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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I Apr 07. 2021

프랑스 브랜드, 아페쎄

A.P.C: 한국인과 일본인의 취향을 저격한 프렌치 스타일

 "언니, 이건 어떻게 읽어요?"

새로 입사한 프랑스 유학파 동료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불어 발음들을 물어봤다. 크로와상, 떼제베, 아페쎄... 내가 읽으면 정직한 한국인 발음인데 불어에 능통한 사람에게 들으니 확실히 달랐다. 아페쎄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게 '브랜드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였다. 에이피씨는 너무 영어스럽고, 아페쎄라고 읽으니 불어 느낌이라 감성 저격으로 딱이었다.


 20살이 되어 서울에 상경하던 해, 인스타그램으로 서울에 사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많이 팔로잉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한 브랜드가 아페쎄였다. 당시 제일 히트였던 상품은 하프 문(half moon) 백이었다. 아페쎄는 20대 젊은 세대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라고 알려져 있는데, 맞다. 10대들이 쉽게 구매하기엔 가격대가 있고, 3-40대가 즐겨 매기엔 다소 캐주얼한 느낌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때보다 소비층이 더 넓어진 느낌이다.


 부제목을 '한국인과 일본인의 취향을 저격한 프렌치 스타일'이라고 달았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브랜드지만 한국, 일본 고객의 비중이 매우 높다. 특히 일본에서는 일본 한정 상품도 출시된 적도 있다. 다이칸야마라는 일본의 부촌 지역에 갔을 때 아페쎄 매장을 보고 들어가 보고는 싶은데 문턱이 높게 느껴져서 밖에서 사진만 찍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어렸을 때는 그랬다.



 대학생 때 아페쎄에 대해 한 번 조사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직접 구매한 적은 없어서 브랜드 역사와 사업 위주의 정보를 찾았었다. 데님으로 시작한 브랜드, 튼튼한 소재 때문에 팬층을 형성하게 된 브랜드라는 점을 알게 됐던 게 기억난다. 내가 아페쎄 상품을 가방 위주로 구경하고, 구매하다 보니 잊고 있었는데 아페쎄는 데님 상품이 정말 괜찮다. 런던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언니가 입고 온 생지 데님이 너무 예뻐서 어느 브랜드냐고 물어봤는데 아페쎄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액세서리나 화장품 브랜드를 물었던 적은 있어도 청바지를 물어본 적은 처음이라 역시 아페쎄라고 생각했다.


 글을 저장해놓고 다시 이어 쓰는 시점에, 아페쎄와 사카이의 콜라보레이션이 출시됐고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두 브랜드명을 합쳐 쌉카이라고 하던데, 구매 욕구를 마구 상승시킨다. 사카이 외에도 칼하트와도 콜라보를 했는데 런던과 바르셀로나 매장에서 보고 살 뻔한 걸 최선을 다해 참았다.



 아페쎄를 직접 구매하게   런던에서 락다운(국가 봉쇄)으로 한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였다. 스트레스 풀이용 충동 구매가 아닌가 싶어 한참을 망설였는데 결국은 카드를 긁고 나왔다. 스트레스 풀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으니 적당한 소비였나 싶기도 하다. 사연을 설명하자면 조금 구구절절하고 긴데, 이게 MZ세대의 소비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라는 게 상륙하기 직전의 겨울, SNS에서 아페쎄 백 사진 한 장을 봤다. 아페쎄의 가격대는 이미 잘 알고 있고, 내 월급으로 갖고 싶은 걸 다 샀다가는 당장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서 마음속에 저장해놓고만 있었다. 같은 플랏에 살던 친구와 소호에서 만나 놀고 있었는데, 눈 앞에 아페쎄가 보였고 그 마음속에 저장된 백 때문인지 매장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매장으로 이끈 나보다 이끌려간 친구가 더 쇼핑에 빠져있었다. 나는 웬만하면 친구들의 충동구매를 막는 편이라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타일러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하지만 며칠 뒤, 혼자 가서 그 백을 구매했다는 친구 말을 듣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오래오래 쓸 가방이고, 그 가방을 꺼내 들 때마다 내 생각이 날 테니 추억이라고 합리화시켰다.

몇 달이 지나 코로나가 락다운을 가져왔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 판데믹에 지쳐있을 때 락다운이 완화됐고, 그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실내는 무섭고, 쇼디치에서 만나 공원 피크닉이나 가자고 했다. 이전보다 한적해진 쇼디치 거리를 걷는데 아페쎄가 또 눈 앞에 있었다. (결국 사야 할 운명인 건가) 또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갔고, 락다운 때문인지 세일을 하고 있었다. 쇼핑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 마음의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비장하게 외치는 친구의 한 마디. "언니! 저 이거 살래요!" 그 말을 듣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고 세일 가면 내 잔고로 아예 못 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듣고 있던 직원까지 거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이 컬러가 세일하는 건 처음 봐. Awesome!" 그렇게 나는 결제를 마쳤고 가방은 집에 잘 있다.


 옷 방에 가방 더 추가된 걸로 끝난 소비가 아니다. 20살 때부터 오랫동안 지켜봐 오던 브랜드와의 추억을 구매한 것이고, 아시아 진출에 성공한 프랑스 브랜드이면서 품질 좋은 소재로 오래 쓸 상품을 만드는 이 브랜드의 가치와 스토리를 구매한 것이다. 저렴한 SPA 브랜드들이 규모를 키우고 있는 와중에 유행을 좇지 않는 컨템퍼러리 브랜드들이 꾸준히 자리를 지켰으면 한다. 내 가방도 몇 년 뒤에 동생에게 물려줄지, 내가 들고 다시 런던에 방문해 추억을 회상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있어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브랜드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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