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끼니를 준비하는 엄마의 고군분투를온몸으로느끼다
재택근무 중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준비한 돼지 수육과 연근 튀김을 싸 들고 업무 종료 시간인 4시가 되자마자 엄마네로 향한다. 엄마는 기력이 쇠잔해진 두세 해 전부터 그 시간 즈음에는, 항상 그렇듯이 침대에서 새우 자세를 한 채 곤히 잠들어 있다. 40대부터 시작된 두 다리의 퇴행성관절염과 인공관절 수술로 인해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똑바로 누워 잘 수 없어 항상 옆으로 누워 잠을 잔다. 엄마가 깰 때까지 나도 옆에서 눈이나 붙일까 망설이며 엄마를 계속 내려보았다. 그 모습을 머릿속에 저장해두기 위함이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가 인기척을 느낀 듯 ‘언제 왔노..., 깨우지...’라며 부스스 일어난다. 그리고는 엉거주춤 화장실로 향한다. 인기척이 아니라 요기(尿氣) 때문에 깬 듯하다. 헐렁한 바지춤을 움켜잡고 화장실을 나오며 ‘아파트 앞 가게에 무가 있을까’라고 묻는다. 최근 신장개업한 마트를 말하는 것이다. 무가 필요한 게다. 자식에게 뭔가 부탁을 해야 할 때 엄마의 화법이다. 조금 거리가 있지만, 물건이 다양한 '큰 마트에 함께 가서 사겠냐'라고 물으니 좋으시단다.
바깥바람도 쐴 겸 부지런히 움직이면 될 거 같다. 차를 타려고 손을 잡고 걷는데 지팡이가 삐끗거리더니 몸이 휘청한다. 최근 들어 손에도 힘이 빠지고 있는 듯 지팡이 걸음걸이가 위태한 느낌이다.
마트에 도착하면 엄마는 당신 몸보다 큰 장바구니 카트에 몸을 의지하며 장을 본다. 엄청나게 큰 무를 3개나 고르기에 많지 않으냐고 물으니 무채도 하고 생으로도 먹을 거라며 말끝을 흐린다. 닭고기를 사려고 뒤적이는 것이 한참 걸릴 눈치다. 엄마의 성에 찰 만한 큰 닭고기를 찾는 거다. 그 틈을 이용하여 잰걸음으로 맥주를 사러 간다. 금방 돌아온 듯한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니, 돼지고기 가게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세일하는 돼지 뒷다리 고기를 고르고 있다. 2킬로가량을 산 뒤, 장바구니에 있던 닭고기는 내놓는다. ‘이젠 닭 손질도 힘들다’며 돼지 뒷다리로 김치찌개를 할 거란다.
엄마네로 돌아와 저장고로 이용하는 베란다에 무를 갖다 놓으려는데, 옆에 큼지막한 배추 두 포기가 보인다. ‘웬 배추’냐니까, 엄마는 들은 듯 못 들은 듯 희미한 미소를 띤다.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가와서 더 이상 묻지 않고 집으로 향한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미소에 의미를 깨닫는다.
김치찌개를 하기 위한 막김치가 필요한 거였다. 그래서 무를 샀는데, 내가 성화할까 봐 둘러댄 거고 몰래 사둔 배추의 존재가 발각되어 멋쩍게 웃으신 거였다. 엄마의 김치 담글 계획을 알고 있었다면 내가 무거운 무를 미리 사다 줬을 거다. 아니 김치를 못 담그게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엄마는 나의 반응을 훤히 알고 계시는 거다. '김장김치가 많이 남아있으니 그것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면 된다'라고 성화했을 거다. 엄마는 김치찌개용 막김치를 나 몰래 담그고, 맛있게 담가진 김장김치는 내가 더 갖다 먹을 수 있게 하고 싶은 거였다.
“너는 힘들었어도 우린 잘 먹겠다”던 엄마의 수육과 연근튀김에 대한 '인사말'이 떠올랐다. 매 끼니를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엄마의 일을 덜어주면 그만큼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연장될 거라고 믿고 있다. 조금 게을러지려거나 나만큼 하지 않는 것 같은 다른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 생기려 할 때마다 나를 채찍질하는 믿음이다. 엄마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며, 엄마의 진심과 상황을 잘 헤아려 말하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이다.(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