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들어와 10년 동안 피부 연구만 했었다. 그러다 상무님의 강제적인 요청으로 두피 연구를 하는 임시 조직의 리더를 맡게 되었다. 두피 연구하기 싫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상사가 하라니 - 발령은 나버렸고 - 어쩔 수가 없었다. 반대의 뜻을 관철하지 못한 내 불만은 컸고, 불만보다 더 심각한 건 부족한 자신감이었다. (두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조직의 리더를 하라니. 리더 자격이 있다고 좋게 봐준 것은 고마웠지만, 건방지게도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직 운영은 연구 주제에 대한 지식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나에게 요구했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지만 그땐 아무것도 몰랐다. 당시 무작정 다른 선배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을 때,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같은 상황이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피부를 잘 아는 사람이 두피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면 그건 강력한 역량이 될 수 있다. 전문성과 역량이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선배의 혜안이 크게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많지 않지만 몇 사람의 후배에게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들어본 말이다. ‘싶었어요’라는 과거형인 이유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사자가 조직 이동에 실패해서, 또는 내가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한 인연들. 나는 그들이 정말 함께 일할 수 있었다면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할지, 아니면 후회할지 궁금했다. 상상하던 것과 경험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어쨌든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힘이 나지만, 어떤 요소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어필하는 건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환상 속 괜찮은 선배 코스프레를 즐기고 싶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사람들이 가진 나에 대한 평판이 그렇기 나쁘지 않음에 감사한다.
작년부터 상사와 정기적인 1 on 1 미팅을 참 많이 했다. 새로운 업무를 세팅하는 단계였기에 상사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변화할 수 있다. 그런 압박(?)의 결과일까. 스스로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변화라서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영역이다(라고 생각했다).
미팅이 끝나고 일어나는데 갑자기, 다른 임원에게서 ‘나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들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조직 생활에선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지켜보고 있다. 나도 그렇다. 의식적으로 남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의 캐릭터는 저렇구나, 이 사람은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남들이 보기에도 확실히 변화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어딘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애썼던 1년 이상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보상받는 느낌. 별 것 아닌 말이었는데 며칠 동안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좋은 학력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부서를 거쳐봤고 해외 경험도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항상 조직 생활에 어느 정도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불안함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알아낸다고 해도 뾰족한 해법은 없다. 그러한 불안함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라 고마우면서도 삐끗하면 확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지 모른다는 반대급부도 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지간하면 인정을 받아왔음에도 여전히 인정에 대한 욕심이 있다. 다만 인정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액션은 크지 않다 보니, 늘 어정쩡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나 싶다. 어쩌면 그게 다시 불안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된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상사가 요즘 어떻냐고 물었다. 두서없이 답변을 했다. 그리고 별다른 연관성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한 마디, 잘하고 있다.
뭔가 간파당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그렇지만 싫지 않았다. 어쩌면 세심한 관찰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잘 아는 상사가 ‘잘하고 있다’고 해주는 말처럼 든든한 건 없다.
누군가의 말은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어떤 말은 방향을 바꾸고, 어떤 말은 버티게 만든다.
나를 바꾼 건 결국, 그런 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