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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Mar 17. 2021

존재의 발견

거기에 있는 줄 몰랐어요

문득 어느 날 궁금해졌다. “내 주변엔 왜 장애인이 없지?” 


키가 작은 친구도 있고, 머리가 긴 동료도 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와 동료는 없다.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나와 일정한 범주 안에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분되어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이 없는 걸까 싶어 찾아봤더니, 약 259만 명*으로 경상북도 전체 인구수와 비슷했다. 주위에서 경상북도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왜 장애인을 만나는 건 어려운 걸까?



어떤 존재에게는 맞지 않는 세상


말을 못 하면 서브웨이에서 어떻게 주문할까? 눈이 안 보이면 비밀 투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장애가 있으면 집 근처 학교에는 갈 수 없는 걸까? 불법주차 차량들 사이를 휠체어로 지나갈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나에게는 꼭 맞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건국부터 장애인 인권 의식이 높았을 것 같은 미국도, 50년 전에는 휠체어를 타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90년 장애인법이 통과되면서 장애인들의 물리적, 사회적 접근성은 빠르게 확대됐다. 이 법안을 통해 이들은 버스나 열차를 탈 권리, 충분한 자질이 있는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권리, 모든 극장과 식당 그리고 공공시설에 들어갈 권리를 쟁취했다.

장애인 인권 운동 (출처: 다큐멘터리 crip camp)

이처럼 제도와 정책은 변화의 시작과 맞닿아있다. 몇몇 사람들은 복지 비용의 효율성이나, 혜택의 역차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건 소수를 배제하고 만들었던 과거의 일반적인(general) 사회를 리모델링하기 위한 비용이다. 누구나 보편적인(universal)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내 푯값을 리모델링하는데 써주세요


제도와 정책은 정치인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표수가 적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길 원하지 않는다. 주류와 충돌되는 비주류의 목소리엔 더더욱 몸을 사린다. 


우리 사회 속엔 사실 이미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이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존재 자체를 증명해야 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지만, 내 푯값이 여기에 힘을 실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  



존재의 발견,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의 확장


미처 몰랐던 존재들이 사실 이미 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알게 되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내가 가진 세상이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달탐사선 LRO에서 촬영한 지구 (출처: NASA)

때론 나와 다른 별에 있는 것 같이 생경한 존재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내가 이들과 나쁘지 않은 친구, 가족, 동료가 될 수 있을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면서 배움을 시작해본다.




* 2018년 통계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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