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스럽다'는 한 마디로 정의 가능한
색 하나를 칠할 때도 고민하는 것을 즐긴다. 러프하게 그린 그림을 좋아하지만 사전에 대충이란 없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가장 나다운 옷과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 노보. 그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가끔 개성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면 사람 자체를 대체 불가한 형용사로 정의하고 싶어진다. 노보(40)가 그렇다. 노보스럽다. 4월 6일 서울 장충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아주 옅은 황백색 스티치가 매력적인 갈색 코튼 셋업을 입고 있었다. 일본 도쿄 기반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더블렛(Doublet)’의 옷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파란색 물체가 계속 시선에 들어 눈길을 돌리니 바지 오른쪽에 새 인형이 달려 있다.
“바지에 새가 달렸네요?”
노보는 스탠드 옷걸이에 걸린 송이버섯 모양 재킷 단추를 가리킨다. 재킷의 오른쪽 주머니에 틈새로 얼굴을 내민 파란 새 인형 한 마리가 더 있다. “오늘 옷 콘셉트가 무엇이냐” 물으니 “제일 멋진 옷을 입었다”고 답하는 노보. 어떤 사람은 그의 의상을 보고 “독특하다”고 표현할 수 있지만, 노보는 그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걸쳤을 뿐이다. 협업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글로벌 대기업 삼성, 나이키, 롯데, 아모레퍼시픽이 앞다퉈 그를 찾는 이유가 이것 아닐까. 대면의 설렘을 가득 품은 채 그를 만났다.
호기심 가득한 맥시멀리스트
노보는 설치, 회화,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다. 2018년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나이키 글로벌과 협업해 스니커즈 ‘나이키 프리런 노보 2018’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해 첫 개인전 ‘Hope Port’를 시작으로 매년 커머셜 작업과 아트 페어, 개인·그룹전을 여는 그는 컬렉터들과 부지런히 소통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다. 최근에는 ‘정물’ 시리즈로 파인 아트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설치미술, 페인팅 등 ‘작가 노보’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굉장히 다양한데요.
‘노보는 노보’지 그 앞에 붙는 단어는 의미가 없어요. ‘OO 노보’처럼 딱 떨어지는 걸 원한다면 ‘아티스트 노보’이고 싶어요. 한국은 뭘 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타이틀을 원하죠. 저는 페인팅 작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오브제, 설치미술처럼 (표현의) 다양성을 가져가고 싶어요. 절 좋아하는 분들은 ‘마니악(maniac)’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노보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업과 좋아하는 부분이 다를 거고요.
호기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새롭게 배워야 할 텐데, 부담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으세요.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 같아요. 오히려 호기심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죠.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은 고민과 갈증 속에서 커지는데 고민이 없을 수 있나요. 표현하고, 몸부림치고, 부딪혀 나온 결과물이 진정성 있는 제 것이죠.
최근 갖게 된 호기심은 무엇인가요.
해피니스(happiness·행복)의 감정이요. 올해 1월 마친 개인전 주제가 ‘No reason not to be excited(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였거든요. 오랫동안 주변에 두고 본 사물들이 제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주더라고요. 이 감정을 바탕으로 한 작업 결과물을 통해 전시장에 온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에서 행복의 감정을 80% 이상 느꼈죠. 이걸 더 크게 키워서 내년, 내후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전시를 할 거예요. 지금은 ‘어떤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면 좋을까’ 즐겁게 고민하는 단계예요.
작가님 전시 제목에는 항상 감정 키워드가 들어 있네요. ‘hope(희망)’ ‘Home sweet home(즐거운 집)’ ‘My favorite things(내가 좋아하는 것들)’처럼요.
100%인 것 같아요. 하나의 감정이 또 새로운 감정을 찾아주죠.
2017년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창의성을 빼앗겼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인문계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미대 조소과에 진학하셨더라고요.
청소년기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제도적 억눌림을 당하며 반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규칙적인 사람이고, 사회적 규율을 어기기 싫어하는 면도 있거든요. 이런 양가적인 성향 때문에 내면적으로 충돌을 겪기도 했죠. 사회에 나온 뒤에도 저의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한때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팬들이 생기면서 조금씩 숙제가 풀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받은 선물 같아요. 제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였던 분들도 연륜이 쌓이고, 생각이 변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을 거예요. 저 또한 다양성을 즐길 수 있게 됐고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을 보면 ‘덕업일치(자기가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작가님은 좋아하는 거 두 가지로 지금까지 살았다”고. 초등학교 6년을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 운동으로 살았어요. 제일 잘하기도 하고, 좋아했거든요.
내 옆에 놓인 사물로 정물 작업을 시작하다
노보의 정물 작업에는 타이드 세제, 문구용 자, 파나소닉의 CD플레이어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물건들이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 수집과 관찰이 취미였던 덕분일까. 그는 작가가 된 뒤 주변 사물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 및 기억을 표현해보기로 결심한다. 커머셜 아트 신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도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에 대한 갈증이 컸던 노보. 2년 전, 그는 자신의 첫 정물화를 선보였다.
정물 작업을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으셨다고요.
‘이 일을 시작해봐야겠다’ 생각은 드는데 동시에 ‘이 길로 가는 게 맞을까’ 고민도 있었어요. 이미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제법 쌓은 뒤였으니까요. 한 5~6년에 걸쳐 ‘감정적인 걸 드러낼 것인가’ ‘누군가와의 관계성을 이어나갈 것인가’ 등의 주제를 놓고 탐구했어요. 그러다 완성한 제 정물 작품을 선뜻 구입한 분이 있어요. 크기도, 금액도 큰 작품이었죠. 구매하면서 “작품이 정말 좋다.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겠네요.
네. 그분 덕분에 다음 정물 작품도 시원하게 그려보고 싶어졌죠. 그분이 올 1월 개인전 때도 메인 작품을 구입하면서 저한테 질문을 던지시더라고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뭐냐. 난 그걸 사고 싶다”고요. 이런 게 저에게는 큰 힘이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구매하신 게 어떤 작품인가요.
장 볼 때 쓰는 카트 그림이요. 이번 개인전에서 중요한 작품이었어요. 그 작품을 완성한 게 나머지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줬죠. 예전에 프랑스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제게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마트 구경이었어요. 한번 가면 구석구석을 다 봤거든요. 과자 같은 식료품 패키지의 컬러나 폰트 같은 것이 제겐 영감을 주는 오브제였어요. 제게 카트는 먹거리를 채우는 일차원적 도구가 아니라 시각·후각·미각을 충족시켜주는 것들이 한데 모인 공간인 거죠. 제 작품에서는 카트 속에 초콜릿, 로켓 등 제 삶에 영향을 준 물건을 담았어요. 카트를 가득 채우지 않은 이유는 앞으로 더 채워질 수 있다는 스토리를 표현하고 싶어서예요. 그래서 그 작품이 제겐 남다른 의미가 있었죠. 평소 저를 잘 알고 계시는 컬렉터분께 판매해 기분이 좋아요. 모르는 분이 사가시면 언젠가 그 작품이 보고 싶어져도 못 보잖아요.
“내 작품을 보고 싶어도 못 본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에요.
컬렉터분이 누구인지 알면 “저 보러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여쭤볼 수 있잖아요. 저는 지금도 종종 그 컬렉터분이 구매한 제 최초의 정물화를 보러 가곤 하거든요. 그분 회사에 걸려 있는데, 그 작품을 보면 초심이 떠오르거든요. 제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요. 전시가 끝나고, 작품을 구매자에게 떠나보내고 나면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작품을 책으로 엮은 아트 북이나 휴대폰에 넣어둔 사진은 실제랑 다르거든요.
작가님 작품에는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는데, 작가님이 특히 좋아하는 오브제는 뭔가요.
조그마한 오브제를 좋아해요. 장난감이나 트로피같이 어떤 모양을 형상화한 것도 좋고요. 저는 다른 아티스트가 만든 재밌는 오브제도 구입하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는 봄맞이 흰색 워크 웨어 디자인의 점프슈트를 작업복으로 들여왔어요. 위트 있는 걸 좋아하죠.
소장하신 오브제의 출처는 해외 곳곳인가요.
그렇죠. 저도 다 몰라요. 대부분 빈티지 시장에서 구입한 거라 미국에서 샀더라도 이게 미국에서 온 것인지, 영국에서 온 것인지 몰라요. 일본 친구가 만들어준 물건도 있고요.
노보는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표출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어디 가든 항상 쇼핑백을 들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하니 “맞다”며 “마음에 드는 걸 찾으면 반드시 내 공간에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소유욕과 쟁취욕 그리고 본능을 채우려는 의지가 강한 그가 최근에는 물건을 천천히 느리게 모으고 싶어졌다고 한다. “다 얻는다고 해서 채워지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하는 걸 보니 모으고 비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또 다른 감정을 발견한 모양이다.
작가님 하면 작품만큼 화제가 되는 게 패션 감각이에요.
기본적으로 저를 예쁘게 하는 게 좋아요. 내려놓는 건 싫어요. 꾸미는 과정에서 제 취향이 드러나겠죠. 그게 또 평범하진 않다 보니 눈에 더 띄는 것 같고요. 저는 이게 원래 제 스타일이라 사실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 보니 이곳에선 제가 특이한 거죠. 전 항상 그런 시선과 싸워야 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만한 사례가 있나요.
제가 핑크색을 좋아하거든요. 한 번은 핑크색 셋업 슈트를 입고 부산에 간 일이 있어요. 택시를 타야 해서 잡으려는데 도무지 안 잡히는 거예요. 빈 택시들도 다 저를 태우지 않고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부산 택시 기사분들이 유독 핑크색을 싫어했을 수도 있죠. 이런 일을 겪어도 꿋꿋이 저를 표현하고 싶은 본능은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패션에 관심을 갖고 솔직하게 표현해주시는 분을 만나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마음이 편한 이유가, 아무도 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도시 속 한 사람일 뿐이죠. 저는 그게 좋아요. 패션은 절 즐겁게 하는 요소예요.
아이템은 주로 어떻게 코디하세요. 컬러 매치가 예뻐요.
자연스러움과 무난함이 포인트예요. 나답게 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요. 저는 옷에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라이프가 잘 묻어나야 한다고 봐요. 인부가 입은 작업복이 유명 브랜드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작업복보다 더 멋있을 수 있죠. 흘린 땀이 밴 리얼(real)이니까요. 하루를 시작할 때면 언제나 스케줄에 맞춰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제일 나다울 수 있는 옷을 찾습니다. 오늘도 이 인터뷰를 떠올리며 가장 멋진 옷을 입었어요.
여전히 작가님 내면에는 소년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기자님과 나누는 이런 진정성 있는 대화를 제 또래와 같이 하긴 힘들죠. 감정을 표출하기 어려워요. 작가 친구들이 아니라면요. 저는 철이 들지 않는다 해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진정성을 가지면 된다고 봐요.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인생을 즐기고 싶고요. 코어(core)가 중요한 것 같아요. 코어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평생 자기 자신을 가다듬는 게 아닐까 싶어요.
SNS에서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연주회에 다녀오신 걸 봤어요. 71세에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그분은 코어가 단단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날 연주회에서 피아노 건반 위에 놓인 그분의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봤어요. 순간 제 젊음이 부끄러웠어요. 젊은 피아니스트는 손을 안 떨겠죠. 그런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친 음악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하잖아요. 유키 구라모토의 연주를 듣는데 눈물이 났어요. ‘나도 저 연륜을 쌓을 때까지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며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려면 코어가 단단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유키 구라모토 인터뷰를 보니 “피아노를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물리적인 시간’을 언급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거죠. 70~80세의 연륜을 가진 아티스트와 비교할 때 40대에 불과한 저는 아직 덜 다듬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일도 익지 않으면 맛이 없잖아요. 과일을 잘 익게 하려면 해가 필요하고, 비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해요. 말하자면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일단 사과가 맛있어야 그것으로 만든 사과잼, 사과주스도 맛있어요. 현대미술에서 협업이라든지 커머셜 작업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코어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죠.
상상을 현실로 이룬 우리의 작업실
노보의 작업실에는 크게 세 공간이 있다. 작가의 매니지먼트사인 르레브 스튜디오 사무 공간, 작업 공간, 그리고 창고다.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발밑에 호랑이 카펫이 보이고, 초록·남색 소파와 출처 모를 오브제가 눈에 띈다. 다채로운 색감과 위트 있는 형태가 주인과 꼭 닮았다.
노보는 르레브 스튜디오라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의 소속 작가다.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조직은 달리 말하면 곧 노보의 동반자다. 그가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컸던 시기, 공연 기획에 몸담고 있던 추예원 PD를 만나 르레브 스튜디오 소속 작가로 왔고, 이들은 8년째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저’라는 단수 표현보다 ‘저희’라는 복수 표현을 사용하는 게 더 익숙하다고 밝히는 그다.
원래 작업실이 북촌에 있었다고 들었어요.
네. 그곳에 오래 있었죠. 이태원에도 있었고요. 첫 작업실은 연남동이에요.
연남동은 의외의 장소네요.
아마 16년 전이죠. 건물 지하층을 친구 4명과 분할해 사용했어요. 그곳은 실내에 물이 자주 고여서 한쪽 작은 방에 물 빼주는 기계가 있을 정도였어요. 거기를 어항이라 생각하고 가짜 물고기를 넣어놓고 키웠죠. 제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공간이 생김으로써 작업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고요. 그다음 간 곳이 북촌 작업실이에요.
지금의 장충동 아틀리에로는 언제 오셨어요.
작년 8월이요.
그 전에 르레브 스튜디오가 문을 열었는데, 그럼 여기에 둥지를 틀기 전에도 쭉 매니지먼트 팀과 한 공간을 쓰신 건가요.
아니요. 장충동 전에는 을지로에 있었는데 그때는 앞 건물에 제 작업실, 뒤 건물에는 사무실이 자리했어요.
보통 국내 작가들은 갤러리에 소속돼 활동하잖아요. 작가님은 해외 작가처럼 작업 전반을 서포트하는 별도 매니지먼트사가 있는 게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작가들마다 성향이 달라요. 자기가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분이 있는 반면, 에이전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죠. 저는 작가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제 자료를 모아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해두는 것, 협업 혹은 전시회 진행 시 필요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것 등이요. 작가 혼자 이런 걸 다 하기는 어려워요. 누락되는 부분이 생겨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또 저는 작업하면서 색 하나를 선택할 때도 깊게 고민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지금 제 팀은 제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챙겨주고, 그래서 제가 온전히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요. 작업을 진행할 때 같이 고민하고, 리서치를 통해 한 단계 발전시켜주기도 하고요.
팀 단위로 움직인다는 게 굉장히 든든하게 느껴지네요.
해외에서는 스튜디오 체계로 작가를 매니지먼트하는 사례가 많아요. 아직 한국에서는 활성화되지 않은 부분이라 저희를 잘 알려나가려 해요.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작가님처럼 활동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매니지먼트사와 에이전시의 구분이 모호했어요. 반면 해외의 경우 매니지먼트사, 에이전시, 갤러리,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이 세분화돼 있고, 역할 또한 명확히 구별되죠. 한 명의 아티스트가 더 멋진 아티스트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하는 거예요. 누가 누구를 돕는다기보다 다 함께 성장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고요. 상호 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작업 파트너를 찾는 아티스트가 늘어날 거예요.
작가와 매니지먼트사와 한 공간을 나눠 쓰는 작업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실험 같아요.
이곳은 저희가 오랫동안 꿈꾼 공간이에요. 뚝딱 만들어낸 곳이 절대 아니죠. 을지로에 있는 4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는 작업실, 사무실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 좀 더 나은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 꿈을 구현한 이곳 장충동 아틀리에에서 1월 개인전 작품을 모두 준비했어요. 전시까지 잘 마무리하고 나니 고맙고 기쁠 뿐입니다.
화가 키스 해링 작업실 벽엔 온갖 그림이 다 그려져 있죠. 앙리 마티스 작업실은 테라스 너머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 있었고요. 이곳의 특징으로는 쉴 틈 없이 들이치는 빛을 꼽을 수 있겠네요.
해가 잘 들어서 무척 좋아요. 해를 찾아 이곳으로 왔거든요. 작업실에 올 때마다 해를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죠. 고생해서 얻은 공간이라 구석구석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어요. 작업실에 도착하면 차를 마시고, 캔버스를 올려놓고, 클래식 음악을 틀고, 책도 좀 보고, 서랍 정리도 하고 그래요.
저기 작업복이 걸려 있네요. 작업하실 때는 작업복을 챙겨 입으시나 봐요.
예전에는 귀찮아서 입은 옷 그대로 잠깐씩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옷이 다 작업복이 돼버리더라고요. 이제는 반드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해요.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퍼포먼스와 비주얼 면에서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는 톰 삭스(Tom Sachs)가 있어요. 그가 만들어내는 설치와 오브제 작업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트 북을 보고, 해외 전시에 찾아가고, 작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죠. 러프한 듯하지만 디테일을 하나씩 찾아가는 집중력, 그 집착 같은 집요함이 멋있어요. 사람도 그렇더라고요. 뭐랄까, ‘센티’한데 그것조차 멋있는 느낌이랄까요. 국내에서는 에디 강 작가님을 좋아해요. 제게는 멘토 같은 분이죠. 성인이 되고 나서 늘 ‘내가 정말 존경할 수 있는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존재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내 자신이 나의 스승이 돼야 하겠구나. 그래야 마스터가 될 수 있겠구나’ 하던 참에 에디 강 작가님을 만났어요.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진짜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통하고 많은 것을 배웁니다.
에디 강 작가님께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작가님이 올해 5월에 개인전이 있어요.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페라 같다”고 말씀드렸죠.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를 준비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다음 개인전에는 그저 쥐어짜는 게 아니라 전시장 입구부터 시작해 작품 순서, 피날레까지 세세하게 계획해보고 싶어요. 전시장에 오시는 분도 모든 과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하나의 스토리로 짜임새 있게요.
하하. 다음 개인전 하실 때 제가 가서 꼭 느껴볼게요.
네. 언젠가는 단편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라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장편으로 갈 수 있는 서사를 만들고 싶어요.
아티스트 노보의 영감 투어, 따라와 볼래?
PICK 1 삼청공원 말바위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계절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아하는 산책 코스. 일출과 일몰을 보러 자주 간다. 보온병에 차를 한 잔 가져가 마시면 더욱 좋다.
PICK2 다이브 레코드
장충동 작업실로 이전하기 전 종종 들르던 이웃 같은 느낌의 공간이다. 리스너가 좋아하는 음악을 기반으로 맞춤 큐레이션을 제공해 다양한 음악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PICK 3 평양면옥
온면과 냉면을 즐겨 먹는다. 속이 편한 메밀 면, 삼삼한 육수가 좋다. 게다가 불고기, 제육에 만두까지 모두 근사하다는 것! 배부르게 먹고 나면 기분 좋게 작업을 이어갈 힘이 생긴다.
이진수 기자의 비하인드 아틀리에
美에 사는 기자.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공간이 좋아서 갤러리에 간다. 참을성이 없지만 근성은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선생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세계 곳곳 아틀리에 탐험을 계속할 참이다.
이진수 기자 h2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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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노보 #비하인드아틀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