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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Oct 08. 2023

도서관 가는 길에 발견한 것.

사라질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순식간에 도망가고 긴 옷을 꺼내 입지 않으면 어색한 계절이 찾아왔다. 지난여름, 무더위를 핑계로 아내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서 도서관까지 편하게 다녔었다. 선선해진 날씨 덕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보니 집부터 1.5km 정도 되는 거리를 아들과 함께 걸어 다니게 되었다. 걷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니 고작 2700보를 조금 넘는,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짐이라기 보단 운동이다. 게다가 중학생 아들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 과정은 작은 행복이다.


사실 아들에게 있어 최근 일요일 아침의 걷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가끔 하고 있는 게임인 포켓몬고에서 새로운 기능으로 ‘루트’라는 걸 추가했다. 루트란, 참여자가 직접 시작과 끝을 정해놓고 걷는 경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궁극적으로는 내가 만든 경로를 남들이 따라 걷게 만드는 것이다). 매번 남이 만든 루트를 따랐다. 그런데 마침 집부터 도서관까지는 그 경로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며 그걸 위한 기회와 시간으로 삼는 것이다. 공부하러 가는 길에도 게임은 놓을 수 없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의도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부지런히 새로운 루트를 만드는 아들 곁을 따라가는 나는, 어제 봤던 <무빙>의 농담,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이 뭐게,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다. 옆 사람들이 조깅하는 다른 이들을 보며 아침에 뛰는 게 좋냐, 저녁이 나은 거냐 이런 말을 하길래 아침에 뛰면 조깅, 저녁에 뛰면 야깅이란 시답잖은 말까지 붙였다. 돌아오는 반응은 당연히 ‘핵노잼’이지만 원래 아재 개그란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곱씹어 볼수록 실실 웃음이 나오고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도 꼭 한 번 써먹어야지 싶은 매력이 있는 법이다.


날이 선선해진 덕분일까. 열심히 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다들 부지런하다. 일요일에만 뛰는 것이 아닐 게다. 평일의 출근길에도 차 안에서 바라보면 이른 아침부터 뛰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네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뜀박질하면서 근육 잡힌 종아리라던가, 땀으로 다 젖어버린 등판, 가쁘게 몰아 쉬는 숨찬 얼굴을 보면, 무엇이 저들을 뛰어다니게 만드는가 궁금해진다. 비록 나의 궁금증이 피어나기도 전에 저 멀리 사라지기에 질문의 유효기간은 짧지만 말이다.


도서관 앞에 이르기까지 딱 한 번의 언덕이 있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제법 경사가 크다. 남들처럼 뛰지는 않았지만 그걸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오르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여긴다. 그렇게 목적지를 만나게 되는 순간엔 특별할 것 없는 성취의 작은 기쁨이 있다. 정해 둔 지점에 도착하였기에 어느덧 아들의 루트 제작도 끝이 났다. 이제 매주 자신은 이 경로를 걸을 것이란다. 부자의 동행은 동상이몽이었지만 같은 곳에서 끝났다.


아니, 이제 도서관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할 시점이다. 아들은 공부를, 나는 독서를 한다. 따져보면 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적지까지 혼자든 함께든 가다 보면 언젠가 이른다는 것, 그 과정에 걷든 달리든 그저 도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목적지에서는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어쩌면 지루하게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 도서관에 앉아 숨을 고르고 오는 길을 복기하며 일상의 작은 발견에 기쁨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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