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7년 1월의 어느 날, 송악의 한 저택에서 남자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륭의 아들 왕건이 태어난 것이다. 당시 송악은 예성강을 통해 중국과 신라를 잇는 해상 교역의 요충지였다. 이곳에서 향료와 비단을 거래하며 성장한 호족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난 왕건은 총명함과 슬기로움이 남달랐고 용모가 훤칠하고 장부다운 기상을 보였다.
889년 5월 화창한 봄날, 어린 왕건은 아버지와 함께 천마산에 올랐다. 산마루에 이르러 멀리 보이는 땅을 가리키며 그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왕륭은 미소 지으며 어린 왕건에게 "그곳은 천안이란다. 삼국의 중심에 있는 중요한 땅이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려 했던 곳이야."라고 대답했다.
왕건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며 "아버지, 언젠가 저 땅에 가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왕륭은 어린 왕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언젠가 네가 그곳에 가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가문의 일을 배우는 게 먼저다. 우리 송악은 바다와 강을 통해 세상과 맞닿아 있으니까."
어린 왕건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가문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당나라 상인들과의 거래 방법, 해상 무역의 비결, 주변 호족들과의 관계 유지, 그리고 군사 전략까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였다. 특히 그의 리더십은 또래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왕건아, 너는 우리 가문의 미래야." 왕륭은 왕건에게 이렇게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러나 어린 왕건의 꿈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단순히 가문의 번영을 넘어서 있었다. 그는 자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더 큰 꿈을 꾸었다. 후백제와 신라로 갈라진 땅에서 백성들이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를 상인들에게서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은 아팠고, 그럴수록 어린 왕건의 가슴 속에는 더 큰 뜻이 자라나고 있었다.
"언젠가 삼국으로 흩어진 이 땅을 하나로 만들어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픔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어린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삼국통일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