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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20. 2024

회사에서 대화가 어려운 이유

산업적 관리는 특히 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화는 통제하거나 계획하기 힘들다. 효과적인 대화에는 상사가 지시하는 수직 체계를 허물어뜨리는 일정 수준의 평등과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산업 조직들은 회의를 더 선호한다. 그들은 회의를 대단히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산업적 회의에는 실질적인 만남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회의는 몇 분간 진행되는 질문과 대답을 위한 그룹 강의다.

-의미의 시대/세스 고딘


연구소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면서 가졌던 질문 중에는, ‘무엇이 회사 연구소와 대학(원) 연구실의 차이를 만드는가’가 있었다. 지금이야 비교적 명쾌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답을 낼 수 있지만, 가끔 주변에 보면 아직도 그 답을 제대로 찾지 못한 동료들이 보일 때가 있다. 돈을 위해 일하느냐 vs. 연구를 위해 일하느냐처럼 연구 목적이나 관점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일 큰 차이는 바로 ‘회의’라는 문화와 방식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하는 회의야 말로 회사를 회사답게 만드는 행위라 생각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 결과를 논의하는 것, 그리고 의사결정을 하는 등 업무의 흐름마다 (때로는 위험한) 회의가 도사리고 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회의들이 실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기회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회의와 대화는 엄연히 다르다. 다만 회의는 형식적으로는 대화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들어 ‘자유로운 발화와 편안하게 의견이 오고 가야 한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풀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회의의 형식적인 측면이 마치 ‘일상의 대화’처럼 되어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회의 참석자들은 ‘평등한 발언의 기회와 권리’를 기대하거나 예상하지만, 실제로 회의 자리엔 엄연히 수직적 관계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다. 발화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해도, 각 발언의 무게 또는 가중치, 의미와 영향력은 다르다.


문제는 회의에서 대화를 기대하는 나에게 있었다. 이럴 거면 회의는 왜 하자고 했나?라고 생각되는 많은 사례들이 떠오른다. 앞서 세스 고딘의 책에서 인용한 내용을 읽자마자 비로소 내가 가졌던 인지 부조화를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회사의 회의 자리에서 참석자 누구나 동일한 무게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조리하게 생각된다. 경력, 경험이 주는 한 사람의 종합적인 아우라는 신뢰성 이상의 가치가 있다. 거기에 더해 수직적 관계로 형성된 직급은 회의 방식과 문화에 정점을 찍는다.


‘관계는 평등하게 가져가자. 그러나 회의 발언의 무게에는 차이가 있다’


이 이질적인 가치의 부딪힘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래서 좀 더 건설적인 회의 문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해 본다.


-회의 성격을 먼저 규정할 것. 직급 관계없이 얘기하며 의견을 나누는 자리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각자의 지위와 직급이 우선인지.

-회의 방식을 결정할 것. 퍼실리테이터를 두고 발언권이나 발화의 시간 등을 조절할지, 자유롭지만 불평등할 수도 있는 방식을 가져갈지.

-마인드셋을 정할 것. 내가 회의에 들어가는 건지, 대화를 하러 가는 건지, 참가자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만 직급이 높은 사람의 말이 누가 봐도 옳지 않거나 불합리적일 때, 그것을 바로 잡을 여유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용기 있는 문화가 있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그게 없다면 결국 우리는 대화의 형식을 빌어 회의를 가장한 명령을 받기에 급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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