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민의 상징이 주는 오싹한 나머지 수업
(Detention, 2019 )
공포 / 2020.08.13 / 103분 / 15세 관람가 / 대만 / 감독 존 쉬
주관적 느낌 위주로 서술한 영화 리뷰. 작품이 궁금하시면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스포주의.
원작이 있는 걸 굳이 영화화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구현이나 각색을 고민하는 것도 일이지만 가장 문제는 원작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원작과 달라도 욕을 먹고 너무 똑같아도 욕을 먹는다. 팬들의 잣대는 엄격하고 날카롭다. 좋아하는 것에 미쳐있는 사람들은 대개 고집스럽다. 원작틀딱충이라는 말이 생긴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사실 나도 원작에서 보여준 '갓' 키포인트를 빼버린 영화화 작품 따위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반교는 게임 제작사 레드캔들의 동명 게임 '반교:detention'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난 이 게임을 그 해 나온 모든 공포게임 중 가장 멋진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던 중이었다. 한 마디로 원작충이란 소리. 영화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혼절할 뻔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좋아한 그 반교가 거기 없으면 어쩌지. 갑툭튀만 하다가 끝나는 평범한 공포물 되는 거 아닌가?
난 자타공인 쫄보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공포에 너무 약하다. 현실엔 원귀가 있든 없든 별로 상관 없지만 화면 속의 원귀는 너무 무서워서 옆에 냥멍 사진들을 잔뜩 띄워놓고 보거나 화면을 쬐그맣게 줄여서 힐끔거리며 봐야 한다. 혼자 보는 것도 못해서 에나벨을 혼자 세 번 보러 간 내 든든한 막내동생을 옆에 끼워둬야 한다. 난 동생이 없이는 공포게임도 못한다. 이런 내가 설마 그냥 '공포'를 즐기러 영화관에 갈 수 있을 리는 없다. 난 반교 게임을 스토리 있는 공포게임이 아니라 공포가 있는 스토리 게임으로 생각했었다. 영화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만약 정말 귀신만 나오고 끝날 것 같으면 중간에 자리라도 박차고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반교는 그런 파렴치한이 아니었다. 난 굳이 남들 리뷰를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 몰랐는데 동생이 말해주기로는 몇몇 다른 사람들은 영화가 너무 안 무서웠다는 소리를 했다더라. 난 넘치게 쫄려서 중간에 소리도 질렀는데. 팝콘 씹는 소리만 들리던 상영관에서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치는 바람에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물론 확실히 점프스케어가 심하진 않았다. 귀신이 많이 나오지도 않았고 중간중간 릴리즈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있었으니까. 보다 지쳐서 끈 '유전'과는 달리 끝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덜 무섭다는 증거는 되겠다.
영화 역시 스토리가 있는 공포영화보단 공포를 곁들인 채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영화인 것 같았다. 난 원작이 있는 영화에 그닥 높은 평점을 주지 않는 편이지만 그 점이 참 좋아서 '좋았다'고 자꾸 말하게 되더라. 게다가 원작 팬들이 사랑했던 포인트 요소를 군데군데 넣어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팡레이신이 깨어나 복도로 나오는 순간 펼쳐지는 미쳐버린 원작고증 미장센에 가슴이 벅차 주먹을 꽉 쥐지 않은 반교 덕후가 있을까? 그러나 욕 먹을 각오도 꽤나 한 모양. 난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과 게임이 말하고 있는 것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대못을 때려박는다. 중국 상영 금지가 된 영화라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얘길 하니 그랬던 모양이다. 왜 이게 벌써 나와? 싶은 시작이지만 이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뚜렷한 메시지가 존재한다. 그것을 위한 연출. 원작 게임에는 사진 몇 장이 깜놀용이자 스토리 진행용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는데, 영화는 그 일 이후 학교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을 먼저 보여준다. 고문, 피, 무자비한 정부. 현실적인 고통부터 마주한 관객들은 감독이 앞으로 나열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우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잃고 사랑도 잃은 채 모두가 군화 아래 짓밟히고 만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게임은 깜박 잠이 들어버린 웨이중팅이 모두가 귀가하고 텅 비어버린 교실에서 홀로 깨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둔다. 하지만 영화는 그 역할을 팡레이신에게 준다. 원래 게임의 초반부는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다. 조사를 해나가다 보니 뭔가 이상했고, 그간 주인공이겠거니 했던 웨이중팅이 갑자기 죽어버린 뒤 조작 캐릭터가 팡레이신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공포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영화는 명색이 공포영화이니만큼 처음부터 기묘한 분위기를 부여했다. 팡레이신에게 먼저 조명을 준 건 역시 그가 이 나머지 수업의 우등생이자 열등생이라서겠지. 불안하고 기묘하며 왠지 모를 공포까지 함께하는 분위기는 우리에게 지금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상태구나 하는 배경을 깔아준다.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건 공포영화니까.
영화와 게임의 큰 차이점을 얘기하기 전에 전체적인 스토리를 아는 것이 좋다. 담고 있는 이야기가 대단하니까. 일단 반교의 무대는 학교이다. 학교 하면 생각나는 공포게임이 지금까지는 화이트데이 정도였다면 앞으로는 반교라고 하겠다. 화데는 여기에 못 손톱도 못 문댄다. 주인공이 지옥 같은 학교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같다. 연애질도 있다. 그런데 게임 반교에는 해결이 없다. 엔딩은 존재하지만 그 무엇도 해결이라곤 말할 수 없다.
반교의 배경이 된 시대는 대만의 암흑기. 자유를 빼앗긴 독재정권 때문에 학교에 교관이 존재하기까지 했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들이닥친 암흑기. 사람들은 계속해서 억눌리기만 했고 어디에도 마음을 풀 곳은 없었다. 주인공 팡레이신은 시대의 비극 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 캐릭터이다. 난장판인 집안 환경부터 암울한 사회까지 그 어디에도 마음을 못 기대던 팡레이신은 상담교사 장 선생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고야 만다. 그러나 장 선생은 동료교사 인 선생과 함께 그 당시 금지된 서적을 읽는 모임을 주도하고 있던 상태였고 팡레이신을 이 이상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인 선생의 충고를 들은 뒤 그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에 불안과 분노를 느낀 팡레이신이 그 모임의 독서목록을 독서회 회원 웨이중팅으로부터 받아 교관에게 밀고하면서 커다란 비극이 발생한다. 단지 인 선생을 떼어놓고 싶었을 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장 선생마저 떠나버리면서 밀고자라는 비난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자신의 끝마저 비극으로 몰아가고 만다. 게임 반교는 이 모든 비설을 천천히 조사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으며 웨이중팅보다는 팡레이신에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 플레이를 시작하는 캐릭터는 웨이지만 진행 중반부터는 팡으로만 플레이하게 되므로 웨이중팅의 이야기는 끝에 가서야 볼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시점이 아닐까 했다. 말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효과적 전달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게임에선 한 인간의 잘못이 비극적인 시대를 만나 어디까지 파멸로 치닫게 되는가를 생각했다. 주인공 팡레이신을 때론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한숨쉬며 바라보는 게 주였고. 그러나 영화에선 살아남은 사람들, 이 시대의 수많은 비극들, 모두의 죄책감, 아픔 등을 넓게 보았다. 게임은 인간을 얘기하고 영화는 시대를 말하는 기분. 시작부터 웨이중팅의 고문 씬을 넣고 모두가 긴장하는 국기게양 씬이나 옥중 씬, 게임에 없던 수위 아저씨 이야기 등을 추가한 건 모두의 고통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시대를 말하기 위해 영화는 조명의 위치를 바꿨다. 페이크 주인공이라 느껴졌던 웨이중팅을 정말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곳이 모두 그의 꿈임을 드러냈다. 난 관람하면서 그것을 산 자인 웨이중팅과 죽은 자인 팡레이신의 죄악의 공간이 겹쳤기 때문에 죽음도 삶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에서의 만남이 가능했던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게임에서는 모두 팡레이신의 구천인 것만 같았는데 공유의 느낌으로 들어오니 더 좋더라.
장 선생의 이미지는 게임과 영화 내에서 정말 많이 다르다. 게임에서 받았던 느낌은 사실 그렇게 썩 책임감 있고 멋진 어른이 아니었던 탓이다. 장 선생은 영화에서 정말 좋은 사람이다. 팡레이신에게 접근한 목적이 따로 있었지만 가여운 그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 웨이중팅과 독서회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건네주는 사람. 장 선생의 영화 내 캐릭터성은 국기게양 장면과 옥중 대화에서 드러난다.
고민의 상징 기억해? 우리에겐 야만성과 악마 같은 본성이 있으나 동시에 신성함도 가졌다. 우리에겐 이기심도 있고 동시에 이타심도 있다. 웨이중팅에게 꼭 살아남아 편지를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끌려나간 장 선생. 내가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가 감동물을 보고 있는가 싶더라. 장 선생이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 건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었을 정도. 분명 이 영화에는 잘못한 사람들 투성이인데 밉지가 않다. 모두 시대에 희생당한 안타까운 영혼으로 보일 뿐. 감독의 의도가 여기저기 묻어난 영화다.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주인공을 살려야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위성이 떨어지니까.
장 선생의 말이 곧 영화가 내뱉는 언어다. 우린 모두 악마지만 신성하다. 자기밖에 모르는 듯하지만 남을 생각할 수 있다. 시대는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신성해질 수도 있고 이타적일 수도 있다.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이었던 셈이다.
반교에 엔딩은 있으나 해결이 없다는 것은 진엔딩에도 다른 루트의 엔딩에도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존재할 뿐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우리는 끝을 냈어, 같은 안심되는 엔드가 없다는 의미다. 팡레이신은 구원받지도 못했고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끝이 정말 끝인 건지, 살아있어도 비극을 겪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으며 죽은 이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너무 쉽게 꺼져가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비극은 우리에게 더 크게 와닿게 된다. 그래도 나는 팡레이신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영화에서 그렇게 절망만을 돌아야 했던 죄인 팡레이신에게 편지를 전해주며 구원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이 꽤 좋았다. 사극에선 쉽게 죽을 죄를 논하지만 사실 현실에선 죽을 죄가 그렇게 많진 않다. 하물며 한 아이의 어설프고 애달픈 사랑이 죽을 죄까지야 됐겠는가. 치기가 비극적 시대를 만났고 한껏 커져 모르는 사이 터져버린 것을.
반교의 영화화는 성공적인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원작 게임의 플레이타임은 결코 짧지 않은 편이고 요소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도 많아서 이걸 대체 어떻게 영화화하게 될까 과연 재미가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불만이 없었다. CG는 별로인 편이지만 미장센 자체가 좋아 영상미도 꽤 좋았고. 원작 기반 영화가 필연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욕을 제하면 반교는 괜찮은 영화다. 반교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가도 내용 이해에 문제가 없다. 거기에 원작 팬을 기쁘게 할 자잘한 요소들까지. 열심히 플레이한 유저들이라면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테니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좋게 본 영화에 대한 기억을 좋게만 남겨두고 싶은 건 덕후의 마음이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어서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리뷰를 쓰게 되는 건 당연한 듯. 하지만 종이비행기랑 돼지저금통은 넣어주지 그랬어! 두 시간 안에 다 집어넣기엔 내용이 너무 방대했는지, 팡이 왜 그렇게 장 선생에게 빠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선 서술해주지 않았고 인 선생의 서사가 상당히 빠지고 교체됐다. 웨이중팅을 조명하다 보니 팡레이신의 서사나 주변인의 서사가 꽤 빠진 모양.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면 생기는 밸런스의 문제다. 다만 이해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작 팬만의 아쉬움이 되겠지. 영화로만 반교를 접한 사람이 내용 전개가 우릴 왕따 시킨다는 느낌은 없었다고 말해준 것으로 보아 정말 팬만의 아쉬움인 모양이다.
공포 매니아라서 '공포 영화'를 보고 싶다면야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할 순 없겠다만 (CG 때문에 집중 깨질 정도니까 엄청나게 무섭지도 않다) 적당히 영화를 좀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봐도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쌍욕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는 흔한 게 아니니까. 원작이 가진 메시지 자체가 대단해서 영화 역시 영화만이 줄 수 있고 주고 싶어하던 메시지를 합쳐 괜찮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이미 여름은 끝났지만 때늦은 호러라도 괜찮다면 감상해보시기를.
+)이걸 내가 8월 15일에 보러 갔는데, 광복절에 남의 나라 탄압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 한국 역시 광복 이후 더 큰 혼란에 접어들어 군사정권 시기를 거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