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라나라나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도 많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을게
그치만 네 손을 꼭 잡을래
혼자였던 밤하늘
너와 함께 걸으면
그거면 돼
⭐️
<별 보러 가자 -적재 >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 추억에 빠져 글을 쓰고 나니 온몸의 연애세포들이 근질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나면 대부분 신랑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엔 안 보여줬다. 이런 주제로 쓰고 있다고 말은 했더니 그래? 역시나 별 반응도 없었다. 안물 안궁 모드로 밀고 나가신다 이거지.. 이럴 줄 알았음 더 찐하게 쓸 것을.
저녁 집안일을 마치고, 혼자 운동하러 이어폰을 낀 채 달밤 산책을 나갔다.
<바라던 바다>에서 온유와 이수현이 함께 부른 <인형의 꿈>을 시작으로 온유의 목소리로 적재의 <별 보러 가자>를 듣게 되었다.
와. 와 이건 뭐지. 심하게 감미로운데? 마침 하늘을 올려다보니 짙은 남청색 하늘에 별이 한두 개 떠 있었다. 동네는 말할 수 없이 고요하고, 가로등의 부드러운 주홍색 불빛, 그리고 간간이 새어 나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해있는데 이어폰 너머로 '온유'가 내 귀에 속삭였다.
어디야 지금 뭐해? 난 살짝 맛이 가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집이지. 암것도 안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 어 갈게 갈게!)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오지 않을래? ( 당근, 너네 집 앞까지도 뛰어갈 수 있어.)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 겉옷은 무슨, 당장 나갈게.)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더 멀리 가도 돼!)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게. ( 다른 것도 잡아도 돼!)
너무 서두르지 않을게 (그냥 서두르자.)
너와 함께 걸으면 그거면 돼 (더더더한 것도 돼!)
온유의 목소리에 혼자 심쿵하며 걷다 보니 갑자기 마구 달리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별 보러 가자면 이렇게 당장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보통 달밤 산책할 땐 느릿느릿 걷는데 오늘은 글의 여운과 감미로운 목소리에 십 대의 영혼을 순간 장착한 마흔의 몸뚱이는 신이 나서 동네를 아주 여기저기 마구 휘젓고 뛰어다녔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났는지, 땀이 주르르 흘러 눈물처럼 볼에 닿은 순간, 숨을 고르면서 생각해보았다.
옛 추억에 관한 글을 왜 쓰는가.
그딴 과거 이야기 꺼내서 무엇에 쓸 것인가.
부부 사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그런 혼자만의 추억 여행이 대체 오늘의 삶에 무슨 영향을 준단 말인가. 이런 글 써서 뭐하나 머릿속으로는 이성적으로 시간낭비야 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 내 심장은 왜 이러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그동안 오래 잊고 살았던,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 느끼는 그 설렘 말이다. 우리는 모두 십대의 감수성 터지던 귀밑 3cm 단발머리 소녀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난 검은 하늘 아래 팔딱팔딱 이리저리 뛰어 댕길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고 양볼이 발그레해졌다.
추억이 나를 생동감 있게 잠시 비타민 주사를 놓아준 것만 같았다.
아하. 이 설렘. 미소. 젊음이 잠시 내 몸에 머물다 간 듯한 활력. 이것이 옛 추억이 건네는 선물이구나. 그 길로 신랑에게 뛰어들어가 말했다.
"오빠. 이 노래 좀 해줄래? 기타도 쳐 주라."
" 어 근데 이건 나랑 목소리 톤도, 굵기도 달라."
"나 이거 들으면서 막 대답하며 뛰어 댕겼다."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보여줬더니 신랑이 얘가 약 먹었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진짜 니 아줌마 다 되었구먼. 젊은 애들 목소리가 그렇게 좋냐."
" 어 너무 좋아. 막 설렌다."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그래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화와 예술의 주제가 되었을 것이다.
마흔 넘은 아줌마가 어디 가서 설레고 오겠는가.
밖에서 설레면 더 큰일 나지.
차라리 드라마나 소설, 그리고 나의 추억 속에서 설레는 게 낫지.
"요즘 드라마 작가나 피디들이 다 우리 나이라서 그렇게 와닿는 게 많나 봐."
"그치. 응답하라 시리즈나 슬의생 다 우리가 공감하는 노래, 이야기잖아. 지금 우리 나이가 각 분야에서 가장 한창때인 거지."
"아. 그럼 십 년 이십 년 뒤엔 드라마도 많이 다르게 느껴지겠다."
"그럼. 우리 애들 또래가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렇게 쓰겠냐."
"그렇구나. 그럼 지금 우리 나이는, 드라마도 가장 즐기기 좋은 나이구나."
문득 신랑과 연애를 하다가 결혼까지 못 가고 헤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럼 어느 날 갑자기 당신과 함께 본 영화를 TV에서 본다던가, 라디오에서 당신이 불러주던 노래를 들으면 난 잠시 멈춰 서서 그날과 우리의 추억과 당신을 떠올리겠지.
우리가 그리 나쁘지 않게 헤어졌다면, 내 얼굴엔 슬며시 미소가 번지겠지. 그 날밤 설레어서 또 다른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을지도.
갑자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지 않고 이렇게 옆에서 애를 둘이나 낳고 거지꼴 다 트고 같이 나이 들고 있어서.
비록 설레지는 않지만,
오빠. 앞으로도 여러 날 동안 함께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나이 들어도 쭈글쭈글한 손잡고 함께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