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한 줄이 삼천원 떡볶이가 만오천원 하는 시대에 서민음식이 웬말이냐
일고여덟 먹었을 즈음, 학교 준비물을 사러 낮은 언덕을 내려오면 크지 않은 상가 건물 1층에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그 앞에는 신호등도 없이 폭이 좁은 횡단보도가 하나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그 길 건너에 짙은 주황색으로 내 눈을 사로잡는 포장마차가 영업 중이었다. 포장마차 안에는 늘 후각을 자극하는 매콤달콤한 냄새와 당장이라도 비닐막을 젖히고 성큼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따스함이 있었고, 나는 늘 그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이곤 했었다.
그 시절 용돈은 한 주에 천 원이었으므로 나는 늘 예산과 충동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데, 준비물인 색종이나 풀, 공책 등을 사고 나면 고작 300원에서 500원 남는 정도가 최대였기 때문이다. 색종이는 100원, 풀은 200원, 공책은 300원. 어떨 때는 공책을 두 권이나 사야 해서 200원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이 부르는 문제란 늘 한 가지로 이어졌다. 대체 남은 용돈으로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바타 스티커나 씰 스티커를 모으는 취미 정도는 현재 이삼십대가 된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가져보았을 흥미 분야일 것이고 나 역시 상당한 수집가 중 하나였는데 그 당시 작은 스티커판 하나가 200원에서 300원 정도 했다. 떡볶이는 양에 따라 한 컵 300원이거나 500원이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 손 안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예산이 있으니까. 기회비용의 발생이다.
그럴 때 나는 가끔 스티커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대개 냄새의 유혹을 못 견디고 컵떡볶이를 손에 든 채 언덕을 올랐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는 서민음식이라는 게 명확히 존재했다. 용돈 일이천원 받는 게 전부인 꼬마들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문구점 슬러시부터 길거리 컵뽂이(늘 이런 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한글 맞춤법과는 상관 없이), 배고플 때 든든히 속을 채울 수 있는 천 원짜리 김밥 한 줄. 학교가 끝나고 주황색 비닐막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저 떡볶이 오백원어치요!" 외칠 때는 숙제가 밀려 있어도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얼마 전 편의점에 가 밤샘용 커피를 고르고 있는데 키가 내 허리까지 오는 초등학생 두 명이 뛰어들어 왔다. 한참 편의점 안을 돌아다니던 아이들이 목소릴 높여 떠드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까지 들렸다. 원래 그 나이대 아이들이야 목청 높여 수다 떠는 게 일이니 별 생각은 없었지만 대화 내용이 절로 들리다 보니 하나 의아한 게 있었다. 떡볶이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먹질 못한다며 울상인 것이다.
떡볶이가? 먹을 게 없을 때마다 간단하게 떡볶이나 먹자, 했던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는데. 컵 떡볶이는 항상 인기식품이었고 종이컵 하나를 뽑아 공짜 국물과 함께 먹는 게 일상이었건만. 걸쭉한 국물이 계속 끓다 졸아들면 포장마차 주인 할머니는 어묵 국물을 국자로 한두 번 퍼넣고 주걱을 휘휘 젓곤 했었다. 그야말로 삼백원, 오백원의 행복이었던 떡볶이를 추억하는 시절에 머무른 내 기억이 와장창 깨지던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이번 코로나19 사태 탓이 아니라도, 거리에서 파는 떡볶이가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팔고 있더라도 위생 문제로 사 먹길 꺼리는 사람이 많아졌고 가격도 비싸졌다. 이천원에 봉지 가득 담아주던 떡볶이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프랜차이즈 떡볶이, 이를테면 '엽떡' 같은 것들이 떡볶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젠 떡볶이를 사먹으려면 '엄마 오백 원만 주세요, 천 원만 주세요' 할 게 아니고 '만오천원만 주세요'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비단 떡볶이 뿐만이 아니다. 짜장면이며, 김밥이며, 과거 서민음식이라고 불리던 것들이 점점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변하고 있다. 아이들이 받는 용돈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그것을 주는 어른들의 월급도 큰 폭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물가만 계속 오른다. 물가만 오르는 것도 아니고, 정겨웠던 거리 음식들이나 동네 개인분식집까지 다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떠올려보자. 거의 전부 어디서 들어본 프랜차이즈에서 시키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사회는 이런 식으로 변하고 있다.
자꾸 요즘 예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오르는 물가와 빠르게 사라져가는 추억들이 한 몫 하는 게 아닐까. 떡볶이 만오천원의 시대에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