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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도밤 Mar 14. 2022

[오늘의 어원02] 오 하느님 그러지 맙소사!

단어가 된 문장들

어느새 7년 전 일이 되었지만, <무한도전>에서 광희와 GD, 태양이 촌스런(?) 감탄사 “맙소사”로 힙한 노래를 만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맙소사’가 ‘헐’에 비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일상에서 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맙소사’를 외화 더빙이나 뮤지컬 장면에서 쓰이는 말로 기억한다.


실제로도 맙소사가 쓰이는 장면은 이렇다.


  남편 : 집으로 가. 네가 원하던 거잖아. 게다가 아기도..
  록시 : 아기? 무슨 아기요? 난 임신 같은 거 안했어요.
  남편 : 임신이 아니라구?
  록시 : 오우, 이런 맙소사.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어요?

  남편 : I want you to come home. You said you still wanted to.  And the baby.
  록시 : Baby? What baby? There ain't no baby.
  남편 : There ain't no baby?
  록시 : Oh, Jesus. What do you take me for?
                                       - 뮤지컬 <시카고> 중


영어의 'Oh my God'이나 'Oh Jesus' 같은 말을 우리말로 옮길 때 늘상 '맙소사'가 선택됐다.


맙소사가 대체 신과 무슨 관련인가 싶지만, '하느님 맙소사'가 세트로 쓰이기도 한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실마리가 보인다.


- "아하! 하느님 맙소사." 긴 탄식 한 소리에 돈의 얼굴엔 눈물이 주루루 흘렀다. <1940 다정불심(박종화) 224>

- 하나님 맙소사, 하나님 맙소사.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이런 소리밖에 할 소리가 없었다. <1972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박완서) 140>


'맙소사'가 신을 부르는 말인 건 알게 됐지만, '맙소사'의 정체를 알자면 아직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가든가 든가', '너 고 나', '먹을까 까?' 할 때의 동사 '말다'에서 시작해 보자.

“안 하다”를 뜻하는 ‘말다’는 명령형으로 자주 쓰인다.

'먹지 마세요', '가지 마라', '건드리지 마시오' ...

 '말다' 극존칭으로 쓰이면 '마옵소서'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맙소사' 어원이다.


맙소사!


'맙소사'가 '마옵소서'에서 변한 말이라는 점은 옛날 글을 뒤적거리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20세기 초 문헌을 보면 '맙소사'들은 늘상 '하느님/하나님'과 함께 쓰였고, 내용도 신을 부르며 '나에게 그런 시련을 주지 말아 달라'라고 부탁하는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맙시사', '맙시샤', '맙쇼셔'에서'-시사/-시샤/-쇼셔' 등은 오늘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할 때의 '-소서'로 남았지만, '-소사'로 굳어진 건 '맙소사'밖에 없다.


어쨌든, 하늘을 향해 간절히 부탁하는 '(하느님 그리하지) 마옵소서'가 줄어들고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놀라움의 감정만 드러내는 감탄사 '맙소사'로 남았다.


‘하느님 맙소사’가 영어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기독교나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계신 천지신명을 '하나님(아래아 ㄴ.)'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저 신을 부르며 절망을 토로하는 말이 영어에도 우리말에도 있어서, ‘맙소사’가 ‘Oh my God’에 대한 초월 번역으로 찰떡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말이란 늘 돌고 돌며 조금씩 변하고, 변화의 정도가 어느 이상으로 커지면 예전 모습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져 버린다.

'맙소사'가 '(그리) 마옵소서'에서 왔듯,

'부랴부랴 나서다'의 '부랴부랴'는 '불이야 불이야~!'에서 온 것이고, '점잖다'는 '젊지 않다'에서 온 것이다(!)

애칭으로 쓰는 '여보'는 '여보시오'에서 온 것이고, '여보시오'는 '여기 보시오'에서 온 것이다(!!)

'불이야 불이야'로도, '부랴부랴'로도 썼던 윗 세대는 원래 뜻을 알겠지만, '부랴부랴'만 듣고 자란 다음 세대는 더 이상 말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 중 누군가는 끊어지고 흩어진 말의 조각을 주워다, 붙여 보고 이어 보며 즐거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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