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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02. 2024

자리를 뜨려니 후회만 남는다.

업무 이관을 준비 중이다.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3월 시작할 때는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된다. 현재 파트의 일은 작지만 확실하기 때문에 업무 역할을 정의하는 어려움은 없다(만약 그 조직은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매우 곤란해진다).

 

적어도 조직 존재의 이유는 명확하다면, 그걸 증명해야 하는 고단함은 없다. 대신 더 효과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참여하고, 조율해 가면서 나름대로 운영의 체계를 재정비했다. 상무님이 던진 숙제를 단기간에 완수하여 인정도 받았다. 그러므로 풍족하진 않지만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며 내가 리더로 있는 동안 명확한 뭔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떠날 때는 ‘참 괜찮아졌어’라는 후일담을 듣고 싶었다. 앞으로 한 달 여 남은 내 시간은 남겨 두었던 보고서나 쓰면서.  


분명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 계획엔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일이 끝나지 않고 되려 확장되는 느낌이다. 마치 내 생각을 비웃듯 크고 작은 일이 더 생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완성하지 못한, 완료하지 못한 프로세스 확립과 체계의 불안정성에 대해 후회가 남는다.


실은 더 깐깐하게 했어야 할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를 가르치기는 귀찮고 어려우나 내가 조금 불편하면 쉽게 지나가는 그런 업무. 루틴 하지는 않아서 내 선에서 적당히 정리하여 확장을 막고 있던 잠재적인 상황들. 개인기를 발휘하면 당장은 ‘이게 내 존재의 이유지’라며 스스로는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시스템의 개선을 막고 있는 셈이다. 겉에서 보면 멀끔해 보이지만 조금씩 새는 곳을 임시방편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 이제야 눈에 확 띈다.


욕심이 있었다. 후임에게 잘 정돈된 업무 체계, 협업의 프로세스를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 이 일을 하게 될 사람은 우당탕탕 부딪히기보다는, 내가 써 둔 JD 매뉴얼대로 대응하면 되도록 돕고 싶었다.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다. 떠나려는 걸 알고 그러는 건지 - 실은 그런 이유 전혀 없겠지만 무탈히 진행되는 수많은 의뢰 업무에 유달리 최근 들어  많은 질문과 새로운 사람, 그리고 의외의 상황들이 지나치리만치 많이 펼쳐지고 있다. 더 이상 개인기로 틀어막지 말라고, 마치 내가 제대로 업무 완수를 못하고 가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말이다.


어쩌면 원래 늘 있던 일일게다. 정리하고 물려주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침소봉대하듯 유난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땐 참아 보던 일을, 다른 사람의 일로 바라보니 미안해진다.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던 작은 것들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잘했다고 생각한 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착각이었을 뿐이다. 리더는 자기 잘난 것을 드러내는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다. 나의 귀찮음을 극복하고, 시간을 할애하며 오늘보다 더 나은 상황과 업무 컨디션을 동료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새로 올 사람에게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을 주고 싶은데 어째 원래보다 더 널브러진 서류들이 나뒹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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