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역에서 철길 따라 걸어갔던 낭만 가득한 추억의 카페 #숲속의섬
몇 년 전 일이지만, 고양시에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80~90년대 대학생들에게 낭만의 명소였던 옛 백마역 부근 '숲속의 섬'을 복원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문득 '숲속의 섬'에 얽힌 추억이 떠올라 적어본다.
지금은 민자역사가 들어서고 예전의 역사(驛舍)는 관광안내센터로서 흔적만 남아있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90년대에 신촌역은 교외선과 경의선 기차를 탈 수 있는 설렘과 낭만의 공간이었다.
작은 대합실에는 몇 개 안 되는 나무벤치가 놓여있었고 겨울이면 한가운데에 놓인 난로 위 커다란 물주전자가 수증기를 뿜어내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MT를 갈 때면 주로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촌, 대성리로 향했고, 당일로 가볍게 교외로 놀러 갈 때는 신촌역에서 교외선을 탔다. 교외선은 신촌에서 출발해서 능곡, 장흥을 거쳐 의정부까지 갔지만, 젊은이들이 주로 가던 곳은 백마역이었다.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까지 백마역은 인적이 드문 허허벌판에 가까웠고, 역무원 없이 플랫폼과 화장실 등 최소한의 시설만 있는 간이역이었다.
백마역에 내리면 허허벌판이 나오고, 철길을 따라 걷다 보면 '화사랑'이라는 통나무로 지은 주점이 나온다. 거기서 더 걸어가면 전통차와 돈가스를 파는 예쁜 카페가 나오는데, 이름이 '숲속의 섬'이었다.
'숲속의 섬'을 처음 본 소감은 철길과 잡초만 있는 허허벌판에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숲 속의 과자집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이렇게 멋진 카페가 있다니..
밖에서 바라본 첫인상은 붉은 벽돌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이름에 걸맞게 숲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벽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따뜻한 운치가 넘치는 공간이었다.
이곳의 역사는 1980년부터 시작된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 절망했던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정치와 예술을 논하던 곳이었으나, 90년대 초반부터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해졌다.
당시에 돈가스는 대학생들에게는 버거운 비싼 메뉴였지만, 선남선녀 연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품 있게 돈가스를 썰고 차를 마시며 젊음과 낭만을 한껏 즐겼다.
'숲속의 섬'에서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어두워질 무렵이 되면 백마역 쪽에 있는 주점 '화사랑'으로 이동한다.
원래 화사랑은 어느 젊은 화가가 신촌에서 백마로 옮겨간 작업실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곳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어 이야기판, 술판, 노래판이 펼쳐지다가 ‘화사랑’이라는 술집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저녁시간이 되면 통기타 가수들이 라이브 공연을 했다. 그 당시 노래들은 노랫말이 아름답고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 쉬워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은 막걸리 잔을 손에 든 채 눈을 감고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 손님들과 어울리고, 어느덧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때의 그 감흥과 분위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양시에서 '숲속의 섬'을 복원해서 다시 열었다고 했을 때 30년 전 추억이 떠올라 반가웠는데, 최근의 사진을 보면 이름을 '숲속의 섬'에서 '백마 화사랑'으로 바꾼 것 같다. 이름을 굳이 바꾼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두 공간은 엄연히 다른 공간이었고 각각 전통카페와 주점으로 업종도 달랐는데, 추억을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기껏 복원해 놓고 이름을 바꿔버려서 두 공간 모두에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나로서는 안타깝고 당황스럽다.
* 대문 사진 출처 : 고양신문
현경과 영애 -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작사작곡) 1974년 초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