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노동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며,
왜 임계장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임시직, 계약직, 노인장의 준 말이었다.
무시하고 천대하는 말이었다.
저자는 버스회사에서 불렸던 자신의 직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일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사이, 돌아가신 고모부가 떠올랐다.
고모부는 팔십 평생 일만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고모부를 마지막으로 본 건 할머니 장례식이었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고모부와의 대화가 불편해서 제대로 대화도 하지 못하고
일어났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당히 부끄러웠다.
이렇게 못 볼 줄 알았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할 껄.
모든 건 순간이며, 지나가버린다.
잡을 수 없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노동행위를 이어갔던 고모부의 모습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모습이 떠올랐다.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꾸욱 참았지만
그 모습이 가슴 한 구석을 콕콕 찔렀다.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고
교과서에서도 한 문구 보지 못했지만,
나는 살면서
노동은 신성하며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자신 조차도
이 노동행위에 대해서
천대하고 무시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청소원, 미화원, 폐지를 줍는 사람들 조차도
우리 가족이었음을 몰랐었다.
그리고 그건 은퇴한 이후에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으면 지켜줄 수 없는 사회였음으로
나도 자본이 없으면 나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 아주 퍽
슬퍼졌다.
공고한 피라미드는 깨지지 않았고,
설국열차는 매우 부단히도 달리고 있고,
우리의 삶은, 인생은.......
20세기나 21세기나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졌다고 생각한 믿음은,
어디서든 없어졌고
기계처럼 노예처럼 일만 하고 있었고,
지친 삶을 어루만져주는 것은 멀어져 갔고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
감옥같은 삶과 좀비영화의 한 장면, 장면만을 목격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도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노동과 늙음은 너무나도 슬픈 것이고
.......
그렇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