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외부 기술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우리 연구개발에 접목하거나, 공동연구를 하거나, 투자하거나 아니면 더 큰 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업무를 진행해 오고 있다. 기본적인 판단은 나와 몇몇 동료가 관여하지만, 더 깊은 이해와 판정은 현업의 전문가들 지식과 경험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 때로는 꽤 괜찮아 보여서 담당자들에게 빠르게 연결할 수 있을지 문의할 때가 있다. 이렇게 문의했을 때 받는 피드백의 상당수는 ‘별거 아니다’라는 답변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9월호, “기술 초기 단계선 내부지식 독 될 수도. 낯선 시도 늘리고 외부 지식 흡수해야”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글의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내부에 쌓인 관련 지식이 많을수록 기술 변화기에는 성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초기 단계에 있을 땐 내부 지식이 오히려 성과를 깎아내리는 덫으로 작동할 수 있다
즉, 지배적 기술, 표준화된 기술이 없는 초기에는 보통 종전에 보유하고 있는 지식을 과신하므로, 사람들은 익숙한 해법만 고집하게 된다. 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익숙함의 주변을 맴돌며' 기존 해법을 살짝 수정하는 수준이란다. 새로운 것보다는 내가 잘하고 익숙한 것을 따르기 쉽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신기술이 자리 잡게 되면, 비로소 내부 지식과 역량이 강점으로 작용하여 실수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된다는 내용이다.
보통 NIH(Not Invented Here, 내가 개발하지 않은 것) 신드롬으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상당히 일반적이라 내 동료들만을 탓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도 기술을 검토하다가 ‘피부 조직의 장기간 배양 기술’을 할 수 있다는 회사를 알게 되어 유관 부서 담당자에게 소개를 했다.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답변이 실망스러웠던 건, 내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내부 역량이 분명한 한계가 있는데 담당자에게서 꽉 닫힌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설사 내가 가진 기술이 일부 있더라도 그걸 더 개선할 수도 있고, 더 효율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 열린 의지가 없음을 느끼고 ‘역시 그런 건가’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위의 기사는 이처럼 내부 지식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요소로 두 가지를 제안한다.
-과거의 실패와 학습 기록이 편향성을 줄인다
-외부의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 흡수를 통해 한 가지 방법에 대한 고집을 완화한다
실패에 대한 기록이 열린 태도를 취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때로는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나쁜 방향으로 편향성을 더 증폭시키기도 한다. 전문가 입장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는데 적당한 성공으로 연결된 경험을 하지 못하면 되려 더 닫힌 태도를 갖게 만드는 것이다.
외부의 최신 기술을 본인이 알아보는 것이 어려울 때, 나처럼 다른 사람들이 던져 주는 정보에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좋겠다. 물론 모든 담당자들이 자기 고집만 피우는 건 아니라서 어떤 경우는 ‘더 알아보면 좋겠다, 과제에 연결해 보고 싶다’는 긍정적 신호를 보내오기도 한다. 그럴 때 소개하는 당사자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잘되든 안되든 시도해 보겠다는 의지가 반가운 것이다.
외부 기술이 항상 옳다는 주장이 아니다. 당연히 내부 역량을 높여 기술의 전문성과 장벽을 세우는 것이 ‘연구소의 기술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기술 단계에 따라 특정한 기술을 내재화하려면 가변적으로 운영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 중 중요한 하나로 바로 ‘열린 태도’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국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