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L: 진짜 월드와이드 네트워크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말로만 들어보고, 뉴스에서만 보던 해외직구를 시작한 날, DHL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예상보다 빠른 배송에 직구를 끊을 수 없었다. 모든 배대지(한국으로 국제 배송을 제공하지 않는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이용하는 배송대행 서비스)가 DHL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DHL로 배송을 한다고 하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타업체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 직구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노란 배경에 빨간 글씨의 택배차를 본 적이 있어서 친숙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DHL과의 인연은 영국에 가고 나서부터 더 확대되었다. 정확히는 영국에 있는 모든 택배사와의 끈질긴 인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택배사를 이용하든 서비스에 대해 불만족스럽거나, 물품이 분실되거나, 오배송을 경험할 일이 많지 않았다. 내가 이용한 쇼핑몰이 계약한 택배사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택배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나 특별히 불쾌했던 경험은 없었다. 외할머니께서 4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계셔서 택배로 반찬을 받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택배기사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셔서 오히려 그분들께 감사했던 경험이 더 많다.
왜 영국에 있었을 때 이용한 택배사들을 '끈질긴 인연'이라고 표현했냐면, 한국에서와는 정반대로 불편했던 배송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배송 중 분실은 기본이고, 기사 마음대로 우리 회사와 상관없는 이에게 택배를 전달한 뒤 아무 이름으로 수령 사인을 하거나, 도착하기도 전에 '배송 완료' 상태로 변경해 당황시킨 적도 있다. 그때 내 플랏 메이트(같은 플랏에 사는 친구)는 재활용 쓰레기통까지 열어봤다.
본의 아니게 FedEx(페덱스), UPS, dpd, Royal Mail 등 다양하게 이용해봤는데, 그중 DHL의 서비스가 독보적으로 마음에 들어 이 글까지 쓰게 됐다.
제목에도 써놨듯이, DHL은 미국에서 시작해 현재는 독일 회사인 국제 화물 특송 기업이다. DHL이라는 이름은 미국인 창립멤버 세 명의 성(Family name)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독일에서는 데하엘로 불린다.
작년에 창립 50주년 기념 굿즈가 한국에서도 판매됐는데, 개인적으로 DHL의 로고를 좋아해서 기억에 남는다. 국제 배송을 제공하는 회사로서는 역사가 길기 때문에 '최초'의 수식어도 몇 개 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양 익스프레스가 1977년에 총대리점 계약을 체결해 벌써 45년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어렸을 때는 국제 택배를 이용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내가 좋아하는 현재의 DHL로고는 2003년에 나왔는데, 도이체 포스트가 DHL 지분을 모두 인수한 직후이다. 맥도널드도 그렇고 노란색과 빨간색의 조합은 참 강렬한 것 같다. 지나가는 DHL차, 직원용 재킷, 여기저기 붙어있는 로고 자체가 이동하는 홍보 수단이 된다. 한국에서는 작은 택배차들만 일부 도시에서 지나다니지만, 런던에서는 노란색 초대형 트럭이 자주 보여서 시선을 빼앗는다.
영국 내 도시 간 배송일 때는 주로 dpd나 로얄메일이 왔고, 국제 배송일 때는 DHL, 페덱스, UPS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DHL의 독보적인 장점이라면 '빠른 배송'과 '빠른 컴플레인 해결'이 있다. 타 업체 중 고객이 수령하는 모습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곳도 있는데, 바닥만 대충 찍어 올리는 경우가 많아서 쓸모없는 서비스라고 느꼈다.
DHL을 이용하면서 이태리-영국, 영국-한국, 영국-독일 간 배송을 실시간으로 추적해봤는데 세관 이슈가 없는 한 2영업일에서 4영업일이 소요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DHL은 비싼 만큼 그 값을 한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저 정도면 국내 배송이나 다름없는데 DHL이 커지면 커질수록 해외배송과 국내 배송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택배 컬렉션(픽업)을 예약했는데 기사가 오지 않는 등 서비스 이용과 관련해 컴플레인을 접수했을 때, 빠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택배사이기도 하다.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기사가 무단으로 고객의 요청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 상의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객센터에 연락했을 때 영어 원어민 상담사가 전화를 받는 것 또한 큰 장점이었다. 수요 대비 공급, 인건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많은 회사들이 영어를 너무 못하는 상담사를 채용하거나 외부 업체에 맡겨 원활한 상담이 불가했던 적도 있었다.
다만, 한국인이 해외 배송사를 이용하면서 간절히 바라야 하는 '국가 오배송' 이슈는 DHL에도 해당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SOUTH KOREA 대신 SOUTH AFRICA로 간다거나, NORTH KOREA로 간다거나...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그 일을 겪었다. 어떤 택배사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에 있는 친구가 나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그게 다른 나라로 가서 몇 달을 떠돌다가 결국 분실 처리됐다고 한다. 그 일을 겪고 나서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짐을 부칠 때 SOUTH를 대문자로 아주 크게 적거나, 특수문자로 강조한다.
당분간은 DHL을 이용할 일이 없지만, 상하차 중인 DHL 기사님을 발견하면 예전 일이 하나씩 떠오른다. 최근에 공표했던 탈탄소화와 AI활용, 개발도상국 배송을 어떻게 해나갈지 기대하며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