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Sep 03. 2023

연애 프로그램 애청의 이유


        <하트 시그널> 시즌4가 최근 종영되었다. 아내와 나는 오래전부터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이번 편은 특히 출연자 모두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들인데, 원하는 상대와 연결되지 못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웠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화면을 대단히 뽀샤시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비록 일반인 출연자들이지만 – 물론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을 선택한 이유도 한 몫한다 – 어딘가 비현실적인 구석이 강하다. 

그에 비하면 또 다른 최애 프로그램인 <나는 솔로>는 진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출연하는구나 싶다. 예전에 <짝>을 열심히 보던 사람으로서, 불미스러운 일로 종영된 후 다시 시작된 <나는 솔로>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열심히 시청하는 아내 옆에 앉아 한 편 두 편 보기 시작하니 어느새 또 흠뻑 빠져서 보게 되었다. 매회 꼭 관심을 두게 만드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다만 최근 가장 열심히 본 이 두 편의 장단점과 편집의 방향성이 너무 달라서 시청 시작할 때마다 집중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어딘가 비현실적, 다른 하나는 극히 현실적이라 시청자 모드의 스위칭이 필요했달까. 

           이 외에도 리얼 예능 연애 프로그램이 판을 친다. <나는 솔로>에 가끔 이혼한 사람들 특집 편이 있긴 하지만, 아예 대놓고 이들만 출연시키는 <돌싱글즈>라던가, 멋진 남녀를 모아서 외딴섬에 가두고 서로 알아가는 기회를 주는 <솔로 지옥>처럼 콘셉트도 기발하고 다양하다. 대부분 합숙(?) 기간의 끝에 서로 원하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 주된 목적인 것과 달리, 예비부부를 모아 결혼 자금을 주겠다며 경쟁시키는 <2억 9천>이란 프로그램도 있다. 아주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몇 마디 나누고 게임하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과 작대기를 연결하는 <사랑의 스튜디오>까지 연결될 것이다(아, 옛날이여).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하긴 나 같은 사람들이 많으니 계속 찍어내는 것이겠지. 대체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다. 어째서 내 것도 아닌 남의 연애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가.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사람이라서 남들의 연애가 궁금한 것도 아니다. 어쩌다 17년 정도 된 결혼 생활이 지겨워져서 누구 말마따나 연애 세포가 죽기 직전에 살아나게 하려고 발버둥 치는, 무의식적 행동의 발현이려나? 그런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이성 간의 관심이라는 공통 주제 속에서 간접 체험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업이 있는 일반인들이 짧게는 4-5일, 길게는 한 달을 함께 지낸다. 그것도 대단히 경쟁적인 구도 속에서 지내는 상황에 놓인다. 이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또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 평소엔 하지도 않던 요리를 하고, 편지를 쓰고, 이벤트를 준비한다. 많은 출연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출연 전에는 왜 나가서 다들 눈물을 흘리는지, 힘들어하는지 몰랐다’는 고백이 이런 극단적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사람도 조급해지게 되는 건 합숙 생활이라는, 아주 명확히 정의된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엔 적당한 거리와 관심 속에서 조금씩 알아가도 될 사람들을 정해진 짧은 며칠 안에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와 성공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해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시청자는 편집된 장면을 보기 때문에 양쪽의 입장 차이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출연자들의 시선과 정보는 제한적이다. 오해는 화를 부르고 갈등을 야기한다. 또한 평소 같으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부분이라도 상황에 따라 무심코 지나치거나 지극히 미화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적당히 괜찮다면,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욕심과 함께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 기제가 자연스럽게 발동하지 않겠는가? 


        평소 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대단히 감정 이입해서 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하트 시그널>에서는 한 여성을 두고 모든 남성이 호감을 가졌다. 아내는 - 다시 태어나면 그 여성처럼 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꾸기도 했는데 - 대뜸 나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경쟁할 거야? 아니면 포기할 거야?"


         인기녀의 호감을 받던 남성 출연자는 오히려 자기가 따르고 의지하던 동성의 출연자 때문에, 그녀에 대한 관심과 마음을 끝내 고민하기도 했다(하지만 그의 우유부단해 보이는 모습엔 짜증이 났다!!). 아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 도전해 보겠다고 했지만 실은 또 모를 일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결국은 평소의 내 모습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여하튼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푹 빠져서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듯, 특별히 마음이 가는 출연자의 기쁨과 슬픔에 동조하게 된다. 하여 어떤 편은 마음이 아프거나 답답하고 불편해서 애써 시청을 미뤄두기도 했었다. 패널로 등장하는 연예인들마저 과몰입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비로소 그때 나도 정신을 차리고 환기가 된다. 



<하트 시그널>의 회차가 뒤로 갈수록
패널들이 자주 하던 말은 바로 ‘성장’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일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는 좌절감도 있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는 순간 갖게 되는 짜릿함의 효과는 어마무시하다. 조금씩 밀당을 하면서 맞춰 나가는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진 욕심을 내려놓기도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몇 배의 노력을 더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변해가는 또는 변하려고 애쓰는 출연자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때론 미워하고 안쓰럽게 여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인 '나라면 어떨까?'의 효용성은 그제야 빛을 발한다. 타인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돌아보며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대리 체험하는 기회. 연애와 사랑이라는 주제 특성상 자극적, 선정적이란 꼬리표가 붙긴 해도 이런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근사한 효능이란 생각을 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로의 순간은 가까이에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