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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라나 Jan 05. 202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마약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섰던 프랑수아즈 사강이 한 말이다.

20대엔 이 멘트가 참 멋있게 느껴졌었다.

물론 저 앞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이란 문구도 들어간다.


마흔이 넘어 다시 마주친 이 문구는 이 중년의 아줌마에게 여러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이면,

나는 나를 내 멋대로 파괴할 권리가 정말 있는 걸까.


그녀의 일생이 궁금해져서 처녀작인 <슬픔이여 안녕>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십 대에 재미있는 연애소설인 줄 알고 집어 들었다가 별 감흥 없이 덮은 책이다. 역시 글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배경을 알고 읽으면 와닿는 부분이 다르다. 이 책은 그녀가 19세에 2주 만에 썼다고 들었는데 다시 읽는 내내 어머 십대가 어떻게 이런 책을 썼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유롭고 돈 많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마흔 살 아빠와 빨강머리 젊고 탱글한 스물아홉 살 그의 애인, 그리고 이제 열일곱 살이 된 딸이 두 달간 프랑스의 한 별장으로 휴가를 가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아빠는 6개월에 한 번씩 애인을 갈아치우는 호색한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본인의 감정을 세상에 숨기려 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은 그런 아빠가 좋다. 본인의 공부하기 싫어하는 모습도 쿨하게 인정해주고, 어떤 고민도 아빠와 웃으며 솔직히 말할 수 있다. 가식이 없는 어른이라서 가능한 듯 싶다.


십 대의 딸은 그곳에서 젊고 매력적인 이십 대 남자를 만나고 수순대로 사랑에 빠진다.

아름답고 완벽한 휴가가 시작되었지만, 뜻하지 않는 방문자, 그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엄마의 친구, 고상하고 지적인 '안'이 합류하면서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책에선 십 대만의 자유분방한 감정들이 아주 정밀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우리나라 십 대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프랑스여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빠른 전개, 솔직한 묘사, 이런 책을 2주 만에 써내서 순식간에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의 반열에 오른 프랑수아즈 사강.

그 뒤로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 연속 베스트셀러를 내며 작가로서의 활동은 왕성했지만 약물중독, 도박중독, 스피드 중독, 사건 사고가 많았던 그녀의 삶은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다시 그녀의 멘트를 떠올려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연결된 누군가의 삶도 파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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