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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랖겪처 Sep 07. 2021

불가능하며 불완전한 것들을 위하여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 2019

ZA/UM이 개발하고 2019년 10월 15일 최초 발매한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 - The Final Cut>을 지난달 PS4판으로 구매하여 플레이했다. 발매하자마자 평단과 플레이어 양측에서 호평을 이끌어낸 작품이었기에 죽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콘솔로의 이식과 할인이라는 기회로 드디어 만나보게 되었다.


    TRPG 시스템을 적극 차용했다는 점이 특히 흥미를 끌었다. 서브컬쳐판에서 TRPG 플레이어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지만, 대다수가 게임 자체보다는 OC를 이용한 일종의 교류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진입장벽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을 이루는 24개의 인격과 능력들이 게임 마스터로 기능하여 게임의 진행을 이끌고, '주사위 판정'에 기여하는 시스템은 TRPG를 이해함과 동시에 몰입과 신선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형사버디물이란 틀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주인공 자신을 파헤쳐나가는 군상극이자 심리극에 가깝다. 방대한 양의 텍스트에도 불구하고 갖은 은유와 수사로 메워진 지문들은 지루할 틈을 없게 만들며(종종 튀어나오는 신랄한 유머는 덤이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쿼터뷰의 아이소메트릭 그래픽을 십분 활용한 강렬한 연출은 상황을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무엇보다도, 건조하면서도 사려 깊은 파트너 킴 키츠라기 경위의 존재는 사건 해결 의욕을 더없이 북돋는다. 플레이어는 금세 세계관에 빠져들게 되며,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스탯'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는 것 또한 <디스코 엘리시움>의 재미이다. 게임에선 플레이어가 선택지를 직접 골라 진행 가능한 '수동 판정' 말고도 지문이 출력되는 동안 발생하는 '자동 판정'이 있다. 때문에 특정 능력치의 스킬이 높을수록 자동 판정의 성공 확률 또한 높아지게 된다. 초회차 플레이 이후 예상치 못하게 불쑥 나타나는 자동 판정 지문들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갔던 것들을 환기시켜주며, 다회차 플레이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N/A

당신 - "다시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문제 같아."

킴 키츠라기 - "개인사 이외의 것에 집중하려고 해 보신 적은 있습니까?"
공감 [쉬움: 성공] - 갑자기 그의 목소리에 날이 선 게 느껴져요. 마치 당신의 '개인적인 사정'을 듣는 것에 지쳤다는 듯이요.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호스텔 객실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꾸러진, 다소 충격적인 모습의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온 사방에 널린 술병과 옷가지, 부서지고 깨져서 성한 데 없는 객실 풍경... 가까스로 주인공을 움직여 옷을 갖춰 입어보지만, 이 모든 상황만큼 주인공의 상태 또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주인공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몇 세기 몇 년도이며 무슨 음악이 유행하는지,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생김새마저도(흐릿한 주인공의 초상화는 거울을 이용하면 활성화된다). 그래서 플레이어 또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공란인 것이다. 딱 한 가지, 디스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은 형사로서 한시가 시급한 사건 조사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자신을 알지 못하는 채로 일에 집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임의 과정은 검시 조사서의 공란을 하나씩 채워나가듯, 사건 수사와 병행되는 주인공 자신에 대한 수사이기도 하다.


실패의 삼각주 - 마르티네즈

백과사전 [쉬움: 성공] - 레바숄은 한때 세계 수도였지만 현재는 영락하였습니다. 세계 혁명이 실패한 지 반 세기 후, 외세의 점령하에 여러 개의 통제 구역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레바숄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의 중심입니다.

    작품의 무대는 혁명이 실패한 후의 쇠퇴 도시인 레바숄—그중에서도 '마르티네즈'이다. 항만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일까, 마르티네즈에선 갖은 사정으로 떠밀리듯 와서 그대로 고이게 된 다양한 사람들과 방치되고 망가진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당신 - "어려운 일이었겠군. 방사능 제염 작업 말이야."

새 둥지 로이 - 그는 주저한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 다들 그 일을 잊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그 원자로를 고치거나 교체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너무 실망감이 크기 때문이지. 그리고 암으로 인한 이른 죽음도 있고. 우린 최선을 다해 치웠지만 다가올 모든 일들을 알고 있었어."
(중략) "그러고 나는 마르티네즈로 왔어. 사람들은 가지 말라고 하더군. 거기는 쓰레기 구덩이라며. 나는 이렇게 말했지. 우린 방금 핵 원자로 멜트다운을 겪은 거고, 나는 포부르에서 최대한 멀리 갈 거야. 여전히 같은 도시 안 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한다.
당신 - "해안 아래쪽에는 뭐가 있습니까?"

세탁부 - 많진 않지..." 그녀는 이마를 닦으며 대답한다. "거기엔 버려진 교회가 하나 있네. 돌로레스회 인류애 교회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 있었어."

당신 - "왜 버려졌습니까?"

세탁부 - "어떤 것들은 그저 성공적이지 않은 걸세, 경관 나리." (후략)

킴 키츠라기 - "그럼 거기선 성직자들이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겁니까?"

세탁부 - "아니, 성직자들은 노력했지만, 자꾸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야. 범죄나, 사고나 그런 것들 말일세. 계속 열어둘 수 없었겠지." 노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애석하게 됐어. 참 좋은 교회였는데."

    전당포 주인 로이는 고향에서 일어난 원자로 사고의 제염작업에 힘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해안가의 교회는 한때 일곱 자매의 한 일원으로서 숭고함을 뽐냈지만 결국엔 버려졌다. 어떤 일들은 모두가 진심을 다해도 그르쳐진다. *그냥 그런 일*들이 있다. 마음과 노력을 외면하는 일들이. 그런 점에서 레바숄과 마르티네즈는 그 자체로 주인공 '해리'에 대한 메타포이다. 그의 실패한 사랑과, 그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버린 삶의 모든 것에 대한.



Some *APRICOT* Things in the BLUE heart

    파랑은 해리의 색이다. 경찰 조직을 대표하는 색이자 해리의 영혼을 덮은 색이다. '실패와 증오의 장부'라 명명된 해리의 푸른 서류철(내면세계의 표현으로 '파란 심장'이라 하는) 안에는 살구맛 껌 냄새가 나는 엽서가 들어있다. '살구'는 아름다웠지만 지나간 사랑과 과거, '도라'를 상징한다. 해리는 수사 과정 내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옛 연인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해리의 안이 지난날의 타버린 잔재로 가득 차 있듯, 레바숄, 더 나아가 엘리시움 또한 살구빛으로 가득하다. 수 세기 전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을 때 함선들이 실어 나르던 것이 살구였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결자라 일컬어지는 '돌로레스 데이'의 주된 상징색 또한 살구색이며,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린이용 감기약마저 살구맛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41서 동료 중 한 명의 딸 이름도 '애프리콧'임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살구색 상징 중 해리가 특히 도라를 투사하는 존재는 '돌로레스 데이'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창안하고 RCM의 상위조직인 모럴린테른을 설립하는 등 근대사회로의 주춧돌을 놓았다 여겨지는 무결한 존재이다. 그의 행적은 상당히 신격화되어있기도 한데, 대관식을 치를 때 폐가 금색으로 *빛났다*는 구전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타 국가에 원정군을 보내 전쟁을 충동질하고 강제적 통치를 행했다는 점에서 '대량학살자'로 비난받기도 한다. 이러한 돌로레스 데이의 '복잡성'은 해리가 도라를 바라보는 시선에 그대로 등치 되어 나타난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으로서의 '무결자'를, 자신을 마음을 짓밟고 떠나간 배신자로서의 '대량학살자'를 비추어보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이상화와 평가절하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무결자가 결국 그의 인간됨을 의심한 경비병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생각하면, 버려진 교회의 돌로레스 데이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41서의 작전에 의해 훼손되다는 것과, 해당 작전에 해리도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온 세상이 살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해리가 과거를 놓지 못하는 것인지, 반대로 해리의 안이 과거로 차 있어 세상이 살구빛으로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실패한 사랑의 처참한 결과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플레이어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이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해리가 과거를 애도하는 방식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다.



뱀가죽 구두와 항공점퍼

    형사버디로서의 해리와 키츠라기 경위를 나타내는 색은 각각 초록과 오렌지이다. 파란색과 살구색이 해리의 내면에서 끝없이 흐르며 반추되는 마음의 색이라면, 초록과 오렌지는 레바숄의 땅을 밟고 바람을 가르는 현장과 현실의 색이다. 뱀가죽 구두와 항공점퍼는 두 인물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디스코가 잊힌 세상에서 유일하게 디스코를 추억하는 사람과 어린 시절 혁명 공군을 동경했으나 형사가 된 사람. 조직에는 원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닮은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레바숄 시민 민병대, RCM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RCM은 도덕주의를 내세워 설립된 국제연합 모럴린테른의 산하조직이다. 허나 그 뿌리는 혁명 여단인 인술린데 시민 민병대, ICM에 있다. RCM의 이러한 양면성과 모호함은 두 형사의 정체성에도 맞닿아 있다. 도덕주의 기관 산하조직의 경관인 해리의 본명인 '해리어'는 전쟁 중의 이름으로, 혁명의 색채를 띤다. 세올인의 피를 물려받은 키츠라기 경위는 *일부* 레바숄인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스스로를 레바숄리안이라 여긴다.


당신 - "내가 '진짜 경찰'이 아니라면 어쩔 거지?"

킴 키츠라기 - "우리 모두가 가끔 그렇게 느끼죠. 세상에는 진짜 경찰이라는 건 없다고 봅니다. 단지 나무에 매달린 시체가 있기에,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할 테니까요."

    어찌 되었든, RCM의 형사라는 두 사람의 위치는 스스로의 선택이자 그 자체로 현실이다. 두 버디에겐 당장 눈앞에 놓인 사건 수사라는 과제가 있다. 키츠라기 경위의 말대로, 그들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뱀가죽 구두를 신은 발로 쉴 새 없이 뛰고, 항공점퍼를 걸친 채 마르티네즈의 공기를 가르며.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중립사상가

당신 - 잠깐만, 그전에. 이 공산주의란 게 대체 어떤 거야?

수사학 - 실패. 실패 같은 거지.
조이스 메시에 - "모든 풍파가 가라앉았을 때, 그 엉망진창을 치우며 남아있었던 건 자유주의자들 뿐이었어요. 생존해 냈다는 덕목으로 인해 그 사람들은 미래를 만들어 갈 막강한 권력이 손에 쥐어진 거라고요..." 그녀가 델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이게 저희 마지막 세대가 겨우 이루어 낸 거였어요."

    마르티네즈는 혁명이 세상을 휩쓸고 난 뒤의 후유증과도 같은 곳이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는 포격과 사살의 흔적이 남아있고, 한때 왕당파의 병사였던 르네와 항만노조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가스통 두 노인은 매일같이 모여 앉아 공놀이를 한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스토리의 핵심 갈등이라 할 수 있는 항만노조 파업에 연루된 다양한 인물들 또한 만나 볼 수 있다. 능구렁이 같은 노조 대표 에브라트와 파업을 중재하기 위해 마르티네즈를 찾은, 속내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기업 대변인 조이스 등등... 전쟁은 오래전 끝났지만 다양한 이념과 이해관계들은 여전히 레바숄 안에서 부유하고 있다. 때때로 어떤 실체를 가지고 갈등이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선택하고 표방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도덕주의 성향 선택지를 택했을 때 획득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중립사상가' 트로피의 존재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게임 내의 NPC들은 이념을 막론하고 자신의 신념과 입장을 굽힘 없는 자세로 고수한다. 어떤 것을 그토록 굳게 믿는다는 것은 그에 따른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과도 같다. 그것이 설령 실패라 할 지라도. 게임은 적어도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중립지대에 숨어 한 톨의 손해도 보지 않기 위해 사태를 방관하는 자들을 긍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소신을 가진 자들에게 작은 찬사를 보내면서.



상실한 자의 내면에 밀봉된 세계

당신 - "정확히 뭘 했던 겁니까?"

킴 키츠라기 - "그래요, 뭘 했던 겁니까? 다시 혁명을 불러오기 위해..." 경위는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선동?"

탈영병 - "선동할 인민이 있어야 선동을 하지." 노인은 검은 눈이 깜빡이며, 경위를 똑바로 쳐다본다. "더는 남은 게 없단 말이네. 세상에도, 우리 꿈속에도..."
공감 [보통: 성공] - 증오가 그를 집어삼켰어요. 이 남자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순전한 악의예요. 이제는 세상 모든 걸 증오하고 있을 거예요.

    두 형사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용병 살해 사건의 진범은 게임의 최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실체가 드러난다. 그 정체는 바로 혁명군의 탈영병이었다. 범인은 탈영 후 마르티네즈 맞은 편의 섬으로 도망쳐 40여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은거하며, 혁명기의 세상을 내면에 밀봉한 채 조준경에 담긴 섬 맞은 편의 진짜 세상을 내내 저주했다. 스스로가 도망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자기혐오를 어떻게든 떨쳐내려는 듯이 말이다. 주인공은 범인이 오랜 기간 지켜봐 온 소용돌이의 젊은 투숙객, 클라셰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 용병을 질투를 한 것이냐 묻지만, 범인은 '질투는 반동적인 개념'이라며 부정한다. 하지만 곧 감정을 느끼는 행위가 반-프롤레탈리아적인 것은 아니라며, 어떤 식으로든 간에 클라셰를 욕망했음을 시인한다.


탈영병 - "사람은 감정을 느낄 필요가 있다네. 저기 있는... 무언가에게 눈길을 두면 도움이 많이 되거든." 그는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바라본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에 말이지... 나약한 짓이야, 나도 안다네."


    탈영병이 세상과 현실을 대하는 방식은 해리의 그것과도 꽤 닮아있다. 탈영병의 내면에 혁명기의 세상이 밀봉되어 있듯이, 해리의 내면에 디스코는 온데 간데 없이 디스코볼이라는 표상으로만 남아 밀봉된 채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다. 젊음과 사랑이 함께 했던 시기는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자신과 세상과 도라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둘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다. 탈영병은 혁명이 *정말로* 실패하기 전에 도망치고 말았지만, 해리는 (그 과정이 적절치 못하긴 했으나) 실패를 있는 그대로 겪어냈으니까. 그리고 아마 종국에는 지금의 자신을 이겨낼 것이다. 그의 손으로 일궈낸 41서의 *식구*들이 있고, 누구보다 든든한 파트너 킴 키츠라기 경위가 있으니까.


마무리하며 - 불가능하며 불완전한 것들을 위하여

당신 - "내가... 범죄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했던가?" (끝맺는다.)

킴 키츠라기 - 그는 눈을 약간 크게 뜬다. 천장 선풍기가 그의 머리 위에서 돌고 있다.

당신 - "범죄 수사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킴 키츠라기 - "네. 저도 가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미확인동물학자인 모렐과 그의 반려자인 레나를 만나 미확인동물 이야기를 듣고 그에 관련된 퀘스트들을 수주할 수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술린데 대벌레'라는 미확인동물의 자취를 쫓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된다. '아주 영리하기 때문에' 수 세기 동안 그 어디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고 생존해온 곤충이라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그지 없는 키츠라기 경위는 대벌레 탐색에 일단은 동행하면서도, 대놓고 한숨을 푹푹 쉬며 곁다리 사건 취급하는 것은 물론 탐색 자체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표한다. 그야 키츠라기 경위 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허무맹랑할 뿐인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의 최후반부, 탈영병의 자백을 받아낸 직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인술린데 대벌레가 등장한다. 해리가 말했듯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범죄 수사가 종결된 뒤 *진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키츠라기 경위조차 상황에 압도되어, 증거를 남겨야만 한다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카메라를 꺼내들다가도 *다른 사람*의 생각은 상관 없지 않느냐는 해리의 만류에 설득당해 카메라를 집어넣는다.


  스토리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하게 경이 그 자체의 모습으로 나타난 인술린데 대벌레는 이 작품이 두 형사와 플레이어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선물이 아닐까. 게임 안에서 우리는 주사위 판정이라는 확률의 틀에 끼워진 수많은 불가능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일어난 기적 또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기적이란 건 그리 거창한 게 아닐지도 모르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가 기적을 이룩해낸다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주인공 해리 드 부아를 포함한 모든 이(특히 실패를 경험한)들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이 위로에 힘을 입어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이다.


    글을 닫으며, 게임 내에서 특정 '소름' 판정에 성공했을 시 출력되는 지문을 인용한다.

소름 [어려움:성공] - (전략) 그대가 필요하다. 그대는 내가 이 땅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느니라. 깨어있으라. 나는 그대를 사랑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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