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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Mar 31. 2024

9/11 테러 뉴스를 볼 수 없었던 사연

feat. 마틴 쉰 @ 지옥의 묵시록

외로워서였을까?
그날은 오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얼마 전 재개봉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대부'의 전설적인 배우 말론 브란도와 마틴 쉰,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고, '대부'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를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 싶었으나 같이 갈 사람이 없어 망설이고 있다가 그날은 왠지 혼자 영화관에 가고 싶어졌다.


이성과 광기를 동시에 지닌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의 연기도 좋았지만, 커츠 대령을 제거하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선을 넘나들며 전장의 광기와 공포로 인해 점차 변해가는 윌러드 대위 역할을 맡은 젊은 시절의 마틴 쉰의 연기가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자신이 만든 정글 속 왕국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던 커츠 대령을 제거하고 새로운 신으로 떠받들어질 때 마틴 쉰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까지 여운이 짙게 남았다. 그리고 나도 안경을 벗고 이글거리는 눈빛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눈빛이지.. 그래서, 결심했다.

라식 수술을 하자.


그 길로 바로 강남역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에 검사예약을 했고, 바로 다음날 검사를 받았다.

라식하기에 아주 좋은 눈 상태라고 한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하고 싶었으나 주말은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단다.


할 수 없이 평일로 수술 예약을 잡았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수술은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고, 의사 말로는 수술이 "엑설런트"하게 잘 되었단다.

단, 주의사항은 수술부위가 잘 아물지 않으면 시력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최소한 수술 당일은 눈을 쓰지 말고 감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준 안대를 쓰고 라디오를 켰다.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들으며 졸다 깨다를 하다가 밤 10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떴다.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에 항공기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쌍둥이 빌딩의 두 번째 타워에도 항공기가 충돌했다는 것이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지만, 수술 후유증이 걱정되어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날밤 라디오는 온통 그 뉴스만 나왔고, 그럴수록 나는 더 궁금했지만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하는 성격인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상상의 날개가 펼쳐졌다. 마치 테러영화나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림이 펼쳐졌다. 그런데,

'잠깐,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잖아. 이게 말이 돼?'

하지만, 다음날 두 눈으로 확인한 모습은 내가 눈을 감고 밤새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충돌


두 번째 충돌


1000도에 육박하는 건물 내부 온도를 견디지 못해 투신하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귀로만 들으며 밤새 너무 많은 상상을 해서였는지, 다음날 눈으로 접한 9/11 테러의 충격적인 모습은 내 뇌리에 너무 깊이 박혀버렸다.




그 이후, 9/11 테러 얘기가 나오면 이 에피소드를 웃으며 얘기하지만, 사실 나는 그날 밤새 상상 속에서 겪었던 공포와 이튿날 눈으로 확인했던 더 충격적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희생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애도를 전한다.



<9/11 추모곡 : You Raise Me Up - Secret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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