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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도밤 Feb 07. 2022

[오늘의 어원01] 몸 사리지 말고 떡사리 추가!

tvN <난리났네 난리났어> 1화 중

애청하는 유퀴즈에는 떡볶이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떡볶이 팬카페 회장 출신인 두끼 대표도 나오고, 스핀오프 프로그램에서 서울 떡볶이 투어도 하고, 신당동의 전설 마복림 할머니 며느리와 손녀딸도 출연했다.


떡볶이 없는 인생을 상상하기 어려워서 모두가 떡볶이 유니버스에 푹 빠져든다. 그런데 떡볶이 얘기만 나오면 유퀴즈 타임에 혼자 애가 탄다.


아! 여기엔 사리가 퀴즈로 딱인데!


이따금 유퀴즈 제작진과 퀴즈 자문을 주고받는지라 어떤 퀴즈가 나오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출연자에 딱 어울릴 퀴즈를 혼자 상상하고 뒷북을 치며 즐거워도 한다. 일상 속 단어에 재밌는 어원이 참 많은데. 이야기로 재미있게 엮어주면 누군가 신기해할 것 같은데.


결국엔 이것이 [오늘의 어원] 같은 글을 한번 써 볼까, 하는 마음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사리’ 이야기.


부대찌개든 마라탕이든 엽떡이든, 만두에 차돌박이에 치즈까지 듬뿍 ‘사리 추가’해서 먹어주는 게 모름지기 쩝쩝 박사의 미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리’가 무엇이냐 한다면 전골이나 즉석떡볶이에 올라가는 라면 사리가 아닐까 싶다.


1980~90년대에 외식 문화가 성장하면서 즉석떡볶이 집마다 메뉴판에 “라면 사리” 옵션이 붙었다.


보글보글 끓는 음식에 라면 하나 올려 먹는 게 참 별미였다. 하긴, 라면 사리도 최초는 아닌 셈이다. 냉면 한 그릇을 곱빼기로 만들어주는 ‘사리 추가’도 있었으니.


처음의 사리는 음식 양을 부풀려 배를 채울 수 있는 값싼 방편이기도 했고, 찌개나 떡볶이에 라면까지 맛볼 수 있어 색다른 포인트도 됐다.


"떡볶이를 끓이다가, 그땐 배고픈 시절이니까.. 라면들을 이렇게 갖고 오세요. 거기다 끓여서 먹으면 양도 많아지고 (...) 이 사리 저 사리 넣다 보니까 지금의 세트가 나온 거 같아요. <유퀴즈 온더 블록 132화>


사리 추가가 국룰이 되면서 탄생한 혁신적 제품이 스프를 빼고 면만 넣은 '사리면'. 95년에 시판되어 3년 만에 월 5만 개씩 팔려 나갔다고.


1995.02.19. 한겨레신문


즉석떡볶이의 "라면 사리 추가요" 이후 새로운 걸 얹어서 푸짐하게 즐기는 매력이 더하고 더해져서, 오늘날 ‘만두사리’, ‘떡사리’, ‘분모자 사리’, ‘눈꽃 모짜렐라 치즈폭탄 사리’의 시대까지 오고야 만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사랑하는 사리의 역사는 '면 사리'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사리는 본래 이것을 지칭하던 말이었기 때문.



면을 삶거나 말려서 빙글빙글 감아놓은 것.
이것이 바로 ‘사리’다.


원래 ‘사리’는 면이나 실, 밧줄 같은 데에만 쓰던 말이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것을 빙글빙글 돌려서 ‘사리’를 엮고, 그렇게 말아놓은 뭉치를 ‘한 사리, 두 사리’ 수로 세기도 했다.


어린 싹 위에 붉은 실 푸른 실로 사리를 엮어 조그마한 고깔들을 해 씌운 것이 눈에 띄었다. <1939적도(현진건) 11>


이 막국수는 (...) 젓가락으로 사리를 입에 넣어 씹을때 흙·돌가루 같은것이 한데 섞인것처럼 찌걱찌걱하는 맛이 별미다. <1967.10.05 동아일보>


얼음 콩국에 국수 한 사리 말아 놓으시고 문득 푸념하시는 어머니, 등에선 두 번째 땀방울이 미끄러져 내린다. <1975.07.31. 동아일보>


'사리'는 ‘몸을 사리다’ 할 때의 동사 '사리다'와도 관련이 된다.


실이나 끈, 밧줄, 뱀의 몸통처럼 가늘고 길쭉한 것을 빙빙 감아 부피를 줄여 놓는 것을 ‘사리다’라 한다. ‘몸을 사리다’ 할 때의 '사리다'도 사람이 손발을 잔뜩 웅크리는 것을 뜻하니 뜻이 통한다. '위험이 도사리다' 할 때의 '도사리다'도 본래는 팔다리를 모아 웅크리는 행위를 뜻했으니 똑같은 이치.


동사 '사리다'가 명사로도 쓰여서 '사리'가 나왔다. 기다란 면발을 주욱 늘여서 빙빙 꼬아 둥그렇게 말아놓은 뭉치. 그렇기에 ‘사리’는 늘 ‘면 사리’였던 것이다.


예전에는 ‘면 사리를 말아 놓다’, ‘국수 두 사리를 삶아서 물기를 빼놓았다’ 하는 표현을 많이 썼지만 요즘의 사리는 떡사리 만두사리에나 쓰는 게 더 익숙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사리’에서 ‘면 뭉치’를 연상하지 않기 때문.




어원에 대한 의식이 사라져서 비슷비슷한 대상을 통칭하는 단어가 되는 일은 흔하다. ‘육수(肉水)’는 본래 “고기를 삶은 물”이지만 '채소 육수', '다시마 육수' 등에서는 “밑국물”의 통칭적인 의미로 쓰인다. 옷 종류인 ‘남방(南方)’은 본래 “(날씨가 더운) 남쪽 지역에서 입는 반팔 셔츠”의 뜻이었지만 쌀쌀할 때 입는 ‘청남방’, ‘체크남방’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었다. 남방 얘기는 꽤 재미있으니 다음 기회에 또 이어가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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