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코로나의 여파는 더욱더 세져서
감염자는 2000명을 넘겼다.
나는, 많은 면접에서 낙방했지만
두 군데는 붙었다.
두 군데 중 한 군데를 가기로 했다.
허나, 걱정부터 앞섰다.
그 회사의 단점이
연차가 없다는 것과
주변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는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며
다만 그것은 네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선배 말이 맞아도
그냥 선배의 말을 외면하고 싶었다.
어젯밤에는 아는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의 말장난에 의해서
상처를 받고, 그 말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 동생이 사과를 해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서로에겐 상처만 입힌 것 같다.
내가 요즘 예민해져서 민감하게
군 것도 한몫을 했고,
그 동생에게 연락해봤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
혼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락이 오든 안 오든 간에 말이다.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나이는 먹었지만
앞날에 대해서 한 치도 모른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영상으로 하루를 때우는 일들이 많아진다.
법륜 스님은 괜찮다고 했다.
하루를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꼭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게 좋다, 나쁘다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결과론적으로는 좋다, 나쁘다로
시험이나 면접의 당락 여부로
모든 일의 결과를 확인해볼 수 있으나
과정적으로 보면 그 결과까지 가기가 워낙
힘이 들기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는
모르겠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기에, 끝없이 묻고 대답하고
방황하다가, 유튜브의 연결고리에 빠졌다가
결국 생각하는 건, 쩜쩜쩜 답은 없다는 것.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답이 없다는 결론.
어떤 유튜버의 말처럼
답이 없는 건 애초부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노 플라블럼, 노 정답이라는 것.
인생에 있어서 어떤 정답은 없고,
나만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내가 만들어낸 것.
정답 없는 사회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건
어찌 보면 허상이라는 것.
비와 코로나가 집이라는 감옥을 만들어서
나에게 나는 왜 뛰지 않냐고
스스로의 감옥을 또 만들어서
이중, 삼중의 감옥 창살에서
생각만 많아지고 있는 중이다.
뛸 수도 있고, 뛰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