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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n 09. 2023

위로의 순간은 가까이에 있다.

최인아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최인아 작가에 대해서는 최근 폴인이라는 플랫폼에 소개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인터뷰에 담긴 그녀의 생각에 동감하고 공감하고 나서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복지가 있다.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연자들의 강연을, 그것도 현장이 아닌 온라인으로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꽤 중요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최인아 작가는 작가 또는 책방의 대표 이전에 회사라는 조직 생활로 30여 년 가까이 일을 하고 지내 온 사람으로서 깨달은 바를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어떤 영역에서 오랜 기간 겪으며 얻은 인사이트에 대해서는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1시간 정도의 짧은 강연 중 특히 공감이 된 것은 두 가지였다.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일하고 조직에는 결과로 기여하라는 것, 그리고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쌓인다고 한 부분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란 일 자체에 대한 개인의 관심과 열정이다. 나 역시 이미 잘 알고 있음에도 언젠가부터 '주인의식' 이야기를 하면 괜히 꼬아서 "내가 주인도 아닌데 왜 그러라는 거냐"며 자조적인 태도를 취하곤 하였다. 사실 일부러 그런 자세를 가질 필요가 없다. 마치 받은 만큼만 일하는 것이 회사원의 미덕처럼 강조되는 시대이다. 열심히 하면서도 괜히 적당하게 일하는 식으로 비치길 바라는 이상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던 것을 반성했다. 


한때나마 승진이나 성과에 대한 기여와 인정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뿐 아니라 좌절감을 크게 느낀 적이 있었다. 뭔가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껴지면,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법이다. 오래전 신입사원 때 일이다. 어떤 선배가 대표로 전체 성과를 발표하다 보니 몇 명의 성과가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비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걸 보고 다른 선배는 '그런 걱정 마라, 윗사람은 누가 한 일 인지 다 안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기대만큼 모두 다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말을 해 준 선배에게 약간의 배신감 마저 가졌었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고, 그래서 정치와 줄 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최인아 작가는 '너의 노력은 다 너의 것으로 온전히 쌓여 있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긴 나의 그런 경험들이 쌓여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고 책으로도 출간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예전보다 살짝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당시 선배의 말도 이해가 되고 최인아 작가의 말에도 공감한다. 


어제는 우연히 팀의 동료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지난달에 회사 동료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의 빌미는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처도 주고받았다. 특히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동료가 건넨 말, ‘단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게 정말로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듣고자 욕심 내던 말은 아니었지만 제삼자라고 볼 수 있는 누군가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정말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는 내가 이렇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를 것이다. 


일터에서 동료나 상사와 다양한 종류의 갈등을 겪는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며 평정심을 잃기도 한다. 많은 경우 내가 위로받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눈치 보며 챙겨줘야 했던 나였기에, 어제와 오늘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듣게 된 누군가의 한 마디가 주는 감동은 크다. 솔직히 위로가 되는 글과 말에 대해 약간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것이 있었다. 넌 잘하고 있어,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무책임하고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겪어보니 정말 위로가 되는 것은 결국 내 상황과 마음에 대한 공감의 그것이었다. 나도 다른 이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글을 쓰며 태도를 가지도록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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