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제주에서 머리 하는 재미)
혼자 짐을 쌌다.
패딩 하나면 다 된다는, 아는 동생을 순전히 무시한 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트도 같이 쌌다.
이 추운데 코트는 무슨 코트냐며 타박하는, 아는 동생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코트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멋이자, 비장의 무기였다.
혼자 여행 갔을 때마다 코트를 챙겼으며 그 코트를 바라보는 나는 나 혼자 감흥에 차올라
어디든 갈 수 있는 희망과 자신감을 상징하기도 했다.
물론 뜻대로 다 되진 않았지만 내 안에 샘솟는 에너지를 코트로 뿜 뿜 내며 발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 각설하고
코트까지 꾸역꾸역 넣은 캐리어를 가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어떤 제주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해보다가
덥수룩한 머리를 보고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제주에 사는 어떤 사람과 sns로 연결을 한 뒤 그 사람에게 머리는 어디서 잘라야 하는지 물었고
그분은 블루미 헤어가 핫하다며 나에게 그곳을 안내했다.
그의 친절한 안내에 나는 블루미 헤어를 가야겠다고 다짐 먹었다.
딱 1시간,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시간이었고 오후 4시가 되어 제주에 도착하였다.
미리 예매했던 호스텔을 지도로 찾고 나서 버스를 기다렸다.
지루했다. 굳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내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난 든 짐도 없었다. 모든 건 캐리어 하나면 오케이였으니까.
캐리어를 이끌고 모르는 제주 땅을 밟았다.
멋진 야자수를 보고, 월성마을도 살펴보고, 저 멀리 바다 짠내도 느꼈다.
캐리어를 끌면서 느꼈다.
이게 '나'구나!
기다릴 줄 모르고 성급하며 그럼에도 행동하는 게 그게 '나'구나!
나다운 게 이거지!
혼자 좋아했다.
혼자서 캐리어를 이끌고 호스텔에 도착하니
직원이 나와서 나를 맞이하며 객실로 안내했다.
그는 나에게 나이를 물어본 뒤
내가 동안이라는 사실과 혼자 내려왔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나는 놀랄 일도 아니라며 매일 듣는 소리라고 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풀었고 너무 추워서 코트로 갈아입지는 못했다.
패딩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용두암 쪽으로 가자 바다가 나오면서 짠내음이 물씬 느껴지며
에메랄드색 바다가 나를 맞이했다.
춥기도 했지만 상쾌했다.
바다가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했다.
"진수야 어서 와"
제주는 그렇게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바다를 지긋이 응시한 채 눈을 감았다.
바다의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에 집중했다.
바다는 참 고요하고 좋았다.
겨울의 바다는 겨울 바다만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난 뒤 난 블루미 헤어를 찾기로 했다.
블루미 헤어를 가려면 동문시장을 거쳐야 했고
배가 너무 고팠다.
비행기에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이었다.
일단 시장을 둘러보는데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몇 없었다.
오늘이 2019년 12월 31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명랑 핫도그에서 감자핫도그를 하나 물었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자매 국숫집이 보였다.
자매 국숫집을 들렀다가 블루미 헤어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무작정 걷고 또 걸으며 언덕을 넘어서
자매국수에 도착했다.
때마침 사람도 없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고기국수를 시켜서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다.
물론 나의 입맛이지만 조금 느끼했다랄까. 그럼에도 고기는 살살 녹았다.
살살 녹는 고기와 국수를 입으로 쌈 싸 먹은 뒤에 블루미 헤어로 향했다.
블루미 헤어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는 오늘 못할 줄 알았다.
예약자도 많고 결국엔 못해도 본전, 해도 본전 나에겐 남는 장사였다.
어차피 여행객이니 다른 데를 여행 다니면 그만이었다.
오늘 못할 것 같았던 블루미 헤어에서 난, 바로 앉으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크롭컷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내가 여행 와서 이곳을 소개받았다고 말하자 미용 선생님은 깜짝 놀랐고
제주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고마웠다.
머리를 끝내고 난 뒤, 나는 블루미 헤어를 소개해준 그분을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