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내 발생하는 다양한 심리가 궁금하신 분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에 관심이 있으신 분
위 이미지는 제가 학교 다닐 때 굉장히 공감돼서 정말 좋아했던 짤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사가 어쩌면 가장 알지 못 하는게 아닐까 하는 그런 우스운 내용이죠.
위 이미지처럼 우리는 게임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요, 바로 게임에 적응하는 단계에서 '이젠 정말 게임을 다 아는 것 같다.'는 이유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느껴지고, 누군가에게 귀여운 훈수를 둘 수도 있게 되는 상황입니다.
뉴비에서 코어 유저로 진입하기 전, 이런 우쭐거리는 상황에서도 UX 요소가 숨어 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오늘은 뉴비가 게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심리학, 행동경제학 요소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온보딩 시리즈의 마지막, 시작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새로 시작한 게임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이유 모를 자신감이 뿜뿜하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나요? 저는 튜토리얼 단계에서 하나씩 배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튜토리얼 이후 손쉽게 퀘스트나 미션을 클리어 해 내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곤 하는데요. 튜토리얼에서 배운 것과 저의 감을 응용해 미션을 수월하게 클리어할 때마다 저는 '아... 이렇게 잘하면 곤란한데☆ 나 혹시.... 이 게임 랭커 되는거 아냐?ㅎ' 이런 착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채로 본격적으로 게임에 임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경험이 성숙됨에 따라 생각보다 내가 이 게임에서 그렇게까지 잘하는 수준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면서 자신감이 하락하고 좌절하다가, 연습에 연습을 걸쳐 이전에 수행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다시 자신감이 오르게 되면서 그렇게 고인물이 되어가죠. 이런 흐름....... 저만 익숙한거 아니죠?
게임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양상을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부릅니다. 1999년 코넬 대학교 대학원생이던 데이비드 더닝과 교수였던 저스틴 크루거가 인지 편향에 관해 제안한 것으로, 얕은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판단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제안한 논문에 의하면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논리적 사고, 문법, 유머 감각 등을 테스트한 결과, 하위 25%에 해당하는 실험 참가자들이 대체로 자신의 실력을 평균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생각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이는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더닝과 크루거는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훈련을 통해 능력이 향상된 후에야 비로소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더닝-크루거 효과는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흔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수학의 정석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하면 집합 부분만 정말 열심히 공부하다가 책을 버리곤 했습니다.(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죠...?ㅎㅎ) 처음 수학의 정석을 시작하면 열정도 넘치고 다 아는 것만 같은 근자감에 열심히 집합 공부를 하지만 어느새 제가 수학을 그렇게 잘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고 금방 포기해 수포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한 과목은 어느새 실력도 오르고 자만심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도 더닝-크루거 효과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게임에 대입해서 얘기해보면 갓 게임에 재미를 느끼며 자신감이 넘칠 때가 어쩌면 가장 아는 게 없을 때일 수 있다는 것이죠.(어쩐지 고인물 선생님들은 모든 것을 통달한 현자 같으시더라고요ㅋㅋ) 이후에 있을 절망의 계곡에서는 이탈 혹은 각자의 목표에 따라 성장하고,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연스레 지속 가능성의 고원으로 가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절망의 계곡에서 게임을 관두지 않도록 다양한 재미를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네요.
더닝-크루거 효과와 관련된 제 개인적인 게임 경험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저는 평소에 MOBA 장르의 B게임을 정말 즐겨 합니다. 처음에 어떤 챔피언 외형을 보고 막연히 '예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습 모드의 봇 상대로 '꽤 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 생각보다 재능충일지도..ㅎ 이정도면 사람을 상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일반 모드로 들어가서 플레이 하게 됐는데, 유튜브로 봤던 콤보를 생각보다 잘 넣는 저를 보고 '오 이거 진짜 쓸만 할지도~' 하고 바로 랭크 게임으로 큐를 돌렸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을...... 그 챔피언의 패시브도, 대미지도, 궁극기 효과도 어떤지 명확하게 알지 못 하면서 근자감에 시작한 랭크 게임이었기 때문에 결과는 당연히 패배였습니다. 당시 게임이 끝나고 저는 저에게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보단 막연히 팀 탓을 하며 다시 한 번 큐를 돌렸고, 그때도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제가 해당 챔피언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챔피언으로 갈아타기도 했지만 어떤 챔피언을 하든 기본기가 부족했던 저는 뭘 선택하든 결과가 비슷한 것을 깨닫고, 게임을 접을까 고민도 했지만 꼭 달성하고 싶은 티어가 있어서 다시 처음에 선택했던 챔피언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게임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올리고 싶은 티어에 대한 욕망이 그 생각을 이겨 버렸네요.) 패시브는 어떻고 스킬은 어떤 게 있고 포지션은 어떻게 잡아야 하고 이럴 땐 이 아이템을, 저럴 땐 저 아이템을 등등........ 어느새 공부를 하면서 꾸준히 랭크 게임을 돌리니 원하는 티어도 달성하게 됐고, 해당 챔피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그제서야 저는 그 챔피언을 알아가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저는 더닝-크루거 효과 그래프 속 깨달음의 오름막을 천천히 걷고 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UX분석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 더닝-크루거 효과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모바일 RPG 장르인 A 게임에서는 재미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어 UX분석실에 튜토리얼에 관해 함께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답니다. UX분석실에서는 튜토리얼에 집중해, 튜토리얼의 역할에 대한 고찰과 튜토리얼-게임 이탈 간의 상관 관계가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에 액티브 유저와 이탈 유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튜토리얼 학습 여부는 액티브 유저와 이탈 유저 두 그룹의 이탈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럼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체감 난이도와 학습 니즈 시점에서 그룹 간 차이가 극명했다고 합니다.
액티브 유저의 체감 난이도는 게임 진행도에 따라 점점 상승하지만, 이탈 유저의 체감 난이도는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즉, 유저가 게임을 어렵게 생각해서 이탈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역시도 더닝-크루거 효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 유저의 학습 니즈는 성장기에서 발생하는데, 이탈 유저는 완숙기에 비로소 오르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탈 유저는 레벨이 올라도 자동 사냥 방법 등과 같은 기초 시스템을 더불어 장비를 선택하는 방법과 같은 숙련 시스템이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쉽고 잘 아는 것만 하려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기회를 놓치고 게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게임을 이탈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UX분석실에서는 해당 게임의 튜토리얼이 1) 스스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2) 학습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개선해 더욱 풍성한 튜토리얼이 되도록 개선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NDC 다시보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DC21-데이터분석] 튜토리얼, 다시 보기 - YouTube
위에 말씀드린 실무 케이스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게임이 유저의 학습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 장르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편의성을 목적으로 자동 스킬 분배라던가 아이템 추천이라던가 하는 시스템들로 유저를 무지하게 만드는 것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적정 학습량과 편의성 간의 밸런스를 잘 잡는 좋은 게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무언가를 학습하는 데에 있어, 허들은 당연한 자연스러운 단계일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한없이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기보다 내가 모르는 게 어떤 건지 파악하고 차근차근 학습해 나가면 어느새 많은 것을 아는 경지에 오른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세상의 진리가 더닝-크루거 효과의 시사점이 아닐까 싶습니다.(학습의 시기와 적정한 학습량이 제공되는 시스템이 보조된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게임 온보딩 단계 속 숨겨진 UX 요소 시리즈는 이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그동안 재미있으셨을까요? 다음부터는 온보딩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다양한 게임 속 UX 요소를 가지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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