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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민 May 06. 2021

"엄마 이가 빠졌어"

야들이 이 하나빠진 거가지고 왜이러노...

세 자매 단톡방에 언니가 남긴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집에 들기름과 참기름이 떨어졌더라. 오늘 저녁에 미나리와 달래 무침을 엄마가 맛나게 먹었어. 나물거리가 남아 조만간 필요할 거 같아...”    


대학에서 강의하고 번역일도 하는 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시아버지와 한 집에 살고 있다. 언니는 가능한 한 매주 한 번씩 친정집에 와, 엄마와 같이 저녁을 먹는다. 이후 자매들끼리 공유해야 할 내용을 단톡방에 올리곤 한다.   

  

조금 이른 퇴근을 했다. 저녁 찬거리 장을 보며, 참기름과 들기름뿐 아니라 엄마가 필요할 거 같은 과일과 찬거리들도 샀다. 나물 반찬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전날 저녁에 해둔 시금치무침을 가져다주려고, 출근길에 챙겨 나왔기 때문에 같이 가져다줄 심산이다. 기름을 보고 반가워할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엄마네로 향했다.   

  

엄마는 필요했던 것을 가져가면 반색하며 좋아한다. 하지만 절대로 미리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귀띔이라도 해주면 사 갈 것을 고민하지 않아 좋으련만, 자식한테 폐가 되기 싫은 엄마의 철칙이다. 그래서 항상 수수께끼를 풀듯, 엄마의 살림살이를 살피게 된다.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사야 한다. 지금보다 기운이 있을 때는 많이 사가면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이젠 부담스러워한다. 오랫동안 보관하며 먹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요리하는 것은 더더욱 버거운 눈치다.     


그날은 참기름과 들기름을 보더니 내가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관을 들어서며 본,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 달랐던 거 같다. 


장 봐간 것들을 설명하면서 꺼내놓으니, 장 본 돈을 주겠단다. 그동안도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몇 번 거절하다가 뜻을 굽힐 기세가 아니면 받았다. 열에 여덟 번은 받게 된다. 그날은 거절할 수도 없을 만큼 엄마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가 장을 보면 저렴하지만 질 좋은 물건을 골라 사는데, 나는 그럴 재주가 없으니 질 좋은 것을 사기 위해 같은 값이면 비싼 거를 선택한다. 그래서 실제 산 가격보다 적은 액수를 말하고 받는다. 그런 나의 셈법을 눈치챈 엄마는 언제부턴가 내가 말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실제 산 가격보다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경제적으로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피해가 되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장을 갈 수 없는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엄마 이가 빠졌어.”    


엄마와 함께 사는 동생이 소파 옆으로 와 앉으며 불쑥 말했다. 가져간 물건들을 대강 정리하고 돌아가기 전에 엄마와 잠깐이라도 이야기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암막이 쳐지는 듯했다. 엄마는 작년에 아래 작은 어금니 두 개만 남기고 틀니를 했었다. 하지만 틀니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래 작은 어금니 두 개로 식사를 했다. 틀니 사용도, 임플란트 시술도 마다하고 작은 어금니 두 개로 생활하는 엄마가 항상 안타깝고 조마조마했다. 사달이 난 이는 아래 작은 어금니 두 개 중 하나의 위에 이였다.   


엄마는 동생을 보며 ‘누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라며 평소 다니던 아파트 앞 치과에 가서 알아서 치료할 거란 소리만 반복했다. 동생과 나는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앞 치과'는 고의는 아니였지만, 어쨌든 엄마가 열악한 치아 상황에 놓이게 한 곳이다. 한참 동안 엄마와 실랑이하다가, 급기야는 동생과의 실랑이로까지 번졌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의 임플란트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동네 치과에서 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그 의사를 믿을 수 없고, 해주지도 않을 거니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빨리 대학병원에 예약하라고 했고, 동생은 엄마가 수긍을 한 다음에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엄마의 청력은 귀에 바짝 대고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로 악화되어 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를 했다. 감정이 격해졌고, 결국 나는 울음보가 터졌다. 그렇게 조마조마했던 엄마의 이가 사달이 난 것과 함께 대학병원을 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돈이 아까워서라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 이번 설에도 코로나 때문에 세배를 하지도 않은 스무 살 넘은 손주들 다섯 명에게 각각 30만 원의 세뱃돈을 주었던 양반이 당신을 위한 것에 돈을 아끼려 한다는 것이 너무 화나고 속상했다.   

  

“야들이 이 하나 빠진 거 가지고 와 이러노...”    


엄마의 흐느끼듯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엄마가 가장 겁이 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터져버린 눈물샘과 격한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자리를 빨리 뜨는 게 나을 거 같아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12층에서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와 주자창에 세워둔 차로 향하다가 돌아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12층을 눌렀다. 엄마가 안심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다독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파에 넋을 놓고 앉아 있을 거라고 짐작했던 엄마는 베란다에 엉거주춤 서, 놀란 눈으로 나를 맞이했다. 좀 전에 내가 시원한 베란다에 갖다 둔 과일을 다시 정리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베란다로 가서 엄마의 손을 잡고 소파로 와 같이 앉았다. 그리고 엄마 귀에 대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꼭 대학병원 가서 치료해야 돼. 대학병원에서는 잘 치료해 줄 거야. 자식이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이 돈 걱정하니까 내가 속상한 거야”     


엄마 얼굴은 보지 않은 채, 허공에 대고 ‘다시 올게’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엄마 얼굴을 보면 다시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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