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어 고군분투기
우리말 정책을 책임지는 국립국어원의 여러 업무 중 하나는 순화어를 마련하고 제안하는 일이다.
영어나 일본어 등 '불순한' 외래어를 '깨끗한' 우리말로 바꾼다는 '순화(醇化)'의 의미가 다소 거창하고 무겁기도 하다.
직관적이지 못해 언중의 국어생활에 장애가 되는 외래어나 전문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준다는 의도는 좋지만,
그렇게 마련된 '순화어'들의 일부는 언어생활과 지나치게 동떨어지고 터무니없다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스루'를 '비침옷'으로, '싱어송라이터'를 '자작가수'로, '이모티콘'을 '그림말'로, '인플루언서'를 '영향력자'로, '피드백'을 '되먹임'으로, '텀블러'를 '통컵'으로 바꾸자는 것은 확실히 조금 어색하다.
무리한 순화어에 분개하는 혹자는 국어원이 언중의 자유로운 언어생활을 억압하여 오히려 한국어를 파괴한다며 날 선 비판을 가하고, 또 혹자는 국어원의 존재 가치를 들먹이며 혈세 낭비 말고 폐쇄하라는 거친 주장까지 내어 놓는다.
하지만 '발레파킹'보다 '대리 주차'가, '언택트'보다는 '비대면'이, '웨비나'보다는 '화상 회의'가, '피싱'보다는 '전자 금융 사기'가 누구든 이해하기 쉬운 단어임을 생각하면 언어로 인한 소통의 단절을 줄이려는 국립국어원의 노력을 가벼이 생각할 것은 아니다.
이 나름의 '순화어 고군분투기'가 생각보다 꽤 오랜 일임을 알게 되면 더욱 그렇다.
倭色(왜색)을一掃(일소)하자 - 가두에 간판은 물론 생각없는 언사들은 아즉도 일어를 사용하며 (...) 이땅의 왜색을 없애기 위하여 서울시에서는 근근 왜색일소운동을 전개하리라고 한다 <1949.03.10. 동아일보>
"우동"은 "가락국수"로 - 왜말 섞인 간판 어서 고쳐라 <1949.10.09. 경향신문>
해방 직후, 전쟁 직전의 혼란한 시기.
거리에는 일본어 간판이 버젓이 넘쳐났고, 사람들의 입에는 늘상 쓰던 일본어가 익숙하게 오르내렸다.
마침내 몰아낸 일제의 자취가 거리마다 버젓한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한글학회며 한글전용촉진회 등에서 거리 간판의 일본어 간판을 우리말로 뜯어고치기 위한 '순화어'를 마련해 내놓았다.
한글날을 앞두고서는 더욱 움직임이 분주했다. 그맘때쯤 제안된 단어들은 이랬다.
화식(和食)은 왜정식, 덴뿌라는 튀김, 스키야키는 왜전골, 모리소바는 모밀국수, 모찌는 찹쌀떡, 돈부리는 덮밥, 스시는 초밥, 사시미는 생선회, 벤또는 도시락, 곤냐꾸는 왜우무, 다꾸앙은 단무지...
도시락이나 전골, 생선회 같은 것은 이전에도 간간이 쓰이던 말이지만, 초밥, 덮밥, 단무지, 튀김 등은 이 시기에 새로 만들어 고안한 단어들이다. 이전 시기에는 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일상어들이 70년 전 누군가가 머리를 맞대며 마련한 새말임을 생각하면 느낌이 새롭다.
두 눈 뜨고 볼 수 없던 왜색을 어떻게든 걷어내 보려는 각고의 노력이었으니 이맘때의 운동에 '순화'니 '정화'니 하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것도 이해가 된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70년 전에도 '스시'는 '스시'지 '초밥'일 수는 없다며 거세게 반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
"국어정화(淨化)위원회"에서는 (...) 국어정화를 꾀하고저 팔백육십이의 어휘를 완성한바 있었는데 그내용에 있어 너무 급진적이며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으며 (...) '스시'같은 것은 일본에서 시작된 말인만치 초밥이라고 억지로 고치는것보다 그냥 '스시'라고 함이 좋겠다. <1948.09.07. 조선일보>
그나라만이 가진 고유명사를 우리말에 억지로 끌어 맞춘다는 것은 일본색 일소도 아니요 국수주의도 아닌 신경질환이요 망발이다. 스시는 어디까지나 스시지 '초밥'이거나 '날생선밥'이거나 '주먹밥'일수는 없다. 만일 스시를 초밥으로 고치고 오야고돔부리를 고기알덮밥으로 고쳐야 한다면 (...) 빠다 치즈 런취쏘세이지 등 수만종의 서양각국요리를 전부 우리말로 고쳐놓아야 옳을것이다
<1954.10.24. 경향신문>
격한(?) 논쟁 이후 70년. 아무도 모르던 '덮밥'이니 '초밥'이니 '단무지' 하는 말들은 결국, 살아남았다.
'덮밥'은 돈부리뿐 아니라 스팸이니 치킨마요니 온갖 '덮어먹는 밥'으로 굳어졌으니 요리의 새 장르를 연 공로까지 인정해 주어야 할 듯하고, '초밥'이야 '스시'와 비등비등하게 쓰이지만 '단무지'는 원래 쓰이던 말(다꽝)을 기억도 안 나게 해 주었으니 완벽한 승리라 할 만하다.
요컨대 '순화어 고군분투기'의 역사가 꽤나 유구하다는 것이다.
'리플'을 순화한 '댓글'이나 '네티즌'을 순화한 '누리꾼'처럼 제법 성공적이었던 사례도 있지만, 제안된 순화어의 대다수는 빠르고 즉각적인 새말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제안된 '먹요일'이나 '영상 일기'는 퍽 귀엽고 입에도 잘 붙는다. 학자나 위원들만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니라 언중의 제안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한 덕분에 퀄리티가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핍박과 무시를 딛고(?) 또 70년 뒤에는 어떤 말들이 살아남아 우리말을 다채롭게 해 줄지 두고 볼 일이다.
'서클'을 대체한 '동아리'며 '신입생'을 대체한 '새내기'를 국어원의 공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동아리'나 '새내기'는 '미제'를 몰아내려는 80년대 대학생들이 고안한 말들이다. 이제 아무도 '동아리'나 가입하지 '서클'은 모르게 되었으니, 40년 전 대학생들의 노력도 박수쳐 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