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은퇴없는 삶을 보면서..
갑자기 미국 법인으로 발령을 받아서, 허겁지겁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온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업무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 중에 하나가 미국에서는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도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다라는 것이다. 물론 주재원 포함 한국사람들은 어딜가나 예외이긴 하다. 그리고 사실 재택근무가 많아서 화면으로 만나다보니 더군다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전 영업사원 한명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분의 나이를 알고 깜짝 놀랜 적이 있다. 63세로 이미 한국에서는 정년을 넘어선 나이였다. 생각보다 어려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분과 remote로 일하면서 나보다 그렇게 나이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발언하고, 언제나 자신감에 차있었으며, Risk를 take하는 업무는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연세가 많으신데, 어떻게 일에 대한 열정이 이렇게 젊은 사람들보다 높으시냐고 물으니, 대답이 참 재미있었다. 그동안 애들 키우고, 대학보내고, 결혼도 시키느라, 일 자체에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즉, 돈벌어서 자식키우는 재미로 살아왔는데, 모두 분가시키고 나니 정말 이제는 일 자체를 즐기면서 예전보다 훨씬 집중해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사실 이러한 case가 우리회사에만 여러 명 되고, 대부분 젋은 사람들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정년이 없다. 물론 일부회사에서 정년을 정해놓은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대부분 정년이 없다. 그리고 면접시 나이, 가족관계 등을 물어보는 것은 철저히 금지된다. 이력서에 어느 누구도 출생년도, 졸업년도를 기입하지 않는다. 대신 매우 상세한 본인의 경력 기술서를 첨부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들이나 미국인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국, 미국에서 40년 넘게 생활하다가 넘어온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하고 부럽기도 한 이야기이다. 일본은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정년은 60~65세이고 정년퇴직에 대한 법안이 얼마전 변경되어서, 정년이 끝나도 본인이 계속 근무하기를 원하면 월급 등 계약 조건을 변경해서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있다. 즉, 회사에서 정년이 끝났다고 해서 강제로 쫒아낼 수 없다. 일본에서도 점차 노령화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회사에서도 신규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30~40년 경력사원을 계속 활용하고 싶은 경우가 왕왕 있고, 건강한 60~70대 인력들도 조기 퇴직하고 싶어하지 않는 추세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60세 정년이 있지만,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얼마전 기사를 보니 평균 은퇴 연령은 50~55세이고 심지어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년을 채우는 사람들은 대표이사 직책까지 승진하거나 또는 얼굴이 매우 두꺼워서 따가운 회사의 시선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일본,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구조적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지만 다들 아는 문제라서 생략) 하지만, 과연 그것만일까 하는생각을 해본다. 나도 여러 대기업 문화를 경험했지만, 사실 한국은 직책과 나이가 사람의 행동방식이나 사고를 제한하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40세 중후반을 넘어서 팀장을 하면서 점차 시키는 업무에 익숙해지다가, 50세가 넘어가면 생각과 관념이 고착화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게 된다. 그리고 임원 등으로 승진하는 몇 명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서히 제 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업무 몰입도를 낮추고 은퇴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제 2의 인생을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치킨가게 하다가 비참한 노후를 맞이한다는 관련 서적과 인생 코치들이 주변에 넘쳐나기 때문에, 이러한 준비를 안 할 수도 없다. 그리고 30년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는 좀 쉬어야지 하는 본인은 위로하는 말로 이러한 은퇴준비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물론 위에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던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일본, 미국 회사 생활을 하면서, 특히 미국에서 본 50~60대 직장인들은 한국에서 업무에 찌들어 있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한국에 50~60대 직장인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자신감이 있었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경륜에 뭍어나는 여러가지 중요한 커멘트를 날려서 젋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정곡을 찌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죽지 않는 이상 이들에게 은퇴는 없었다. 젋은 사람들에 본보기가 되는 그런 경륜있는 50~60대를 회사에서 강제로 은퇴시킬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본인보다 10살이상 어린 boss를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닫히고 고정관념, 권위의식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이 뜨이고, 생각이 열려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폭넓은 Mind를 가진 사람이 결국 본인의 은퇴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