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눈치보는 그를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내 성격을 통신망에 비유하자면 단연코 ‘LTE-A’ 적인 성격이다.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하면 밑바닥이 찰랑거릴 때 쯤 과감히 배를 가르고 커피자판기는 버튼 누르는 동시에 컵 나오는 곳에 손을 가져다 댄다. 물론 컵라면에 물 붓고 3분을 기다려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런 조급한 성격의 내가 달라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글을 쓰려 골똘히 생각을 할 때다. 세 시간 이고 네 시간이고 한 자리에 앉아 망부석이 되는 모습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내보이곤 한다. 하지만 전혀 신기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나는 단지, 꿈을 꿀 때 평소보다 조금 더 노력하고 인내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오랜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다. 중학생 때 백일장에 당선 된 후부터 나는 글로 인해 칭찬받고 싶어 했고 또 남보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다. 그 열망들이 대학교를 거쳐 ‘작가’라는 꿈의 실체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꿈과 현실은 항상 얄밉게 그리고 애타게,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게 됐다. 꿈은 포기하게끔 너무 멀지도 그리고 안심하게끔 너무 가깝지도 않았다.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손바닥 안에 느껴지는 것은 내 초조한 식은땀 뿐 이었다.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무렵, 내가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모성의 문학가’인 故 박완서 작가였다.
박완서 작가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것은 MBC 공익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책을 읽읍시다」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소개되고부터다. 아직도 그녀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애독되고 있는데, 그녀가 불혹의 나이에 등단을 한 늦깎이 주부 작가였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자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웠던 70년대 시절, 마흔의 나이에 소설가가 된 여인 박완서. 4녀 1남의 엄마이자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여성동아에 ‘나목’이 당선돼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그녀가 70년대에 소설가로 등단하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과 핍박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애 딸린 여성 작가의 등단은 절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의 고난이 올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것이다. 이 고난은 나를 소설가로 만들기 위한 단련기간이다.
그녀는 자신을 절망시키는 그 어떤 것들을 향해 저항하고 또 인내함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 그것이 ‘인내’가 아니었나는 생각을 해본다. 노력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인내는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문득 신춘문예에 공모하기 위해 몇 달을 밤 새워 글을 쓰던 시간이 생각난다. 글을 쓰려 노력하는 순간은 즐기지만 정작 공모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모습들. 꿈을 향한 발걸음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의 노력을 퇴색시키지 않을 묵묵한 기다림일 수 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나는 우리가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꿈이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떤 연인보다 달콤하게 우리에게 키스를 해주기 위해 먼데서부터 달려오고 있을 꿈. 너무 늦는다고 투정 부리진 말자. 꿈은 A형이라 우리의 투정에 멈칫멈칫 거릴 수 있다. 최선의 노력, 그 후엔 잠잠한 기다림. 그를 하루 빨리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