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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Dec 27. 2022

뭐든 열심히 하는 한국 사람들

갓생 챌린지를 보며 갓탱을 고민하다

탱고를 추며 알게된 싱가포르 친구가 있다. 그는 탱고의 기원지로 알려진 부에노스아이레스보다 서울이 자신에게 더 매력적인 ‘탱고 관광지’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느니 서울을 여러 번 오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지리적으로 더 가까우므로 항공비용이나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고, 서울에서도 탱고를 즐길 곳이 충분하며 그곳을 구성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춤을 잘 춰 즐겁다는 이유다. 한국 탱고 씬이 크지 않다고 느끼며 더 많은 한국인이 탱고를 추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 입장에서는 의외의 의견이었다.     


싱가포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주변 탱고인들에게 전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아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탱고를 늦게 들였음에도 시장이 역동적으로 커졌고, 향유자들 대다수가 보통 이상의 기량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성비가 균형 잡힌 것이 ‘K–탱고’의 장점이라고 긍정했다. 성비 부분은 특히 이례적인데, 리드 역할이 더 진입장벽 높고 대체로 남성이 리더를 수행하는 구조 속에서 대부분 국가는 ‘여초’인데 한국은 유독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설은 있다. 한국의 동호회 문화가 후배들 육성에 기여해서? 성별 분리 교육으로 여성에 대한 열망이 커진 남중–남고–공대 남성들이 독기로 진입장벽을 짓밟아서? 혹은 군대 경험으로 ‘파이팅’ 넘치게 극복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그냥 뭐든 열심히 하는 한국 사람들이 또 해낸 것 아닌가 생각한다. 뭐든 열심히 하게 만드는 한국의 분위기가 좋다고만은 인식하지 않지만.     


- ‘갓생까지 온 한국인의 자기 계발

경쟁이 치열하고 불안을 자극하며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게 만드는 한국 사회에 쭉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한국 어디서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실은 경쟁하지 않아도 될 취미 영역에서도 경쟁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것이 탱고 시작 초기, 그저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초심자 때 일이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와중에 내 움직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조롱하는 타인의 말을 들었다. 불쾌했지만 무시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긍정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은 초조함과 비교하는 마음을 낳았다. 같이 시작한 사람들보다 내가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닐까? 조롱을 곱씹다 보니 수치심마저 느껴졌고, 이 일은 오기로 이어져 한 달에 수십만 원을 지출하며 탱고 수업에 주 5일 매진하게 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갈망하며 돈과 시간을 썼다.     


이거 자기계발 아닌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열망하며 돈과 시간을 쓰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 좀 웃긴 부분은, 내가 오랜 시간 자기 계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왜 부정적이었냐고 묻는다면 2010년대 초반의 자기 계발 열풍을 가리키고 싶다. 당시 열풍의 중심에는 ‘힐링’이 있었다. 젊은이들을 위로하겠다며 나이든 교수나 종교인들이 (내 기준에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며 도서를 발행하고 토크 콘서트를 연 시절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멘토라고 불렀다.     


나는 냉소했다. 운이 좋고 금수저였던 자기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 아닌가 싶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성의 없는 얘기로 들렸다. 게다가 한 명의 멘토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흩뿌리고 있었다. 멘토라면 소수의 사람과 좀 더 긴밀하게 관계 맺으며 멘티에게 필요한 맞춤형 이야기로 코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자기 계발 산업의 트렌드는 다르다. 최근 2030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험과 강연을 유료로 제공하는 플랫폼과 기획회의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협업하지 않기로 결정됐지만, 준비 과정에서의 리서치는 제법 유용했다. 2030 수강자들이 당장, 혹은 가까운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팁을 유경험자나 실무자로부터 듣기를 선호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소규모로 다회 차 진행하는 모임의 경우 참여자들이 멘토로부터 구체적인 경험에 근거한 통찰 어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예전의 자기 계발 트렌드보다 전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삼 느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X나 많네….’      


하긴 직장이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모두가 ‘퍼스널 브랜딩’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마케팅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래를 대비하려는 직장인들은 ‘무엇을 팔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뇌리에 콱 박히는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법과 팔로워가 늘게끔 소셜 미디어를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해외에도 기회의 문이 열려 있음을 인식하며 외국어 공부를 하고,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 눈에 띄는 법, 그와 좋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비용을 지불해 ‘엄선된 물’이 보장된 사교 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꽉 짜인 일정을 야무지게 수행하는 삶을 표상하는 신조어로 ‘갓생’이 등장했다. (킹이나 왕, 짱보다도 격이 높은)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生)’의 합성어다. 최상급으로 잘 살고 있는 일상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어느 정도일까? 일찍 일어나 신문 읽고 운동한 뒤 소셜 미디어에 ‘#오운완’ 인증하고 저녁에 업계 사람들과 사교모임을 한 뒤 집에 와서 자격증과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시간 나면 틈틈이 ‘지식 유튜브’ 혹은 자아 탐색 혹은 동기부여를 돕는 영상을 본 뒤 생산성앱에 그날 한 일을 체크하는 정도면 ‘갓생’ 인정?     



- ‘갓생과 갓탱

신조어다 보니 아직 갓생의 용례가 사회적으로 명확히 합의되진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빽빽한 일정을 수행하지 않아도, 작은 일이어도 꾸준히 실천하며 성취감을 느끼면 갓생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갓생의 반대편에 ‘혐생(혐오스러운 인생)’이나 ‘망생(망한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구조는 대부분에게 존재한다고 관찰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혐생’이나 ‘망생’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갓생 챌린지를 하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강박에 빠져 무언가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해하거나, 자기가 보기에 열심히 하지 않아 보이는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박대하는 일이다. 후자의 경우는 탱고를 추면서도 접했다. 내가 박대의 대상이었다.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탱고인이었다. 탱고를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그는 자신과 잘 맞는 강사와 만난 뒤 기량이 빠르게 향상됐다. 거의 ‘한국 탱고계의 주목받는 신인’으로 소소한 유명세를 떨칠 정도였다. 노력으로 스스로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그럼에도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향상심 때문이었을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눈에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게도 높은 기준을 갖다 댔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춤추고 난 뒤 “저 사람은 시작한 지 오래됐는데 저것밖에 안 되네. 열심히 안 하나 봐.”와 같이 한심해하며 험담하는 식이었다. 그와 함께 연습할 때 나에게도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며 눈치 주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인상을 쓰며 말투가 차가워졌다. ‘억울하면 탱고 더 열심히 연습해서 갓탱(‘god+탱고’를 뜻하는 말, 내가 만듦) 추자!’는  생각을 애써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서러운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와 가까이 지내는 동안 심리적으로 썩 건강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여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돌아온 사람들 중 노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타인을 업신여기는 이들이 있다. 개개인마다 가진 조건과 주어진 환경이 다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다시 탱고의 예를 들어보자면, 사람마다 유전자가 다르고 신체 나이도 근육과 골격도 다르기에 새로운 움직임을 몸에 익히는 속도가 다를 수 있다. 일 때문에 바빠 배우고 연습하는 데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도,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어서 양질의 수업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성취를 얻었을 때 거기에 우연적 요소가 있었음을 알고 겸손하며, 타인에게 더 너그러워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그저 취미 생활인데 모두가 ‘열심히’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물론 내 경우에는 언젠가 ‘갓탱’을 추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그 방향으로 향하는 과정도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적당한 비용을 지출하며 ‘주 3탱(주 3일 탱고)’하는 지금의 루틴이 내게는 적정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적당히'가 누구에게나, 탱고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허락되는 한국 사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2년이 끝나간다. 2023년의 목표를 묻는 사람들을 만난다. 일단 탱고는 계속해서 출 것이고… 타인의 못남에 너무 야박하게 굴지 않길, 강박과 불안에 휩싸여 전소되지 않길, 좋은 사람들과 많이 웃고 근근이 밥벌이하며 건강히 살아가길 희망한다. 2022년을 살아낸 모두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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