짐을 통해 나의 몰랐던 심연을 알게 해줬던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아프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고맙기도 요. 서툰 나랑 만나서 고생했지. 싶기도 하고 정말 헤어져줘서 고맙다. 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겠어요. 그러니 이젠 그런 결핍, 찌질함, 짠한 모습을 통해 사랑에 빠지지 않고 마주하더라도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내가 먼저 단단해져서 그 아픔 또한 가벼이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려고요. 그냥 서로의 멋있는 부분을 이따금 바라보며 오랫동안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혼자 있을 땐 굉장히 가볍고 상쾌했는데..

상대방의 상태나 깊은 어두운 부분도 듣고 마주하면 금새 영향을 받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의 힘든 이야기, 불안을 들으면 몸의 컨디션이 나쁠 때 개인적인 이슈가 있을 때  영향을 받는구나.를 느꼈어요.


그래서 본인을 먼저 충분히 사랑하고 올곧이 서 있지 않은 여유가 없는 상태라면 사랑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니 외롭다고 바로 누군가를 만나고 소비하듯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우고 마음이 준비됐다는 확신이 들 때 또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은 저절로 이뤄지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 나가야 될 인생의 숙제이자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변화시키는 가장 행복한 너무 소중한 경험인 것 같아요. 어릴 땐 왜 많은 문학과 희곡이 사랑 타령을 할까 싶었는데 이해가 되더라고요.


꼭 그 대상이 당장 이성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사랑할 것들을 나 자신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가족, 친구들, 여러 취미들로 확장시키다보면 좀 더 행복하게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장 인간이 극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가장 양극단의 경험을 하게 만드는 사랑.

근데 남녀의 사랑은 쉽게 술술 풀리지 않는 난제에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기출 변형 문제가 너무 많아서 넘 어려운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평상시 실력이 좋았더라도 정작 시험을 볼 때 합격하고 싶은 간절함에 엉뚱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넘 좋아하고 간절하다면 평상시 이성적인 내 모습이 사라지고 감정적으로 뚝딱대며 고장이 나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머릿 속이 하얘져서 오답만 체크하게 되는거죠. 근데 그 문제들을 다시 오답노트하고 문제 풀이하고 자신감과 확신이 생기면 다음에 또 틀리지 않고 정답을 체크할 수 있는 것처럼 경험 안에서의 깨달음과 통찰이 쌓이면 확신을 갖고 어렵지만 좀 더 명쾌히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그 틀렸던 구간이 어려워서 회피하고 마주하지 않아 트라우마가 된다면 계속해서 반복해서 실수하겠죠. 그럼 그때 틀렸으니까 또 시험을 보기가 두려워지듯 사랑을 하고 깊이있는 관계를 갖기가 두려워지는 거죠. 시험도 매번 똑같은 문제가 안 나오고 매번 기출이 변형이 되듯 사람도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말이죠.


종종 과거에 아팠던 경험이 지워지지 않아 비슷한 낌새만 보여도 지레 겁을 먹고 머릿 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반복하고 또는 회피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아픈거는 참 무섭잖아요.


그래서 때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 수록 능숙하게 다듬어져서 사랑이란 시험을 잘 응시하는 사람이 있고 과거의 아팠던 실수했던 경험 때문에 새로운 사람은 이전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데 믿지 못하고 사랑이란 시험의 응시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냥 공부 자체를 솔로를 즐겨서 굳이 사랑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전 그래도 뼈져리게 실패하고 내 결핍으로 상대에게 상처도 남겼던 사고뭉치 흑역사 메이커였지만 또 사랑이란 시험에 준비 과정을 거쳐서 또 응시하고 싶어요.

아프지만 힘들지만 풀어냈을 때의 달콤함이 평생 지속되진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그  마음을 확인받는 경험은 그 무엇보다 행복하고 짜릿하니까요.

험난한 전쟁터같은 세상에서 그래도 같이 싸워나갈 인생의 든든한 조력자가 생기는 시험이라면 꼭 반드시 용기내서 응시해야 할 시험이 아닐까 싶어요. 그거 놓치고 일만 하고 죽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쉬워요.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니 사랑을 또 못 해보고 죽는 건 넘 아쉽잖아요. 완전 행복 그 자체잖아요.


예전에는 운명적 사랑과 이상형을 틀에 가뒀지만 막상 좋아했던 경험을 보면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던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조건을 끌리는 느낌이라며 모호하게 정의하게 됐었나봐요. 그래도  운명은 정해진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라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 소개팅도 많이 해보고 여러가지 노력해보고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처음엔 낯을 가려서 긴장을 하는 스타일이라 자연스럽게 제 매력을 보이기 어렵고 조건 만남이 기빨리고 공허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그랬지. 남들이 소개팅을 하고 노력하는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나와 맞는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거니까요.난 꾸준히 지켜봤던 인간적 호감이 있던 사람에게서 어느 순간 끌리는 매력을 발견하며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보니 소개팅으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는 영 쉽지 않더라고요. 여차하면 경험 삼아 볼 수는 있겠지만 별 기대는 안 하고 잘 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색하고 잘 안맞는 사람이랑 있는 것보단 교육이나 워크숍들으러 가는게 더 재밌더라고요. 그럴바에는 친구랑 함께하는 대화가 즐거웠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쪽지 시험을 계속 보는 소개팅을 선택한 사람이 있고 확률 게임으로는 소개팅이 더 맞을 것 같지만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은 오히려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 운동 크루, 커뮤니티, 같이 일하는 환경에서 주로 학교 선생님, 강사와 썸을 타거나 고백 받게 되거나 사겼으소개팅을 통한 사랑도 나쁘진 않고 인연이 있다면 좋겠지만 짧은 시간에 매력을 결정하고 사랑에 빠지고 중요한 선택을 결정짓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먼저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깊게 이야기하고 교류하며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서 내가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겪어보면서 확신이 들면 직진해보는거죠. 안 되면 포기하는거고. 깔끔히 접고 서툰 나를 다시 갈고 닦으면 되는거고.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멘탈을 지킬 수 있는거라 생각해서 그런 확신을 얻기 위한 나를 먼저 돌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 같아요.


근데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다 보면 연애없이도 행복하다보니 연애 생각이 안 생기는 단점도 있는 것 같아요. 시험을 보지 않아도 그냥 공부하는 과정이 재밌는 상태인 거죠.


지금은 그냥 다양한 사람 자체를 많이 접하며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래 보고 정이 들고 여유가 생기면 또 용기내어 행동하겠지 싶어요.


사람마다 시험을 보는 조건이 공평하지 않아요. 유복한 가정에 사랑을 듬뿍받고 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관계와 사랑을 어떻게 풀어야될지를 너무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배운 사람이 있고 가정에서 관계를 배우고 아에 터득할 기회조차 없어 사랑에 전혀 감을 잡지 못 하는 케이스도 있어요.


후자라면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남들보다 많이 좀 느리고 더딜 수 있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사랑을 잘 모르고 배우지 못해서 두려웠을지라도 조금만 눈을 돌려 배워본다면 생각보다 사랑에 대해 배울거리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삶을 돌아보지 않아서 몰랐던거지 꽤나 많은 부분에서 사랑을 받아 왔을거에요. 모르면 사랑 또한 앞으로 배워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좀 더 많이 아등바등 노력해야겠지만 뭐 어쩔 수 없죠.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고 냉혹하니까요.

그래도 극복해서 그 문제를 풀게 된다면 그 쾌감은 누구보다 값질거니까요. 그런 짜릿함을 기대해요.


전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현실에 매여 사랑을 두려워하고 주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긋나 상처받아서 세상이 두쪽날 것 같고 죽을 것 같이 아프지만 인간이 쉽게 죽진 않더라고요. 통증에 예민해서 아프다고 찡찡거릴 순 있지만 또 일어날 수 있더라고요.


글고 원래 본인의 결핍감을 아는 사람들이 더 아등바등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보다 더 그 결핍을 채우려고 노력하므로 시간이 흐르면 숙련되면 누구보다 풍성하게 채울 수 있을거라 믿어요. 그래서 전 어느 정도 결핍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한테 묘한 매력을 느꼈나봐요. 뭔가 지금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기대되곤 했으니까요.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동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바라봐줄 수 있는 나를 멋있게 바라보고 나의 극복기를 지지해줄 사람을 만난다면 힘이 될 것 같아요.


나의 과거의 상처를 보며 환자 취급하는 사람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정신과적 문제는 메타인지가 되서 자각하고 호르몬을 컨트롤할 수 있게 체력을 키우면 결국은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누군가 그냥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또는 스스로를 믿는다면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봐요. 결국 변화는 내 의지에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아무리 잘난 의사가 눈 앞에 있어도 본인이 해결 의지가 다면 소용이 없는 거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한없이 무너져 보여도 언제 돌변하고 변할 지 모르는거죠. 그러니 사람의 단편적인 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고 단정짓는 건 오만하단 생각이 들어요. 멀쩡하다가 환경에 의해 폭삭 무너질  수 있는 '연약함'을 가진게 인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무너진게 문제가 아니라 무너지더라도 잠시 머물더라도 일어난다면 그게 대견한게 아닐까 싶어요. 무너지지 않고 완벽함을 가진 존재는 사람이 아닌 신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무너짐으로 인해 타인을 이해하게 되니 무조건 비판의 시각보단 어떤 경험이든 나는 낮은 자로서 배울 수 있다. 라는 마인드를 갖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연약하고 서로의 결핍으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사랑으로 선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또 품을 수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기에 인간은 강한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건 함부로 너는 문제가 있어. 하고 사고로 단정짓고 추측하며 정의내리는게 아니라 그 상태를 아픔을 안아주고 지지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를 함부로 동정할게 아니라 동등하게 바라보며 안아주는 것. 그래서 그런 사랑을 경험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거죠.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 싶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사랑의 힘 같아요.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에 빠지면 3시간을 자도 피곤치 않고 쌩쌩한 에너자이저가 됐으니까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종교에서도 이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딘가 여유가 있어보이는 이유 중 하나같아요. 그리고 자신을 먼저 안아줄 수 있어야 상대의 아픔 또한 함부로 외면하고 동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바라보며 안아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함부로 타인을 동정하는 사람은 경험하지 못 한 영역이라 공감을 못 하거나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자기연민을 하는 경우도 은근 많더라고요. 아니면 지식적으로 정의하기 급급해 인간의 다면적인 면을 이해하기보다는 여유없이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쉽게 함부로 단정짓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죠.

아니면 자신은 높게 취급하지만 타인을 존중하기보단 낮게 바라보는 경향도 다분하고요. 본인이 우월하단 의식이 저편에 깔려있다보니 타인의 아픔을 동정하는거죠.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게 상대보다 좋은 상태라는 마음이 깔려있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굉장히 짜증나고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생기죠. 처음에는 납득하고 수긍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네가 뭔데? 함부로 판단해? 날 동정해?'

그렇게 불쾌감을 느끼면 그 관계는 멀어지고 불편해지는거죠.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빠르게 해결책 제시를 하니 앞에서는 씩 웃을 수 있지만 정서적 손절을 할 소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들을 마주해도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환자를 사람 대 사람으로 동등하게 바라보는게 아니라 사고로 정의 내리고 판단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의 저자가 여전히 상담을 받더라도 우울증이 해결되지 않고 미해결 과제로 남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결핍을 마주할 때 동정하지 않고 동등하게 공감해준다면  아픔을 바라봄에도 가능성들을 믿어준다면 전 그게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이자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강한 사랑을 하면 정말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에너지가 있는 상태라외면하기보단 그 결핍감과 힘듦을 들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 저의 복잡함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믿어줬던 경험 덕에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이전과 달라질 수 있는 넘어져도 또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까요.


그러니 함부로 누군가를 어리숙한 취급하지 않기로 해요.

여간해서는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기를 그만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때론 그 사람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막는 행위가 될수도 있으니까요. 서툴다며 농담이라도 바보 취급하고 어리숙한 취급을 받다보면 언어에 예민하니 원래 난 그렇지 않았어도 상대 앞에서 난 점점 작아지고 그 말대로 행동하게 되는 게 느껴져요. 말의 힘이라는게 생각보다 무섭더라고요.


근데 그 어리숙한 취급을 당한 이유는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내가 닮고 싶은 부분에서 상대를 우월하게 보며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이죠. 그렇게 난 상대를 존경했지만 상대는 모든 면에서 나를 케어해 줄 어리숙한 존재로 바라봤던거죠.


그리고 한번쯤 나를 동정했던 상대는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존중보다는 어리숙한 취급으로 변하고 함부로 대하니 그걸 어렴풋이 느낀 나는 같이 있기가 굉장히 껄끄럽고 불편해졌어요. 그런 이유로 함께 할 수록 내가 상처가 됨을 경험했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방과 마음 속 거리감을 두고 연락을 피하고 거리를 두게 된거죠. 상대가 본인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동정하며 나를 함부로 했던 만큼 저도 똑같이 상대에게 함부로 대하고 칭찬과 지지보단 비판을 하게 됐어요. 제 관점이 상대방에 반응과 바로 보는 시선에 맞춰 변하게 된거죠. 티키타가를 할 수 없게 된거죠. 회복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멀어지고 리셋이 되야 다시 존중할 수 있겠지. 싶더라고요. 어쨌든 한번 상처를 받으면 그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 는 않으니까요. 다시 회복해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감정의 스팩트럼이 크고 사소한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만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기준과 나만의 선이 필요함을 느껴요.


상대방이 봤을 땐 자신을 미워하는 것처럼 볼 수 있겠더라고요. 존중이 사라지고 상대의 감정적 불편감을 하소연하는 쓰레기통이 된 느낌이니 예전과 같은 공감이 아닌 나 또한 차갑게 식은 맘으로 현실적인 판단, 정의 내리기를 하게 됐단 생각이 들어요. 나도 이전과 같이 상대를 대할 수 없게 된거죠. 


그래서 그때 나의 아픔을 전부 말하는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많은 의문이 들어요. 너무 솔직하게 신뢰에 시간이 쌓이기 전에 나를 드러냈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는 나와 같지 않을 수 있음을 마주했어요. 그래서 모든 걸 알고 싶고 깊은 것까지 전부 공유하고자 했던 마음은 좀 묻어두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건 내 욕심이었음을 느껴요.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동정하게 만든 건 그때의 나의 감정 상태를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죠. 근데 그건 잠시 잠깐 그 때의 감정일 뿐인데.. 그냥 혼자 소화할 걸. 후회가 되더라고요. 어쩌면 나는 상대가 나를 가스라이팅하도록 내가 상대에게 가스라이팅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요. 그러니 결국 헤어짐이란 경험은 비단 상대방만의 문제도 아니고 나만의 문제도 아닌 서로의 해결되지 못한 미숙한 결핍에서 이루어지고 그렇게 관계가 멀어지는구나. 누구 탓을 하고 밉다고 하기에는 어렸을 땐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지만 나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지분도 일정 부분있다고 생각을 해요. 나쁜 사람은 없고 그냥 의도와 달리 표현방식이 어리숙하고 참 서툴렀구나. 싶어요.


정말 우습게도 내가 이 전 연애에서 상대방에게 했던 걸 이번 썸에서 상대에게 그대로 당한 기분이었어요.

이전 연애에서 처음에 굉장히 멋있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자신의 단점들을 밝힘으로 나중에 상대에게 동정을 느끼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걸 민감하게 느꼈던 상대는 결국 떠나더라고요. 그때 저는 공감보단 동정을 했던거죠. 그 당시 일도 모든 면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굉장히 잘난 맛에 살았고 너무 바빠서 상대를 살필 틈과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 그 당시 상대를 정의내리고 내가 보는 상대의 상태를 판단하고 추측하며 계속 말을 하곤 했죠. 상대는 점점 말이 적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먼저 소통하길 원했고 함께 대화를 하고자 했었는데 상대는 점점 연락을 회피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이번에 그렇게 지난 인연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나를 봤어요. 이번에는 내가 상대와 함께 할 수록 작아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회피하게 됐어요.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 보니 함께 있을 때 날 자꾸 작아지게 만든 상대가 내 아픔도 다 드러내고 매달렸지만 먼저 단호히 동정할 것 같다며 끊어내줬음이 감사해요. 굉장히 현명하고 좋은 선택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확실히 관계에 균형이 변하면서 조금은 동정했던 부분이 녹아 찐친을 하자며 대하는 태도 또한 서로를 존중보단 약간은 까내리는 워딩이 은연 중에 있음을 느꼈고 불편감을 느꼈나봐요. 그러다보니 쏟은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단 생각에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감을 둘 수 밖에 없더군요. 나를 동정했던 사람에게는 확실히 불편한 감정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관계가 회복이 될려면 서로를 가까이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고 나도 회복이 되면 그때 다시 새로운 관계로 친구로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도 재정립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난 그 사람과 함께라면 내가 좋아하는 마음과 달리 계속 불안해지고 작아졌을 것 같으니까요.


근데 그렇게 상대를 만든 원인은 너무 과한 칭찬을 하고 상대를 높이 바라봤던 내 태도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남, 녀 사이 문제는 어느 한쪽의 잘못만 있는게 아니라 둘 다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다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예쁜 말로 동등하게 표현해주고 존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요.


함께 배우는 성장 자극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기대며 그늘 같은 쉼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볼려고요. 다음에 내 사람이다 싶은 인연을 또 만난다면 절대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평상시에는 이성적 사고를 하다가도 사랑에 빠지면 전남에 남친이 있다면 서울에 전세빼고 전남에 내려가 센터를 차릴 계획까지 생각하고 일도 모든 것들을 상대와 가까이 하고 싶단 생각이 들고는 했어요.

내 꿈과 미래는 상대방에 맞춰서 모든 걸 바꿔볼 용기가 있었어요.

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새로운 일을 도전해봐도 되지.

지금 직장아니어도 어디든 먹고 살 길은 있겠지. 싶었죠.


바쁠 때 일주일 내내 찾아와줬던 상대가 좋았어서

다음 연애는 내가 그렇게 해주고 싶단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그게 우선 순위 1순위를 '나'에게서 '상대'가

됐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더 감정적으로 더 극단적으로

행복하고 행복한만큼 두려워졌던거죠.

그래서 이상한 방어기제를 발동했던거고요.

그러니 다음에는 상대방에 맞춰 모든 인생계획을

맞추기보단 '나'를 1순위로 두며 여유를 줘야겠단

생각을 하게 만들었어요.


그냥 날 더 충분히 사랑하자.

이젠 이 순위를 다른 것에게 절대로 넘기지 않기로 해요.

나의 꿈도, 직업도, 일도, 종교도, 돈도, 사람

모두 그 자리를 침범하지 않도록요.

1순위가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어 그것에 까딱

문제가 생기면 나의 전부가 되어 

온세상이 무너질듯 두려웠고 괴로웠으니까요.

그러니 1순위로 두고 사랑하는 건 내가 되야

여유롭게 휘둘리지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헤어져 준 사람이 끊어내 줌으로 나를 더 자라게 만들었으니 지나고 나니 헤어져줘서 고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그 사람도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길 응원하게 되요.


그리고 나의 자존심까지 버리며 매달린 사람과는 나는 할 수 있는거 다 표현하며 용기를 냈으니 아무리 매력적이고 좋은 상대라도 절대로 다시 사귀는 일은 없을거에요. 여전히 멋있는 사람의 유무와 상관없이 미련따위 갖지 않고 좋았더라도 마음 속 확실히 선을 긋고 나를 채운 후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대하는게 현명하단 생각이 들어요.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무조건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상대는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불편감을 주는지 모르겠지. 싶어요. 헤어진 원인을 남탓으로만 돌리는 연애와 사랑은 아무리 많은 횟수를 반복하더라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헤어짐을 경험하겠더라고요. 예전에는 무조건 자책하며 스스로를 비난했는데 지금은 헤어짐의 지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많이 사랑할 수록 기간이 길진 않아도 정말 많은 부분을 깨닫게 해주니 고마워요. 서로의 결핍으로 상처를 주는 서툰사람들이 있었지 내게 나쁜 사람은 없었어요.


이따금 문제 풀이만 하지 말고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며 환기도 해보고 다시 용기있게 100번 떨어져도 또 새로운 시험지 꺼내 들고 풀어서 사랑 문제를 풀어가면 되는거죠. 그러니 지금의 이 흑역사도 실패도 아픔도 지나고 보면 모두 날 성장시켜준 고마운 사람들이고 추억이 되는거죠.


그러니 그 지나갔던 인연들이 서로에게 상처주고 아팠기에 미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냥 막연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내가 선택하고 확신을 갖고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으니 내 안목을 의심하기 싫더라고요. 그러니 밉지만 그 사람도 좋은 사람 만나서 예쁜 사랑하고 잘됐으면 좋겠어요.


삶 속에서 어떤 부분이든 날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것,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 한때 제 사랑은 꿈이 되기도 했고 건강을 돕는 일, 돈을 버는 일이 되기도 했고 타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게 내가 될려고 보듬는 중이에요.


예전에는 나의 직업이 정체성이 됐는데..

지금은 그냥 '' 할려고요.


그러다보니 그림책 필라테스도 하면 하는거지

이게 나의 정체성이 될 만큼 증명하려고 하며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뺐겼어도 이젠 그냥 그러려니 너무 힘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냥 내 삶의 소중하게 여기는 일부분일뿐 이게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상대가 전부가 되버리니 온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두렵더라고요. 내가 창작해낸 수업을 빼았길 때도 온세상이 무너지듯 힘들고 괴로웠죠.


근데... 그만큼 힘들고 아팠던 건 내가 그만큼 애정했고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아팠고 진심이었으니까 계속 아파서 하소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찡찡거렸겠죠.


근데..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진심이고 가치가 아니니..

그렇게 하소연하는게 영 한심하게 비춰질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물을 흐리는게 될 수도 있고 그 감정으로 인해 정작 참여자들을 더 신경쓰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주변에 온세상 사람들에게 감정을 찡찡거리기보다는  스스로 감정을 케어하고 상처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런 아픔을 풀어낼 수 있는 특수한 장을 만들고 정말 신뢰할 수 있고 들어 줄 여유가 있는 사람과 공유한다면 금방 툴툴 털어낼 수 있을거에요.


그러니 이제는 나의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내 정체성이 되고 나의 창작물, 분신이 나를 소개하는 정체성 전부가 되지 않도록 분리하는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직업에 있어서 진심이지만 오히려 그 간절함이 더 실수하게 만들고 희비를 교차하게 만드니 모든 것에는 적당한 경계선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분명 너무 애정을 갖고 오랫동안 준비한 소중한 가치있는 것이지만 그게 없어져도 내 삶은 끝나지 않으니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고요.


그냥 나를 먼저 세우고 그냥 좋아하는 걸로 편안히 남겨두고 다시 시작하려고요. 그래야 즐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꼭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진심으로 알아주는 소수의 한 둘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의 응어리를 해소했다면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숨은 맛집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라도 소수의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진짜 힘을 받아가고 삶을 바꿀 힘이 됐으면 해요. 적자는 아니고 +-a가 되야하고 돈을 잘 벌면 너무 좋겠지만 그것보단 가치를 전달해줄 수 있는 풍부한 수업이 되길 꿈꿔요.


그게 내 정체성이 될 때는 너무 괴로웠지만 그게 아니어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많은 걸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상대방이 나의 사랑의 전부가 되고 삶의 이유같은 정체성이 될 때는 굉장히 괴롭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사랑하는 자체가 내가 된다면 뭔가를 많이 이루거나 성공한 상태가 아니어도 쉽게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룬 건 없어도 행복 역치는 낮아서 작은 걸로도 쉽게 만족하고 웃으며 행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휘둘리지 않고 바보같아 보여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림이 연기가 나의 수업 모두 내 혼을 담은 정체성처럼 소중하게 쥐고 뺐길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지금은 좀 허허실실 그게 아니어도 제 삶을 행복하게 살다가 열심히 충분히 쌓여서 나눌 때가 되면 흘려보내듯 여유있게 만족스러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지금 계속 호기심갖고 채우고 배우는 시간이 즐거워요. 이렇게 충분히 채우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 를 확신을 갖고 얘기할 수 있고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불안하고 확신이 없으니 그렇게 증명하려고 안달복달하며 타인의 피드백에 휘둘렸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 그냥 그렇게 얼핏보면 남들이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기는 앞으로 더 힘차게 나아갈 탄력을 받아 도약하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일은 또 많이 할테니까요.

남들과 속도를 비교하며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고요.

그냥 느슨하게 내 쓰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나를 또 찾아줄 누군가가 있겠죠.


그러니 남들이 뭐라 해도 신경쓰지 고 제 길을 가면 되죠.

각자 추구하는 행복은 다 다르니 그 조언이 내게 꼭 맞기란 힘들죠. 그래서 나를 지지해주는 인연을 만나면 거부하고 튕길게 아니라 꼭 붙잡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 같아요.


너무 상처받을 거 걱정하고 미래를 내다 보고 불안해하지 말고 함께 하고 싶었다면 그냥 조금 용기내보면 어떨까요? 같이 협업해보자고 찔러보는거죠. 근데 먼저 제안해도 자꾸 거절을 경험하면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마음있으면서 불안하다고 혼자서만 머리 싸매고 고민하지 말고 나를 지지하고 있는 인연들이 있다면 머리를 맞대면서 함께 하자.고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의외로 따스하게 맞이할지도 모르고 잘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뭐 안되고 틀어지면 어쩔 수 없는거죠.

에라 모르겠다. 줸장!! 엎어버리고 다시 하면 되는거죠.

틀어질 관계였다면 그런 작업이 아니어도 틀어지지 않았을까요? 그 실패를 발판 삼아서 또 새로운 사람들과 작업을 해봐도 좋은거고요.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아플거 지레 겁먹고 겁쟁이처럼 움추러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들과 비교하며 특별하지 않다고 했어도 사실 너나 나 모두가 특별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이유 하나로 굉장히 고유한 존재니까요.


내가 특별하니 남들도 특별하고 그만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서로를 존중해줘야 하는거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나를 특별히 대하듯 상대도 특별하게 대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뭐 그런 걸 받아주지 않으면 안 맞으면 깔끔하게 손절하는 것도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다른 인연들 만나면 되죠. :)


좋은 말 백마디를 했는데 바보 취급 당하면 나도 상대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미워하게 되더라고요.


모두가 결핍이 있고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데.. 

그냥 나와 맞고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거지.

굳이 고쳐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한없이 문제아로 보이고 사람을 넌 특별해. 라고 바라보면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결국은 바라보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구를 함부로 비방하고 판단한 들..

예수가 창녀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에게

죄없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라! 라고 한 일화처럼


나 또한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고 실수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빌런이니까 함부로 누군가를 정제하면 돌아보면 스스로가 부끄럽단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누워서 침뱉기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내 결핍이 거슬려서 누군가를 내가 미워하는군. 하고요.

그래서 나도 누군가를 함부로 하면 후회하게 되고 내가 더 양심통으로 아파하며 반성하게 되요.


그냥 결이 맞지 않는 거지.

이젠 굳이 남을 까내릴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냥 어떤 환경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게 좀 궁금해지는거죠.


그리고 또 이해를 하게 되지만 그래도 나를 너무 상처주는 존재라면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는게 현명한 것 같아요.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서로 달라서 행동하는건데..

아직 내가 받아들일만큼 큰 그릇이 아니니까요.

그냥 조용히 날 지키기 위해 피하는거죠.

나의 이슈가 해결되면 상대방이 주는 자극도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겠죠. 자꾸 영향을 받고 물들고 휘둘리니까요.

접근 금지. 마음 속 선을 긋고 안전 거리 확보를 하는거죠.


헤어지고 멀어짐은 그 누구의 잘못도 없고 그냥 인연의 총량이 다했다고 생각해요. 한쪽만 일방적으로 상처받은 관계는 없다고 봐요. 결국 리액션 쌍방인거죠.


그러니 누군가가 밉다면 불편하다면 전 저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조건 자책을 했다면 이젠 내 잘못이라기보단

나는 왜 저 사람이 미울까?하고 돌아봐요.


특출나서 특별한게 아니라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그냥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린 모두 특별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능력이 있든 없든 지위나 직업이 아니어도 그냥 너라서. 이 세상에 매력이 없는 사람은 없지 싶어요.


그래서 잘 되고 안 되고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특별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내가 특별해. 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얘기해주면 좋겠지만 없다면 뭐 셀프로 해야죠.


난 좀 특별하고 멋진듯 꺅! 거울보며 자화자찬! 꺅!

오바쌩쇼 깨방정부려보는거죠. 그렇게 나한테 말하다보면 좀 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를 특별하게 바라봐주는 힘이 생기면

잘 되든 안 되든 유무와 상관없이 다시 무언가를 배우고 내 마음의 소리를 귀울이며 실패하더라도 별로여도 시도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결과야 어찌됐든 그냥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거죠. 뭐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처럼

이 시기도 또 지나가고 힘들었던만큼

또 좋은 순간이 내게 성큼  다가올거니까요.

절대적으로 고정된 건 없지. 싶어요.


그러니까 남들 그만 비교하고 그냥 가요.

누군가에게는 내가 별로인 사람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날 최고로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의 물질, 자본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아요. 돈이라는 건 돌고 도는거라 아무리 잘나가고 사업에 성공 궤도를 달려도 한순간에 폭삭 망할 수도 있는거고 고독사를 한 케이스도 있더라고요. 돈은 필요 조건이지 입의 일단 풀칠가능하면 행복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더라고요.


같이 있을 때 대화가 통하고 많은 것들을 할 때 행복한 사람, 무언가를 노력해서 성취해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갖고 가치를 갖고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 아닐까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요.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다듬다보면 언젠가 또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겠죠.


뭐 없으면 그냥 혼자서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와 관계가 좋아지면 그걸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꼭 내가 좋아하는 일로만 돈을 벌려고 고집할 필요도 없고 시대가 바뀌면 유연히 바꾸고 또 새롭게 재밌게 공부해보면 되죠. 뭐 죽는거 아니면 뭐든 할 수 있죠.

돈이 지금 없으면 까짓거 또 벌면 되는거죠.

뭐 쫄딱 망해서 노숙자되면 뭐 그것도 나름 귀한 경험 아니겠어요. 어딜가든 포기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야 입에 풀칠할 수는 있으니까요.


내 옆에 새로운 사람들은 예전의 그 사람과는 다르니까

넘 두려워하지 말고 좀 더 용기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삶이 좀 더 의미있고 풍요롭게 느껴지니 수많은 선택지 안에서 좀 더 재밌는 선택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애초에 삶이란 건 정답이 없으니 더 많은 것을 선택해보고 시도해볼 수 있는 장이니..


남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하든 결국은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 가 정답이지 싶어요.


나 자신을 충분히 채우기 위해 살다보면 그 충분한 여유를 보고 가까워지는 인연도 있고 멀어지는 인연도 있고 그 중에 함께하고 싶은 인연도 있고 운이 좋게 있다면 한번 시도해보는거죠. 가는 인연 막지 않고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그냥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해요.


그림책 필라테스 호스트로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는 잠식되지 않았지만 참여자일 땐 바로 마주해 마음을 열어놓고 바라본 탓에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버리니 그 당시에는 미칠 노릇이었어요. 결국은 아직 미해결된 감정이 있었는데 원인을 찾고 나니 금방 또 괜찮아지더라고요.


도화지같단 얘길 들어서 어떤 사람이랑 있느냐에 따라 내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곤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귄다며 얘기했지만 상대가 날 좋아하는 걸 느꼈으니 내 감정도 리액션도 그렇게 풍부해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상대가 다가왔기에 내 감정이 커질 수 있었더라고요. 그러니 내 감정이 점점 커졌다면 내가 좋아하는 커지는 감정에 확신을 갖고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는 거였어요. 나의 행복한 그 감정을 좀 만 확신을 갖고 믿어볼 걸..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그땐 몰랐는데 다음에는 커져가는 나의 마음에 대해 너무 미래를 앞서서 예측하며 불안해하지 않을려고요.


상대가 날 떠날까봐 아직 겪지 않은 미래를 그리며 불안해 하지 말고 그냥 현재의 행복한 감정에 몰입하면 됐을텐데.. 상대가 감정적 표현, 언어로 확신을 주지 않으면 불안해졌어요. 직설적으로 언어로 표현해주길 원했는데 비언어적 표현으로 보여주니 괜시리 불안해졌어요.


다시금 난 언어, 말 한마디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었음을 느껴요. 그땐 그게 안 되더라고요. 이젠 어떻게 감정을 다뤄야될지 좀 감이 잡혔어요. 미래를 예측해보고 시뮬레이션 돌려보고는 해서 불안했는데 그냥 그 행복을 좀 더 즐겼으면 좋았을 걸 아쉬워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도 나는 내 삶을 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내 곁에 여전히 남아있는 좋은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대로더라고요. 너무 행복해서 온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없어도 사실은 행복했던거에요. 그리고 또 새로운 인연들이 채워지니까 시절 인연이었거니 좋았었노라. 생각해요.


나를 아프고 힘들게 했어도 나도 내 상처로 종종 빌런 짓을 할 수 있으니 '그럴 수 있지. '이해가 되곤 해요. 그러니 헤어짐으로 상처를 받았어도 떠난 인연 또한 행복하길 바라요.

그러니 버려질 것, 떠나는 것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그 긴장감을 조금은 같이 머금고 즐겨봐도 좋을 것 같아요.


괜찮지 않은 상태를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건 잠시 잠깐의 지나가는 감정일뿐이니까요.

여전히 나는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안아줄 수 있어요.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내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고 아팠던 나를 보듬어주고 내가 듣고 싶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갖기로 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호기심을 가득 충족하며 배우고 깨닫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들이니 배우고 싶은 교육, 움직임, 체험, 책들을 잔뜩 읽고 배워보는 거죠. 그럼 행복하니까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궁금하니 소셜링을 통해 친구들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러 가요.

그리고 여유있을 때 하는 다름 사람 공감하기. 오지랖은 내려놓기로 해요. 좀 더 나를 위해 혼자있는 시간에 집중하기로 해요. 내게 먼저 도움을 구하고 묻는 사람, 소중한 사람에게만 오지랖부리기로 해요.


에너지가 떨어질 땐 오지랖 부리며 이 사람 저 사람 공감하다 보면 내 몸이 너덜너덜 더 이상 남아나질 않겠더라고요. 에너지가 많을 땐 오지랖 부리며 이야길 들어주는 Enfj였는데 썸 붕괴의 여파 이후로 요새는 소수의 한둘에게 집중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혼자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한 infj가 나오더라고요.

(I친구들은 이따금 밤새 수다 떨러가는 E이면서 기만하지 말라 하지만..ㅋㅋㅋ)


운동 모임들은 다들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단순한 에너자이저들이 많아서 주 6일을 나가도 별 타격이 없었는데..

밀도 있게 묵직한 심리를 다루는 독서 모임에서는 마음의 상처를 머금고 있는 분들이 표출을 하다 보니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꽤나 타격감이 큼을 느꼈어요. 가볍게 환기해 주는 작업 없이 그대로 문제를 떠안고 집에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풀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으니까요.


근데 그 숙제 덕분에 나의 몰랐던 모습을 다시 찾아볼 수 있어서 몸과 마음은 힘이 들긴 해도 어떤 상황이든 새롭게 배울 수 있으니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것 같아요. 지나고보니 실패하고 흑역사를 만들고 아팠어도 결국에는 나쁜 경험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경험이든 배울 수 있는 소스가 있었으니까요.


아프고 화가났다는 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니까요.

그런 몸의 신호들에 귀기울이면 몰랐던 나와 더 친밀해질 수 있더라고요. 그러니 그런 힘든 과정도 속상한 과정도 조금은 불안하고 남들에게 방황하는 숙제같은 것도 즐겨보기로 해요. 원래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불안정한 존재이니 그런 나의 불안정함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거죠. 그래야 내가 다시 쓰러지더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그 감정에 압도되어 물들다 보니 내게 가까운 사람이 생긴다는 건 사랑을 한다는 건 때때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만큼 아플 각오를 하는 거니까요.


상대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면 그 에너지를 그만큼 투명하게 흡수하고 받는 것 같았어요. 사랑하는 건 굉장히 아프고 무섭지만 뽀뽀 한 번에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온몸에 아지랑이가 피듯 간질간질 행복해지니 미래에 꼭 또 사랑을 할거에요. 그래서 다음에 연애를 한다면 너무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기준을 나로 확실히 잡고 동행할 수 있는 그런 안정감있는 내가 먼저 될거에요. 그래서 누군가를 또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충분히 채워야 겠어요.


몸이 예민하다 보니 쉽게 쉽게 만나고 다양한 사람을 경험해 보라는 말이 제게는 굉장히 공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좋아하면 상대방의 상태를 증폭해서 몇 배로 받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기준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고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헤어질 때 많은 걸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헤어진 인연들은 모두 날 자라나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러니 모든 지나온 인연들에게 고마워요. 어쨌든 내게 새로운 의문과 깨달음을 던져주고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해줬으니까요. 그러니 헤어져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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