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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Sep 06. 2023

나는 오늘 또 쓰러졌습니다.

2023. 09. 04. 월요일

워크숍 불참 사유를 알리기 위해 찍은 눈 앞에 구급차 정경
Q 가장 편안한 상태일 때의 내 모습을 묘사해 주세요


가장 편안한 상태를 찾기 위해서는 반대의 개념인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되고는 했다.


그렇게 삶 속에서 불편함을 꺼내보면 가장 편안할 때의 나와 감사함을 마주하게 되고는 했다.


슬픔을 깊게 마주함은 기쁨이 다가왔을 때 더 큰 행복함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나는 오늘 또 쓰러졌습니다."


뉴스에서 쓰러져서 갑작스레 죽는 일이 남 일이 아님을 어릴 때 '묻지 마 사건'으로 억울한 피해를 겪어본 가족의 일원으로서 길을 걷다 갑작스러운 '실신'을 몇 차례 경험해 봤던 유 경험자로서 타인의 일이라기보단 내 일일 수 있겠단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


그러니 뉴스에서 접하는 사회에 일이 타인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 하나쯤은 하며 넘어가고 나의 즐거운 유희와 쾌락만을 쫓으며 사회의 아픔을 방관하고 무시하는 일은 꽤나 비겁한 일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피해와 위험을 감수하고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기보다는 같이 들어가 용기를 한 번쯤 내보려고 힘들지만 굳이 모른채하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앎을 실천을 하고 노력하는 이유였다.


그러니 내 마음의 여유가 채워진다면 최소한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그렇게 되뇌게 된다.


잠깐 스쳐가는 인연일지라도 지금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살아서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냥 소중한 사람임을  알겠다. 어쩌면 살아서 동시간대에 만났다는 것 매 순간순간 삶의 여정이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한 사람들에게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소중하다고 기적이라고 하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오글거릴 수 있는 말들일 수 있지만 죽음을 상기했던 내게는 빈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가족의 사고와 몇 차례 블랙아웃을 경험해 본 유 경험자로서 삶 속에서 죽음은 멀지 않은 곳에 존재했고 책으로 유서를 읽고 간접 경험하는 사람들과 달리 내게 '죽음'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 멀지 않은 살아있는 삶 속의 하나의 경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좀 순탄치 못 하고 험난하고 돈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좀 더 의미 있는 따뜻한 삶을 살고 실천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됐던 것 같다.


죽음의 간접 경험은 난 굉장히 살고 싶은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굉장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내게 가장 불편하고 괴로운 경험은 놀랍게도 가장 큰 감사함이 되기도 했다.


힘들 때 굳이 들어주러 시간을 내어 찾아갔던 건 어릴 때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 마음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의 시달린 탓이었다.


첫째 딸, 누나로서의 죄책감과 책임감이 한 되 뒤섞여 나도 마음이 병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난 사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스스로 착하기보단 이기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종종 들고는 했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그냥 들어주는 경험이 삶을 다시 살아내는 힘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종교가 아니어도 그런 삶을 살도록 내 에너지를 먼저 채우고 들어 줄 여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직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의미이자 내 삶의 사명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산책 모임을 취소하고 '아티스트 웨이' 워크숍을 찾아가던 중 갑자기 '블랙아웃'이 찾아왔다.


전철 안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한동안 이름 모를 역의 전철의 승강장 앞에 옮겨져 한동안 바닥에 푹 꼬꾸라져 있었다.


반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질펀히 쓰러져 있는 내 몸을 마주하게 됐다. 어느 역인지 시야를 돌려 확인할 겨를도 없이 사지가 경직되어 반쯤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구급차의 들것에 실려 역사를 벗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미주신경성실신 정도의 증상이니 망정이지 진짜 1분 1초의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에게는 이 긴 기다림이 목숨을 위협 할 수도 있겠다. 시스템적으로 우리나라는 안전과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 불감한 측면이 있다. 서울이라는 한 도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응집되어 있고 숨이 막히게 가득찬 지하철, 퇴근길에 차선을 양보를 한들 구조대원이 도착하기까지 신고 후 30분이 넘게 걸렸으니 나는 괜찮았지만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케이스가 꽤 많겠단 생각이 들었다.


구급차도 많이 실려가다 보니 이제는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냥 대중교통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 만큼 익숙하다.


단지 조금 다른 것은 일정과 계획을 잔뜩 세워 놓고는 하고 싶었던 일들이 전부 틀어지고 뒤죽박죽 됐다는 사실에 잔뜩 심통이 나고 아쉽고 속상할 뿐이었다.


내가 쓰러진 덕분 퇴근 길 숨막히는 공간 속 연착되고 지연이 되어 누군가는 지각을 하며 기분이 썩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한편에 스멀스멀 올라온다.


손은 경직돼서 닭발처럼 오그라들었고 긴장된 손은 한동안 동그랗게 뭉쳐져서 풀어지지 않았다. 머리로 혈류가 공급이 되지 않아 생긴 블랙아웃. 어딘가 뜨겁게 불에 달궈진 마른 오징어마냥 오그라든 내 모습이 우습다.


갑자기 현타가 와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희뿌옇게 눈앞을 흐렸다. 가고 싶은 워크숍이었는데 내 몸이 고장 나서 몸이 움직이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상태를 마주하니 괜스레 억울하고 짜증이 나서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눈물을 보일 때마다 머리맡에서 걱정된 탓인지 가던 길을 가지 않고 "울지 말고 자꾸 웃어! " "너는 강한 아이야!"

"괜찮아!"라고 자꾸 강조하듯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숨이 더 턱턱 막힌다.  이름 모를 사람의 친절이었지만 부담스럽다 못해서 고문처럼 느껴졌다.


짜증 날 때 눈물을 흘리면 여러 가지 독소들이 빠져나오는데 아싸!! 하고 오히려 이런 기회를 핑계 삼아 속시원히 울고 훌훌 털어냄이 좋은데 내 마음을 몰라도 영 모른다.


교감신경이 극까지 치다를 때면 자동차의 모든 시동이 한 번에 꺼지듯 갑자기 방전이 된다.


그렇게 몸의 모든 긴장이 풀리며 골반저의 기능 자체도 탁 풀어지고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숨구멍이 열리듯 긴장된 몸이 한 번에 시동이 꺼지며 온몸에 물이 모두 빠져나오는데 아래로도 위로도 막을 기운도 없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막아내는 사람 덕에 더 숨이 턱턱 막힌다.


긍정으로 도피하며 '괜찮아! 웃어!"를 강요하는 사람들에겐 숨이 턱턱 막히는 이유였다.


무턱대고 위로하는 방법을 모를 때 과한 칭찬을 하고 힘내! 를 강요하며 예전의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르고 무조건 '괜찮아. 뭐든지 할 수 있어! 파이팅!'을 외쳤던 과거의 내 부끄러운 모습도 떠오른다.


마음만 앞서 계신 노인을 보면서 공감하는 법을 배워야지. 여유를 줘야지. 반면교사 삼게 된다.


나는 최소한 힘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긍정을 강요하며 '괜찮아!'를 외치기보단 좋은 질문으로 스스로를 조심스레 마주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마음의 소릴 들을 수 있게 따스한 사람이 돼야지. 조심스러운 시선을 건네고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돼야지.


할아버지의 마음은 참 고맙지만 정말 힘든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도움이 됐던 건 의료직에 종사하신다는 여성 분이었다. 그녀는 끝까지 따라오며 마음을 내주려고 함께 동행해주려고 하셨다.


그녀는 바지가 흠뻑 젖어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수 있을 치부라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을 본인의 옷으로 조심스레 감싸주었다.


나는 내 옷을 벗어 성서 속의 선한 사마리아인 일화처럼 나의 소중한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게 됐다.


구급차에서 그 여성 분을 생각하며 마음이 왈칵했다. 정신은 깨어 있지만 몸이 가위에 눌린 듯 시체처럼 경직되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고맙다.'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영 마음에 걸린다.


연락처를 전달받아 밥 한 끼라도 사드리고 싶었는데.. 정신없이 꺼졌던 기억 탓에 굳어버린 몸 때문에 손을 맞잡고 고맙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지. 참 아쉽다.


그녀의 행동을 보며 이게 바로 사랑의 실천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작은 따스한 섬세한 배려와 희생, 이름 모를 사람의 아픔에 대한 관심, 실천하는 사랑을 보며 그분에게 표현은 못했지만 이 받은 사랑을 나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또 그분과 마주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나와 마주하는 사람과 내가 받았던 도움의 손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어렵지만 흘려보낼 수 있는 실천할 수 있는 이상을 꿈꾼다. 종종 힘들면 빌런이 되는 질한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본다.


난 삶 속의 번뇌가 많고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불편하더라도 양심적인 삶,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따라오겠다는 그녀의 말과 달리 구급 대원들은 안전성의 문제 때문인지 직계가족이 아니면 따라올 수 없단 말을 건넸고 따스한 배려를 건네주셨던 여성분과는 그렇게 제대로 된 인사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떠나보내어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이런 증상일 때 어떻게 케어해야 하는지를 방법을 공부하신 의료직 종사자 분이었다. 그러니 나도 움직임을 통해 사람을 마주하는 사람으로서 마음만 앞서는 사람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 부끄러울 수 있는 부분을 조용히 자신의 외투로 따스히 가려준 섬세한 배려는 마음에 울림과 큰 감동을 주었다.


어떤 역이었는지도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돌려드리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음이 찾아낼 도리가 없음이 그게 참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


구체적인 대상이 살아있음에도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마주하며 표현할 수 없음에 왈칵 아쉬움에 고마움에 구급차로 가는 길 또 한 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도 누군가의 치부를 따스히 가려준 손길처럼 나도 그런 따스함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라오는 감정들을 막고 억압하는 행위가 효율을 추구하는 업무적인 면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상까지 지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서 쓰러져 있고 온몸의 구멍이 열린 듯 모든 물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에게 긍정을 강요하는 건 더 숨을 막히게 하는 행위였고 불편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고 들어줄 수 있다고 긍정과 밝음만을 강요하는 부류에게는 '고마워요. 근데 그만 좀 해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과도한 관심과 긍정의 말이 더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적절한 거절과 거리감이 필요했다.


도움을 주고자 위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아프고 괴로운 내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적절히 지키기 위해서는 때때로 단호한 거절과 적절한 화를 내며 싫은 소리를 내뱉을 용기가 필요했다.


그 당시 답답하고 짜증 나서 울컥했고 그냥 온몸의 구멍이 열린 듯 모든 물들이 전부 배출되는 듯.. 바지가 흠뻑 축축하니 젖어버렸다.


실컷 울고 나면 오히려 개운하다. 눈물이 필요한데 살면서 책임을 짊어져야 되는 입장에 놓였을 때는 쉽게 약한 모습, 눈물을 보이는 건 사회적으로 영 쉽지 않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아파서 실컷 울어도 될 상황이니 아픔을 핑계 삼아 평상시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보였던 것 같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냥 흘러나오고 터져 나오도록 내버려 둔다. 오히려 쓰러지니 홀가분하고 편안한 것 같기도 했다.


휴식 없이 내달린 삶에서 몸의 강제적 휴식이 내 몸의 휴식을 취할 방법을 연구하게 해 줬다.


가까운 내 사람들에게 짐꾼이 되고 부담을 주기 싫어서 속으로 삭이는 게 익숙했던 것 같은데 온몸의 긴장 해제는 내 아픈 감정과 힘듦을 솔직하게 드러나게 해 주었다.


꽤나 강제적인 휴식이었지만 썩 괴롭지는 않았다.


타인의 힘듦과 아픔은 들어주러 다니고 본인 마음 챙기라며 얘기하면서 정작 속병이 들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건 나 자신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많이 아파 본 입장에서는 그 아픔을 알았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상태라면 그래도 한 번쯤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단 욕망이 물씬 올라왔다. 근데 정작 내가 힘들 때 이야기를 내뱉었을 때 그렇구나 덤덤히 받아들이기보다는 동정하며 불쌍히 여기는 시선을 거나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반응들을 보니 부담을 주기는 싫었고 의지하고 털어놓는 건 영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힘들 땐 침묵하며 모든 연락들을 멀리하고 혼자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 해소성의 회복하기 위한 한풀이 글을 쓰고는 했다.


굿판을 벌이듯 그림과 글, 연기, 움직임은 침묵하던 내게 

남들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복잡함을 풀어주는 소통창구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도움을 청하고 기대는 것도 짐이 되기 싫은 내게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아프고 힘든 사람한테 웃어!라고 계속 강요하는 건 오히려 더 큰 괴로움이니 그냥 가만히 곁을 지켜주고 바라봐 주며 말을 줄이고 끄덕이는 것이 어쩌면 100배는 나았다.


어느 시점에 쓰러져도 등본에 가족이 없는 내게 뭔가 보호자를 부르고 도움을 요청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웅축된 장소에서는 생각이 복잡하고 에너지가 릴 때 숨쉬기가 버거웠다.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때 내가 먼저 건강히 홀로 서 있지 않을 때 누군가의 다가옴과 두드림은 부담스러웠다. 빠르게 소비하듯 연애를 하는 사람들과 달리 미해결 과제를 짊어진 복잡한 내게는 그 당시 여유치 않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짐이 되기보단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으니 사랑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돈된 글을 쓰며 나를 알고 돌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깊은 연인이 되기 전 사랑을 나누는 과정들을 소셜링과 주변 사람을 통해 내게 공부하는 지식들을 계속 나누고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힘들긴 했었나 보다.


길을 가다 갑자기 쓰러지다 보니 억울해서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하고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구급차 안에서 실성한 것처럼 허탈한 양가적인 감정 속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아까 입에 앙 급하게 물은 치즈 핫도그를 먹고 체한 탓일까? 내가 쓰러질 정도로 몸을 혹사시켰었나?

수면 패턴이 요새 좀 불규칙해졌던 탓일까?

의미를 찾지만 퇴사 이후 불안정한 미래에

스트레스가 큰 탓이었을까?

아픈 기억은 나의 마음과 현 상태를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사후 경직하듯 온몸이 오그라들고 순간적인 블랙아웃 경험은 삶 속에 짤막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되었다.


남들은 술을 먹고 즐길 수 있지만 난 수도승처럼 술, 담배 없이 잔잔한 삶과 생활을 즐겨야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운동을 통해 건강한 몸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약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모든 오물들을 다 배설한다고 하는데 저혈압과 미주신경성실신이 오면 비슷한 간접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이들은 죽음을 뜬구름 잡는 먼 일화처럼 느껴질 테지만 내게는 삶 속에 멀리 떨어지지 않는 밀접한 경험이었다.


연례행사 마냥 겪은 실신 탓에 생각해 볼 계기도 많았고 삶의 의미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고민들을 깊게 해 볼 좋은 재료들이 되어 주었으니 여러 면에서 아프지만 누군가를 또 공감해 줄 수 있는 재료가 되었으니 감사하기도 하다.


표면적인 이론적인 지식 배움이 아닌 내 몸으로 깊게 생생하게 경험한 탓에 공감의 깊이에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먼저 해결하려고 깊게 자율신경계의 문제, 호흡, 불안, 심리 다방면을 공부할 강한 동기와 계기가 으니 나도 세상에 그때 마주한 따스한 여성분처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블랙아웃이 될 때면 온몸의 모든 것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전부 배설하고 토해내게 되고는 했다. 예전에는 따뜻하고 희멀건 액체가 내 바지를 전부 적실 때 부끄럽고 수치심에 괴로워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는데 그래도 몇 차례 겪어 본 탓인지 조금은 담담해졌고 좀 귀찮은 일이 생겨 짜증이 난 상태 정도로 담담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불쌍히 여기고 심각하게 보듯이 내게는 이러한 일이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이런 에피소드를 담담히 얘기했을 때 겪어보지 못했으니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조금 무게감 있을 법한 얘기를 밝히면 동정을 하기도 했고 조금은 불쾌해질 수 있는 요소가 되니 그냥 헤헤 웃으며 침묵하고 그냥 듣는 리스너가 됨이 어떤 면에서는 마음 편안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화에 동정과 연민보다는 그냥 그렇군.하고 담담히 바라보며 그냥 받아들이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라면 삶을 살아가면서 늙고 죽어 가면서 모두가 일생에 한번쯤은 겪게 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란 생각이 든다. 난 그게 조금 빨리 찾아왔지. 라는 생각이다.


집에 와서 차분히 몸속 배설된 물이 한가득 빠져나간 잔해로 뒤덮인 바지를 빨아낸다.

바지를 벗겨내니 몰랐던 악취가 훅 올라와 코끝을 강타한다.

아기 똥 기저귀를 빨 때 비슷한 경험을 할라나?

손빨래를 하며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난 내 냄새까지는 영 사랑하지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해결하는게 익숙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게 영 어려웠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할 때 이야기하라는 따스한 말 한마디는 딱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한마디만으로 내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소셜링이 끝나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주세요.'를 건네게 되는 말이었다. 혼자 감내하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기와 움직임을 하며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복잡함들을 종종 승화하고자 했던 것 같다.


엘리멘탈 속의 k장녀인 엠버가 유리공예를 하며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를 하듯이 말 못 할 고민과 답답함을 간직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이타적으로 남들 눈치를 살피며 답답한 사람이 되고는 하는 것 같다.

너무 남들 생각하며 맞춰주다보니 번아웃이 와서 때로는 숨어버리며 상처를 주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남들에게 내 감정을 던질까 봐. 상처주게 될까봐 무서웠지.

그러니 침묵을 선택하고 예술 작업을 선택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응급실에서도 별다른 대처 없이 휴식을 취하니 깨끗한 옷을 가져다줄 가족이 없는 내게는 영 골칫거리였다.

한번에 진료로 10여만원이 깨지는 건 백수에 가까운 불안정한 상태였던 내게 영 부담스러운 비용이었다.


사실 이 실신 증상이 왔을 때 응급실에서 별다른 큰 대처법도 없었고 그냥 쉬다가 집에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많이 쓰러져본 탓에 웬만큼 이론적인 설명과 예방법 사후 해결법에 대해 빠삭히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몸의 경직이 풀려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나는 응급실보다는 집으로 가길 부탁드렸다.


쓰러졌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냐?라는 구급대원의

물음에 대해 연기를 하기도 고 강사로 사람들을 마주하는 사람으로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고 얘기를 하는 등 옆에 계신 응급 구조대원과 집으로 가는 길 무미건조한 짤막한 스몰토크를 나눴다.


나는 소심한 관종기질이랄까? 은근히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는 탓인지 가끔 과도한 관심은 버겁지만 이 시선에 부끄럽기보단 그냥 그런가 보다. 관심을 은근히 즐기는 게 있었다. 물론 아플 땐 아파서 그럴 정신도 없었지만..그래서 그런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과몰입을 잘 하는 탓에 슬픈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뒷목, 복장뼈, 가슴 답답증이 올라오기도 했고 분노한 사람의 곁에 있으면 열이 오르고 숨쉬기가 버거울만큼 타인에게 몸이 열려있는 상태일 때 쉽게 동화되고는 했다.


운동을 하고 근육량을 높이면 몸이 닫힌 상태가 되어

오픈되어 말캉하게 침투하는 에너지와 감정을 막을 수 있는데 요새 너무 이완작업에 집중하며 방어막 구축을 소훌히 한탓에 지옥철 안에 많은 사람들의 불쾌함과 짜증이 섞인 듯한 에너지들을 그대로 몸으로 받은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탈 때는 못 느꼈던 불쾌하고 숨막히는 에너지였다. 비슷한 경험은 연극을 하던 대학생 시절 후배들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억지로 집합을 하며 선배로서 자리를 지켜야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였다.


하나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다양성을 존중해주되 강압적인 독재도 필요하다. 물론 그 말뜻을 잘 알긴 한다. 독재자가 재단하듯이 적절히 끊어냄은 필요하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 는 말이 있듯이 산으로 가지 않기 위해 좋은 공연을 위해서 군대식 방식으로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으로 교수도 집합을 은근 눈감고 권유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 양심의 목소리는 불합리하단 생각과 쓰잘데기없는 군대식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끼고 불편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억울하고 불편한 에너지들이 내 몸으로 와닿았다.

그런 에너지를 받고 긴장이 되면 숨쉬기가 불편했고 기숙사에 와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지며 기빨렸다는 표현을 쓰게 됐다.


움직임을 할 때 무용 교수님께는 몰입감이 좋다고 칭찬을 받았었즉흥 예술 기획으로 잠시 머물 때는 이런 나를 예술감독님은 신기있는 무당같다며 농담삼아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어딘가 납득가지 않는 현상들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고 별별 괴이한 현상들을 느끼곤 했다. 


그냥 이유 모를 쌔함을 느낀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그런 날은 소중했던 사람과 머나먼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 모든 경험의 축적이라는 육감, 쌔한 느낌에 대해 몸이 느끼는 소름돋는 감촉과 불쾌감으로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방어막을 치고 어느 시점에는 감정을 차단하고 일로 도피한 시점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전에는 많은 이들과 교류하길 원했지만 모든 사람과 친해지기보단 소수와의 관계를 누리길 다짐하게 됐다.


평범하게 연결감을 느끼고 살고 싶은데 이게 저주인지 축복인지 괴로워 감정을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지식이나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이해할 필요성이 있었고 깊게 파다보니 건강과 감정, 내장기, 순환 모든 것이 다 연결감을 가지고 있었고 중요성을 느끼게 됐다.


작은 것 하나에도 느끼는 바가 많아서 예민함과 창조성은 뛰어났지만 어디가 섞이지 못한 물과 기름처럼 세상과 동화되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 할 것들을 굳이 겪으며 삶이 괴로웠고 책 속에서는 나처럼 복잡한 존재들을 마주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너무 많이 알고 느끼는 것보다는 것은 눈 먼자의 도시 속 주인공이 마지막 눈을 감아 버리듯 때때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 하고 오감을 닫아 놓듯이 무감하게 아픔을 회피하고 하하 웃고 모른척하며 살아가는 삶들이 부럽게 느껴진 시점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아픔을 마냥 모른 척 할 수 없어 세상으로 기어나온다. 종종 폐쇄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절간의 비구니 노릇을 하는 것이 마음 힐링과 행복에는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인, 사이간) 사람 속에 사는 인간이니 아파도 세상에 나와 부딪히는 연습을 해본다.


그리고 크게 성취하며 화려함을 누리는 주목받는 성공적인 삶보다는 평범하게 잔잔하게 삶을 살아가는 행복이 어느새 삶의 목표가 되어 있었다.


가까운 사람의 시선이면 부끄러웠을지 모르지만 나의 대해 쌩판 모르는 남들이니 별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궁금하면 호기심이 많아져서 기웃기웃 쳐다보기도 했으니까. 


문득 생각해 보니 시선보다는 노인의 웃으라는 강요와 억압하는 '말 한마디'가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했었지.


집 근처에 도착해 구급차에서 씩씩하게 멀쩡히 걸어 나가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고는 집의 현관문을 열어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덕지덕지 붙은 오물을 제거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따뜻한 물로 온몸을 씻어내고 깨끗한 속바지로 갈아입어낸다. 남자 사각팬티 같은 짧은 속바지를 입고 반쯤 나체가 되어 냅다 침대 위로 다이빙을 하며 드러누웠다.


'아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어쩌면 실신이 아니어도 늙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임은 이런 아픔에 괴롭지만 담담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고통과 아픔에 꽤나 예민하고 민감한 탓에 매번 아프겠지만 그래도 이 고통을 그냥 받아들여 보고 그냥 삶의 한 여정이려니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사 새옹지마'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잠시 잠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니 그냥 아프면 아픈 내 상태를 나를 돌아볼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그냥 충분히 즐겨보자. 그러다 보면 또 시간이란 약이 해결책이 되삶을 또 감사히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다가오겠지.


어쩔 수 없이 찾아드는 질병, 아무리 예방하려 미리 비타민, 건강 음식을 잔뜩 챙기며 운동을 할지라도 마음의 스트레스나 작게 놓쳐버린 습관에 한순간에 폭삭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통돌이 속에 돌고 도는 빨래처럼 예전에는 극적으로 느껴졌던 수치심과 괴로움도 지금은 반복되는 고통을 마주하니 그냥 일상 속 지나가는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이전보다는 덤덤해진 것 같다.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는 것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어떤 모양이든 그래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


예전에는 감기에 걸리고 몸이 아픈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굉장히 비난하고 자책을 하고는 했다. 아픈 나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증상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조금은 불편할 때가 있지만 심각한 건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편안히 나를 받아들이게 됐다.


그냥 편안함이란 건 무탈하게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 속 모든 에피소드들 받아들이는 방법을 연습하면 그게 편안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빡빡하게 뭉쳐있고 핫도그 하나를 급하게 먹다 체해서 저승사자분과 하이파이브 경험을 하고 나니 노인과 여성분을 보며 많은 걸 깨닫게 됐지.


그렇다면 내게 불편하지 않은 불안하거나 긴장되지 않은

나의 쉼은 여유 있게 자연을 바라봄이었음을 깨닫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보면 다양한 감정들을 지닌 사람과도 참 닮았다. 흘러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연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날 불편하게 긴장하게 하는 시선에 난 꽤나 예민했지만 무대에서 역할에 몰입하게 만드는 관객의 시선은 즐기는 사람이었고 삶에 대한 잔잔한 통찰을 이야기하고 솔직하게 거짓 없이 꾸밈없는 나를 드러내는 대화 속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다양한 여러 가지 모양과 감정 상태에 나를 드러나고 표현하게 할 때 통제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가만히 곁에 머물고 지켜주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꼈고 깊은 고마움을 느꼈었다.


그런 다양한 면모를 선입견 없이 자신의 의견대로 바꾸려들지 않는 사람과 다양한 생각에 대한 소통을 즐길 때 편안했지.  많은 사람보단 소수의 사람과 깊이감 있는 묵직한 대화 속에 행복함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난 타인에게 불편하고 권위적인 각이 잡힌 사람이기보단 자신을 안전하게 드러내고 꺼내며 같이 깊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사람, 각박한 삶 속의 쉼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다.


그러니 한차례 격한 에피소드를 겪고 불편한 일을 겪은 후에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음이 내게는 굉장한 편안함이었단 생각이 든다. 행복과 편안함은 멀리 있지 않았고 모든 사건과 일화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내 마음에 있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았고 일상을 바라보는 내 관점에 달려있지. 어떤 환경이든 내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곧 천국이리라. 물론 인간은 연약한 존재니 환경에 휘둘리고 환경을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이 직면해야만 하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면 그 상태를 직면하며 그 상황 속에서 살아낼 받아들일 구실을 만드는내가 경험했던 해답이었다.


고통과 아픔을 직면하며 파도를 즐기는 법을 익히는 것은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고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여정이었다. 회피할 수록 그 고통은 이유모를 눈덩이처럼 점점 쌓여 내 몸을 짓눌렀으니 그냥 받아들이고 안고 가기로 택했다.


누구는 이런 나를 정신승리한다며 비웃을 도 있었지만 원래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니 그 삶을 통해 그냥 배워가고 받아들이며 즐겨보려 한다. 정신승리가 나쁜가? 타인이 제시하고 사회가 정의하는 행복의 기준이 나의 행복과는 핏 하지 않을 수도 있지. 타인이 무슨 말을 내뱉든 그건 그 사람의 삶의 정답이지.


내 삶의 정답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니 또 생각이 변하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런 마음 가짐이 정답이니 '아~ 그렇구나.'하고 새로운 관점이군. 하지만 내게는 핏 하지 않네.

허허실실 웃으며 넘어가기로 한다.


각자의 때에 따라 깨닫는 시점이 있으니 그냥 서로의 다름을 모두 받아들이고 존중해 주니 모두가 다르지만 대화 속에서 편안함과 깊은 만족을 다름 안에서 연결감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어떤 모양이든 지금 내 삶을 선택하고 정답을 찾는 모든 사람의 여정들이 참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타인이 제시한 정답이 아닌 본인의 답을 찾기 위해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찾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때때로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서 자신을 찾는 길에 좋은 부재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 경험담이 핏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맞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가볍게 지나감이 좋. 이 글을 읽는 모두 따스히 편안하고 안녕하고 건강한 삶들을 살아가길

잔잔히 응원하고 싶다. :)




미주신경성실신 전조 증상이 올 때
불안을 컨트롤하는 몸의 접근 가이드 [Bodyfulnees]


교감신경의 흥분을 낮추고 부교감 신경계를 깨우는 호흡


-30회씩 날숨에 집중해 깊게 숨을 쉰다.

-바닥과 접지하는 그라운딩에 신경을 쓴다.

-복잡한 생각으로 뻗는 사고를 몸감각으로

신호를 보내줄 수 있도록 이마와 뒷목을 두손으로

잡아 주며 호흡한다.

-양 손을 나비모양으로 감싸 안아준다.


#스킨십과 접촉은 유아기 엄마 품에서의 안정감을

줄 수 있고 타인이 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심리적싸개가

되어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 있다.



-"정신 건강이란 자신의 몸을 실제 한다고 느끼고,
그 안에 살아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알레프레드 아들러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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