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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I Mar 24. 2021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브랜드,
르라보

Le Labo: 이름 뒤에 붙은 숫자의 의미가 뭘까?

 르라보는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마자 알게 된 브랜드다. 세세한 정보는 몰랐어도 라벨이 붙어있는 보틀 디자인과 대표 향 정도는 알고 있었다. 향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독특한 향을 제조하고,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니치 향수 브랜드로 유명하다. 향수라는 것 자체가 역사가 길기 때문에 1800년대부터 시작된 브랜드도 많은데 르라보는 2006년에 뉴욕에서 설립된 회사다. 부정확한 정보가 많아 자세히 찾아보니, 뉴욕에 거주하던 파브리스 페노와 뉴욕과 파리를 오가던 에디 로시가 투자 자금과 광고 없이 뉴욕 놀리타 지구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고 한다. 원료를 남프랑스 그라세 지역에서 공수하고, 공동 설립자 두 명이 프랑스인이다 보니 사람들이 헷갈릴만했겠다. 지금은 에스티로더 그룹 소속이다.

 

 처음 방문한 르라보 매장은 런던 소호에 있는 작은 매장이었다. 손님 세 명과 직원 한 명만 있어도 좁을 정도로 작았다. 나무 바닥 삐걱이는 소리와 숨소리만 들리는 정적에 많은 향을 시향 해보지는 못했다. 많이 들어본 상탈 33, 베르가못 22, 어나더 13 정도만 시향 해봤는데 아주 독자적인 향이었다. 막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라 무난하고 대중적인 향수 위주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구매해야겠단 생각보다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 르라보 매장은 비슷한 인테리어 스타일이다. 마치 요즘 망원동이나 성수동에서 유행하는 빈티지 느낌이다. 소호 매장은 일부러 그런 느낌을 냈다기보다 원래 낡은 건물이지만,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지워내지 않은 것이 바로 르라보 스타일이다.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킨다는 니치 향수의 뜻과 다르게 내가 알고 있는 브랜드들은 거의 다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각 향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베스트셀러들은 서울 시내에 다니다 보면 하루에 세 번 이상은 맡게 되는 것 같다. 르라보야 말로 니치 향수라는 단어에 맞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르라보라는 이름부터가 laboratory(실험실)이라는 의미의 불어 단어다. 향의 이름 마지막에 붙는 숫자도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사용된 원료의 개수를 뜻한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구매한 첫 르라보 향수는 베르가못 22다. 핸드크림 히노끼 향도 같이 구매했다. 베르가못은 모든 향수 브랜드들이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무난하지만, 편백나무 향을 핸드크림으로 제조하는 것은 처음 봤다. 바질과 히노끼 사이에서 저울질을 했는데 후기글만 읽어서는 어떤 향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어떤 향수든 그렇다마는, 르라보 제품만큼은 시향이 필수다. 바디워시, 바디로션도 인기가 많은데 다른 사람 취향 따라 구매했다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듯하다.


 르라보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100% 비건이며 파라벤과 보존료를 넣지 않는다. 매장에서 리필 서비스도 제공한다. 제품 겉면에 제조지가 기재되어 있는데, 내 껀 둘 다 Made in USA다. 내가 쓰는 향수의 출발을 안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향수를 구매할 때 마음에 드는 향으로 가볍게 고를 수도 있지만, 르라보는 어떤 원료가 들어가 있으며 언제까지 사용해야 하는지 따져보게 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면 주문하는 그 자리에서 핸드블렌딩을 하며, 원하는 문구를 넣어 라벨링도 할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는 아니지만 커스터마이징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브랜드다.


 향수를 포함해 향이 있는 바디크림, 핸드크림, 립밤을 고를 때 그날의 기분과 날씨, 만나는 사람 등 모든 요소들이 크게 반영된다. 또, 타인들은 때때로 나를 어떤 향기로 기억한다. 반대의 경우에도 그렇다. 내 기분을 대표할 수도 있고, 나를 대표할 수도 있는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향이 있는 상품 앞에선 더 신중을 기한다. 그런 고객의 경험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르라보의 브랜딩 철학이 좋다.


 요즘에는 일부러 희귀한 브랜드를 찾아 나서거나 향수 공방에서 직접 원하는 향을 제조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나만을 위한 향의 수요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르라보의 팬들에게 왜 르라보가 좋냐고 물으면 향에서부터 패키징, 서비스, 매장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이 취향 저격이라고 답할 것이다. 브랜드를 갖추는 요소 하나하나가 시너지를 이룬다는 것이 르라보가 성공한 이유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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