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도밤 Jun 07. 2022

[오늘의 어원03] 쇠북과 빵떡과 쌀파스타

신문물을 처음 만난 사람들

영국남자 조쉬의 ‘OO를 처음 맛본 외국인들의 반응??!’ 시리즈는 늘 비슷비슷하다.

비슷비슷한 포맷. 비슷비슷한 찰진 리액션들.


하지만 어김없이 썸네일을 누르게 된다.

5년이 넘어도 인기가 여전한 걸 보니 역시 국뽕(?) 콘텐츠는 강력하다.


이번엔 영국 중학생들에게 한국 핫도그와 떡볶이 맛을 보여줬다.


흔하디 흔한 한국 길거리 음식을 먹고는 눈이 똥그래져 '한국 가는 비행기 비싸요?' 묻는 중학생들의 반응이 귀엽고 재미있다.


흥미로운 건 떡볶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첫 반응들.


[유튜브] 흔한 한국 핫도그 먹어보고 깜짝 놀란 영국 중학생들의 반응!? (https://youtu.be/Ei0gSKJza4k)


생전 처음 보는 떡볶이 비주얼이 낯설 법도 한데, 한국 음식에 호감이 있어서인지 흥미롭게 관찰한다.


길쭉하고 빨간 떡볶이를 들여다 보고는 저마다 반응을 내뱉는다.


파스타(pasta)인가요?
베이크드빈(baked bean)처럼 생겼어요!
쌀로 만든 면(rice noodle) 같은 건가요?


머릿속의 음식 사전에서 비슷한 음식들을 주르륵 검색해보고, 눈앞에 있는 빨간 요리와 가장 비슷한 것을 골라 본 것들이다.


한 입 오물오물 먹어 보고는 비슷한 것을 하나 더 찾았다.


음, ‘뇨끼’랑 식감이 비슷하네요!


인간은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바라보는 동물이라, 새로운 것을 보면 늘 겪었던 비슷한 것부터 찾는다.


어떨 때는 아는 것의 이름을 넣어서 새 것의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한다.


그래야,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음식들은 외국에 소개될 때 으레 제 이름을 잃곤 했다.


불고기는 'Korean barbecue'로, 떡은 'rice cake'로, 심지어 어묵은 'fish cake'라는 도무지 먹음직스럽지 않은 이름을 얻기도 했다.


별안간 떡과 어묵이 케이크가 돼버린 형국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tteokbokki는 너무 어렵고, rice cake는 쉽고 직관적이었던 것뿐이다.


물론 이 모든건 한국 음식이 변두리에 있던 시절 이야기라, 지금은 tteokbokki니 bulgogi니 bibimbap이니 하는 것들이 저마다의 멋진 이름을 되찾았다.심지어는 gobchang까지도!


낯선 것에 익숙한 이름을 붙이기.
그래서, 쉽게 기억하기!


오늘은 어원이라기보다 말에 대한 이야기다.


떡볶이가 ‘매운 쌀케이크’였다가 ‘떡볶이’가 된 역사가 언제나 반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옛 문헌을 보면 이런 단어가 나온다.


오늘날로 치면 '산부인과 의학서' 같은 책의 한 구절이다. <1608언해태산집요 48b>

뱃속에서 ‘쇠붑’이 울리는 것 같다 한다.


'쇠붑'? '붑'은 '북'의 옛말이다. '부풀다', '부피' 하는 말이 모두 우리 고유어인 '붑(붚)'과 관련된다.

그럼 '쇠붑'은 '쇠북'인데, '쇠로 만든 북'. 그게 뭘까?


정답은, '종'이다. 뎅뎅 울리는 종.

옛 사람들은 한동안 종을 '쇠북'이라 불렀다.


<훈몽자회>(1527) 중:32a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으로부터 '종(鐘)'이란 것이 새로 들어왔다.

로 만든 것인데, 막대기 같은 걸로 두들기니 처럼 소리가 울린다.


그렇다면 이것을 ‘쇠북'이라 부르자!


낯선 것과 최대한 비슷한, 익숙한 걸 찾아서, 쉽게 기억되는 이름을 붙인 거다.


한자어 '종(鐘)'도 쓰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쇠북'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다 물건을 들여온 나라에서 쓰는 공식적인 이름, '종(鐘)'이 이겨 오늘날까지 살아남고, '쇠북'은 사라진 것이다.


500년 지나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먹거리 부족하던 19세기 말, 개화기에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맛있는 간식들이 들어왔다.

밀가루 반죽에 속 넣고 찐 것, 팥소 넣어 달콤하게 구운 것…


일본 사람이며 중국 사람들이 먹는 맛있는 밀가루 간식이, 한국 사람의 눈에는 다 ‘떡’ 같아 보였다.


중국 사람들 먹는 것은 '호(胡-)'를 붙여 호떡이라 했고, 일본 사람들 먹는 것은 '왜(倭-)'를 붙여 왜떡이라 했다.


일본 사람들 먹는 떡이란 건 결국엔 빵에 가까웠다.


일본인들은 자기네 음식을 포르투갈어를 빌려다 ‘빵(パン)’이라 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빵이란 말이 영 입에 안 붙었던 모양이다.


왜떡, 왜떡 하다가, 이윽고는 ‘빵’에다 ‘떡’을 붙여 ‘빵떡’이라 했다.


1935년 12월 20일 동아일보 "빵떡 먹고 싶어서 빵장사를 습격"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으레 ‘빵떡 사주랴’, ‘빵떡 같은 얼굴이구나~’ 하는 말들이 ‘빵’에서 연상되는 ‘떡’을 버리지 못해 남아 있던 말습관들이다.




낯선 것의 홍수였던 개화기에는 뭐든지 '호(胡-)'니 '왜(倭-)'니 ‘양(洋)-‘이니 하는 말들이 붙었다.


중국 주머니라 주머니고, 일본 간장이라서 간장이고, 서양 배추라서 배추, 서양 버선이라 말(洋襪)..

또 그렇게 복, 은, 잿물, 송이, 변기..


눈뜨면 쏟아지는 새 것들의 홍수 속에서, 낯선 것들은 익숙함 속에 묻혀 이름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물 건너 온 남의 것을 어떻게든 기억하려 애쓰던 시절을 지나,

spicy rice cake 대신 tteokbokki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우리도 남의 것은 그들의 이름대로 기꺼이 불러 주자. 그리고 우리 것 또한 우리의 이름으로 소개해 주자.


이건 떡볶이야. TRY 해 볼래?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어원02] 오 하느님 그러지 맙소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