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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빠빠 Aug 23. 2022

스페셜리스트로 은퇴하기

관리자 커리어밖에 없는 한국.  관리자 커리어를 선택하는 일본

올해가 되면 일본에서 근무한 지 8년 차가 된다. 8년 전부터 팀장이었으니 여기서 관리자로만 8년이 넘었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바로 팀원들의 평균 연령이 나보다 높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가고 지금 한국 본사 팀장이 나보다 어린 사람이 수두룩한데 왜 그럴까?


먼저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일본에 취직률은 거의 100프로에 가까워 특히 인기가 많은 젊은 인재들을 외국계 기업이 채용하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차선으로 베테랑 경력자들을 많이 뽑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이런 인력들은 고집도 세고 나이 어린 외국인 팀장 말을 들을지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같이 일해보니 오히려 적극적이고 자신의 일을 프로답게 책임감 있게 완결하는 자세가 젊은 직원보다 높았다. 또한 팀장 앞에서 겸손하고 관리자를 존중하는 태도 등 직장 예절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일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생각도 잃어버렸던 것 같다.


일본은 고령화 시대.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40-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 회사에서 오래 다닐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이 관리자로 성장해야 된다는 편견을 버리고 전문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본인의 경험 지식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회사 내에서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을 능력이 없다고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관리직으로 성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직장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관리직으로 승진해서 조직관리, 일정관리, 상사 관리 등에 시간과 열정을 쏟기보다는 자신의 직무에 전문성을 높이고, 실무에서 삶에 재미를 찾는 동시에 works & balance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50대 중반을 넘어서면, 관리직을 하다가도 본인 스스로 전문직으로 전환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건강/체력 직무전환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관리직으로 은퇴하면, 사실 해당 직장에서 전문직으로 전환해서 정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근무하거나,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회사 기술팀 부장이 작년에 56세가 되면서, 팀 내 차장에게 자원해서 팀장 자리를 양보하고, 본인은 그 밑에 팀원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사례이지만, 팀원이 된 팀장은 차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으며, 담당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고, 본인에 업무에 만족하면서 정년까지 근무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40대 넘어서 회사에서 팀장을 못하면 눈치를 보다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는 후배를 위해 용퇴해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베테랑 전문가 양성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싶다.  20-30년 동안 쌓아온 소중한 경험이 한순간 사라지고 치킨집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한국에 직장인들이 안타깝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단,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연/지연, 유교문화가 너무 강하게 얽혀 있다. 팀장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를 두는 것을 극도로 어려워하는 문화, 반대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를 모시는 것을 인생에 패배로 인식하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이러한 베테랑 전문가 양성을 막는 걸림돌이지 않나 싶다.  이러한 문화로 직장에서 상하관계가 뒤바뀌면, 이는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신호로 여기고 짐을 싸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사실 회사에서도 베테랑 전문가를 양성할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경험 있는 베테랑 전문가를 활용하기보다는 신입사원, 경력사원 채용 및 육성에 모든 인사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일본에서도 70~90년대 경제 호황기에는 그러한 인식이 팽배했으나,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특히 중소기업 중심으로 베테랑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채용,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성과를 내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점차 대기업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은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직장 내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중/장년 베테랑 전문가들이 용퇴해야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년과 중장년 베테랑은 서로 경쟁상대가 아니다. 회사에서 끌고 당겨주면서, 서로에게 win-win관계를 형성해줄 수 있는 멘토/멘티 관계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연/학연 중심 유교 문화는 지양하고, 상호존중에 기반하여, 베테랑 전문가의 경험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내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최악에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서도 젊은 신입/경력 채용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베테랑 전문가를 채용하고,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중장년층 베테랑들의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대부분 40대 후반, 50대 초반부터 관리직에 적응되어 있어서,  빨간펜을 들고 지적하고, 지시하는 업무에만 익숙해져서는 절대로 인생 후반을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젊은 사원을 본인 상사로 두고, 업무적으로 support 하면서 본인의 경험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문성과 마음자세가 없으면, 은퇴 후에도 치킨집, 편의점 등 자영업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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