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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Feb 18. 2024

진실한 성장은 자기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전에는 주어진 역할이 있으면 감사해하며 ‘잘 해내야 한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 그게 나의 쓸모라고 생각했으니까.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굳이 나에게 전달된 어떤 숙제가 있다면, 그건 피하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고맙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OO 전문가' 비슷한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면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되는 셈이다. 가끔 실제로 특정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인지할 시간도 없이 일단 뛰어들었다. 역할을 준 리더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일단 숙제는 잘 마치는 모범생이 되려고 했다. 


우리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주하는 꽤 많은 상황은, 역량이 있어서 승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능력을 소진하면서 계속 어떤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일처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고갈되면 채워야 함이 옳다. 그러나 대부분 그럴 기회는 역할과 지위에 따라 오히려 반대가 된다. 즉 주니어 시절엔 역량이 부족하고 배우며 부딪힐 시간과 기회가 남는 반면, 시니어가 되면 오로지 나를, 조직을 증명해 낼 필요성만 남을 뿐이다. 피터의 법칙으로 불리는 것이 있다. “승진은 승진 후보자의 승진 후 직책에 관련된 능력보다는 현재 직무 수행 능력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팀장이나 상무로 승진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동안의 능력 덕분이지만, '과거의 능력'이 현재와 미래의 그것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지나고 봐야 안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단순한 표현엔 꽤 함축적인 의미가 꾹꾹 담겨 있는 셈이다. 


승진을 떠나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은 조직 생활에서 정말 중요하다. 자만하지도 말 것이며 자책할 필요도 없고, 딱 정확하게 알면 좋다. 스스로를 협상 전문가로 자칭하는 사람이 있었다. 난 단 한 번도 그가 멋진 협상을 이끌어 낸 것을 본 적이 없었다(나 몰래 모르는 곳에서만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소문도 듣지 못했다). 자기 브랜드를 스스로 개척하는 적극적인 태도는 바람직 하지만, 자칫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양치기 소년이 될 뿐이다. 나는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너희를 믿는다고 매번 말하면서 작은 업무조차 임파워링 하지 않는 상사를 겪어 보았다. 잘 될까 걱정이 앞선 이유에서라고 이해는 한다. 그러나 그의 말도 믿지 못하겠다. 


<최인아 책방>의 마님이자 작가, 기업의 컨설턴트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가, 잘 나가던 제일기획의 부사장을 떠나게 된 계기는 '내가 이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광고계의 빠른 변화와 트렌디함을 따라잡고 판단할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때, 아니오라는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슬픈 결론이긴 하지만 아무 역할이나 자리에서 언제든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전에 썼듯이, 무릇 리더라면 자기를 보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의 잘못된 판단이나 욕심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의 커리어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자리에 있을수록 더 냉정하게 자기 능력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부족하면 내려놓을 용기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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