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나라나 Jan 28. 2022

노랑머리 약사의 첫 출근

by 라나라나


고등학교 시절, 고2가 되면 이과와 문과로 나눠졌다.

난 뼛속까지 문과생이었지만, 고 1 때 친한 친구들과 함께 헤어질 수 없다. 다 같이 이과 가자! 해서 우르르 이과로 넘어왔다.

사실 그때는 내가 문과 체질인지 이과 체질인지도 잘 몰랐다. 부모님도 잘 모르셨던 것 같다. 친구들도 다 비슷했다. 같이 서점 다니고 도서관 다니고 시집 끌어안고 댕기던 친구들 죄다 이과에 있었으니.

어찌어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약대로 진학을 했고, 학과 공부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약대를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은 약사 고시 후 약국에서 좋은 자리를 찜해놓고 알바도 하고 있었고, 제약 회사나 병원에 지원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동기들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취직은 어디든 하겠지 속으로 생각만 했을 뿐 머리도 샛노랗게 염색해보고 아직 취직 안 한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가며 놀았다. 그러다 한 동아리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이 일하는 약국에 약사를 뽑는데 이번 주 당장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친구들이 현재 받고 있는 페이보다 제일 높게 준다고 했다. 후훗 역시 또 일이 잘 풀리는군. 제일 늦게 취직하면서 제일 높은 페이를 받게 되다니.

바로 월요일 출근하겠다고 했다


첫날 아홉 시까지였는데 여유 있게 삼십 분 정도 일찍 갔더니 약국 셔터문이 내려있었다.

그 앞에서 청바지를 입고 쭈그리고 앉아 기다렸는데 조금 있다가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학생 하나가 왔다.

나를 눈으로 흘깃 쳐다보더니,

"누구세요?"

자물쇠 열쇠를 꺼내며 비켜달라는 듯 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첫 출근하기로 했는데요."

눈이 휘둥그레지던 그 학생은

"아.. 네.."

하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정장을 입고 왔어야 했나.. 어차피 가운을 입을 거란 생각에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셔터 올리는 걸 도와주고 나니 그 학생은 텅 빈 약국에 들어가 불을 켜고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켰다.

그 뒤로 한 두 명 더 어린 학생들이 헐레벌떡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들어왔고, 박카스와 비타 500, 쌍화탕 박스를 뜯어가며 냉장고와 온장고에 채워 넣었다.


좀 있다 선배가 왔다. 그리고 주인 약사님이 오셨다.

약사님은 눈이 엄청 크셨는데, 나를 보더니 눈이 최대치로 커지셨다.

그리고 여장부처럼 호탕하게 웃으시며 

"아이고, 반가워요. 승아 (셔터문 열던 ) 친구인 줄 알았네. 약국 처음이죠? 실습은 해봤나 " 

"실습은 병원에서 해서 약국은 처음이에요."

"아 그럼 천천히 배워요. 약사님들 두 분 더 계시니까. 가운 입어요."

이름 없는 가운을 하나 건네주셨다.


그리고 아홉 시가 되었다.

의약분업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절이었다. 약국은 산부인과와 소아과 내과가 있는 중형병원 옆이었는데 아.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모든 병원이 월요일이 제일 바쁘듯, 약국도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그 월요일, 아홉 시 땡 하자마자 환자분들이 물밀듯이 처방전을 들고 몰려오시는데, 

정말 눈 깜 박할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밥을 콧구멍으로 먹듯이 욱여넣고 정신 차려보니 저녁 일곱 시였다.

밥 먹을 때 빼곤 단 한 번도 앉지 못했다.


아직 일도 서툰데, 서툴러도 일손은 부족하니 조제했다가 뛰쳐나와 일반약을 팔았다가 처방전을 받았다가 난리가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동기들 중 제일 바쁜 약국에 들어간 거였고, 시간도 길고 주말 근무까지 있어서 페이가 센 거였다. 특히 소아과 옆은 보통 약들 조제 시간의 두 배가 든다. 시럽을 따르고 알약을 갈아서 또 가루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가 오기 때문에 약국 안은 더 북적거리고 꽉 찼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내 얼굴은 머리색보다 더 노랗게 질려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실수한 것도 많아서 아주 민망했다.

모든 직장 출근의 첫날은 뭐 비슷하지 않을까.. 혼자 위안을 삼는데

주인 약사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서 약사!! 남아서 일 좀 배우고 가야겠어!!"

"넵!!"


약사님은 진짜 걸걸한 스타일의 여장부셨는데, 말을 속에 담아두고 그런 분이 아니셨다.

난 그날부터 일주일간 야근을 해가며 약사님과 직원 동생들과 저녁을 먹고 처방전을 입력하고 분류하는 법과 수만 가지 약의 위치를 외우고 또 외웠다. 외우는 건 자신 있었는데 문제는 손님들 앞에 설 때였다.


"뭐 필요하세요?" 


여쭤보면 손님들이 내 얼굴과 머리를 먼저 쳐다보셨다. 그리곤 자꾸 약사님을 불러달라고 했다.


"아. 네. 잠시만요. 약사님~! " 


그러면 그냥 다른 약사님을 불러드렸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더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주말 동안 미용실에 가서 다시 염색을 했다. 도장 명찰 파는 곳을 찾아가서 찐 핑크색 명찰을 팠다.

월요일, 당당히 내 이름 앞에 약사라고 적힌 명찰을 차고 까만 머리로 카운터에 섰다.

소아과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뭐 드릴까요?"

"언니~. 약사님이랑 상담 좀 하고 싶은데요."


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했다.


"제가.. 약사..


님 불러드리겠습니다.. 약~사~니임~!!!"


그렇게 언니에서 약사로 불리기까지 몇 달은 더 걸렸다.

소아과 단골 아이들을 뽀로로 비타민으로 꼬시고 안아주며 

"약사 이모가 까줄게!! " 스스로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서서히 엄마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스무 살 무렵 사회 초년생이었던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서툴렀고 긴장했고 이불킥하던 밤들이 있었다.

관공서나 아이학원, 병원같은 곳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회 초년생인 그들의 당황한 눈빛 속에서 그 시절 나를 본다.

'처음엔 다 그렇죠..'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금 여유있게 살짝 미소를 건네줄 수 있는,

이젠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염색하는 누런 머리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떠나보낼 수 없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