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제주의 냄새)
그분은 블루미 헤어가 어떠냐고 물었고
난 괜찮다고 답했다.
그분의 안내대로 나는 영국풍의 카페에 도착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바닐라 라테를 시켰고 그분은 무엇을 시켰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30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서로 나눴다.
그러다가 이제 헤어지려는 찰나에 그분이 나에게 제주 야경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무작정 길을 걷는데 이렇게 어두운 데로 걷는 이유가 혹시 나를 인신매매로 데려가는 것 아니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다.
그분은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그분은 지금 같이 가는 곳은 사라봉이며 자신이 머리를 식히거나 심심할 때 자주 가는 곳이라고 했다.
서울에 살았을 때 이 곳에 오지 못해 답답했다고 한다.
서울에는 돌아다닐 곳도 별로 없었고 자신은 태어난 제주가 좋으며 이 곳이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곳의 분위기, 향기, 모든 것이 좋다고 했다.
사라봉에 오르면서 첫사랑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만난 사랑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고 어렸을 때 만난 친구였다.
그땐 어렸고 그를 사랑했지만 마음을 접으려는 찰나에 그 친구가 잡아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사랑을 이뤄졌지만 자신은 서울로 가게 되고 거리가 멀어지고 서로의 삶이 바빠지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랑이 끝이 났다고 한다.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없다고 했다.
순수했고 사랑밖에 몰랐었던 그때, 그 이후에 사람을 만났지만 다 지지부진하고 끝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정상에 올랐고 정상에서 야경을 보았다.
제주는 반짝였다. 별들이 내는 반짝임처럼 도시는 반짝였고 또 반짝였다.
그분은 제주가 더 이상 변하지 않았으면 했다. 개발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이대로 있는 것들이 좋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것들이 좋다고 했다.
나를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좋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나,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너,
그저 있는 그대로 것들이 좋다고 했다.
순간 내 마음에 잃어버리고 있던 순수가 깨어났다.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같이 재밌는 이야기 하면서
서로를 위해 순수한 열정 하나로 달렸던 그때가 떠올랐다.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사랑했던 내가 깨어났다.
그리고 그분은 사라봉 정상에 올라오면 냄새가 난다고 했다.
바다의 소금기가 바람을 타고 소나무에 베여나는, 특유의 향이 있다고 했다.
그 향이 좋다고 했다.
자신을 힐링해준다고 했다.
그가 할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겐 향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 자체로 나에게 힐링을 선물을 해주었다.
내가 해준 것은 없지만,
사라봉을 같이 내려온 후 헤어졌다.
먼발치에서 사람들 사이로 그분은 사라졌다.
다시 보지 못할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