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민 Apr 15. 2021

아흔 엄마의 버킷리스트

주말부터 연속으로 주변의 죽음과 치매 소식을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 ‘사모님’이었고 아들 역시 교수이지만 요양원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 37년생 할머니. 10여 년 동안 주중에는 막내딸이, 주말에는 두 아들이 번갈아 시중을 들었던 32년생의 치매 할아버지의 죽음. 한강 전경이 보이는 재건축 아파트에 큰딸 가족과 살기 시작할 즈음 치매 진단을 받고 최근에는 배변 실수가 잦아진 37년생 할머니....    


암울한 이야기다. 우리 엄마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지난 일요일, 하나로마트에서 카트에 몸을 의지하고 장을 보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있을 것 같아 나도 장 보는 시간을 맞춘 거다.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귀가 어두워져 내 소리를 듣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손을 흔들며 ‘엄마’하고 소리 내어 불렀다. 역시 엄마는 내 소리를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장을 보고 있었다. 총총히 뛰어가 엄마 등을 만지며 '엄마'하고 부르니 그때서야 반색을 하며 반가워했다.     


사과 세 알, 감 한 줄, 귤 두 봉지, 닭고기 한 마리, 청어 여덟 마리, 어린 채소 잎 등등 1시간 반 전에 와 샀단다. 우유와 현미, 돼지 앞다리를 더 구매하면 된단다. 엄마가 볼 장을 마무리한 후, 주변 의자에 엄마를 앉혀놓고 얼른 내 장을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생각나는 것만 대강 주워 담아서 엄마에게로 돌아왔다. 엄마 카트에 놓여있는 우유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는 우유를 살 때 아들용과 자신이 먹을 우유를 구분해서 산다. 아들 것은 조금 더 비싼 것을 사주려는 거다. 내가 산 우유에 판촉용 요구르트가 붙어있어, 엄마도 그것으로 바꿀지 의향을 물었었다. 요구르트는 살만 찐다며 싫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장을 보는 사이, 엄마는 힘들고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아들 우유를 내가 산 우유로 교체해놓은 거다. 내가 물었을 때는 ‘노’라고 했지만, 계속 저울질을 해본 거다. 엄마가 샀던 것보다 가격이 조금 비쌌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것을 따져보고 교체한 것이다. 근 두 시간가량을 당신 몸보다 크고 무거운 카트를 끌고 장을 본 양반이니, 체력이 아닌 정신력으로 한 거다. 그것이 체력이던 정신력이던 내 입꼬리를 올라가게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난 10여 년 전부터 마음속에 엄마의 버킷리스트가 있었던 거 같다.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하기와 같이 소소한 것부터 이미자 쇼 관람, 영화관에서 영화보기, 동숭동에서 연극보기, 골프장 가기, 다섯 자식들과의 여행, 동해바다 여행, 일본 여행 등등. 엄마가 지나가는 소리로 '희미하게' 말한 것이나, 내가 엄마와 이런 것을 해보면 좋겠다 하는 것들을 모아 내가 만든 목록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많은 거 같다. 직장 생활과 주부 역할을 하면서 기회가 되고 상황 될 때마다 열심히 엄마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갔다.


재작년 즈음에 나는 지우지 못한 큰 버킷리스트 한 가지를 포기했다. 겨울에 태국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휴양지를 엄마와 함께 가는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엄마가 좋아하는 드넓은 바다를 하염없이 함께 구경하고 수다떨며 맛있는 음식을 편하게 먹는 것.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엄마의 의사를 물으니, 도저히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단다. 자식에게 폐가 되는 것이 싫어서 사양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 없음’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 엄마의 버킷리스트에서 삭제해 버렸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형제 단톡방에 미국에 사는 오빠가 내년 1월 말 즈음 둘째 딸 결혼식을 멕시코 칸쿤에서 3박 4일간 할 거라며 참석자 신청을 받겠단다. 순간 ‘엄마와 함께 갈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칸쿤은 한국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해외 휴양지 중 상위권에 속하는 곳이다. 나도 막연히 가보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엄마에게 소식을 전하며 결혼 예정지인 호텔과 주변 사진들을 보여주니,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며 너희들끼리 다녀오란다. 나는 엄마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엄마도 같이 가면 좋겠어. 그러니 올 한 해 밥 잘 먹고 잘 자고 체력 키우자”라고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엄마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미소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엄마는 큰아들이 여유가 있어, 딸의 결혼식을 넉넉하게 치를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눈치다.     


멕시코는 내 나이 사람도 엄두를 내기엔 먼 곳인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거 같다며 내 마음을 다독인다. 내 욕심으로 엄마에게 무리한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아흔의 엄마가 아직도 식사 준비부터 크고 작은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인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삶이 헛헛한 나이, 육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