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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화위복 Feb 17. 2022

삼국(三國)을 봤습니다 - (2) 조조

드라마『삼국』의 초반부 주인공은 단연 조조입니다.  소설『삼국지연의』에서도 초반부 조조의 비중이 높지만 그래도 유비가 확고한 주인공입니다. 반면, 이 드라마에서는 아예 대놓고 조조가 초반 주인공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비에 비해서 조조의 커리어 초창기의 스토리가 더욱 풍부하기 때문에 이렇게 설정된 것 같습니다. 『삼국』에서 묘사된 조조를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그 동안 삼국지 관련 여러 창작물들에서 빛을 잃어가던 조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완벽한 부활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조는 시대를 막론하고,『삼국지연의』를 대표하는 악역입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조조의 재평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과거엔 대중들이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역사서『정사 삼국지』의 접근성이 높아졌습니다. 『정사 삼국지』는 기존에『삼국지연의』세계관만을 즐겼던 삼국지 팬들에게 풍성한 스토리의 새로운 보고였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거나 혹은 활약이 미비했던 인물들의 재평가 바람이 불었으며, 따라서 대표 악역이었던 조조는 자연스럽게 재평가 받기 딱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조의 재평가을 주도했던 것은 당시 인기가 높았던 일본의 창작물들이었습니다. 재평가 과정에서 주로 속마음을 감추고 다소 음흉한 면이 있는 유비에 비해, 비록 간사하고 잔인한 면이 있지만 유능하며 쿨하고 카리스마를 갖춘 강력한 '철의 군주'의 이미지가 부각되었습니다. 이 시절에 조조를 주인공으로 그린 만화 『창천항로(1994)』가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삼국지 관련 게임 제작사로 유명한 '코에이'에서는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SRPG 게임 『삼국지 조조전(1998)』이 출시되었습니다. 이전 작이 제갈량이 이루지 못한 북벌을 이룬다는, 삼국지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던 픽션을 가미한 『삼국지 공명전(1996)』인 점을 감안하면, 차기작이 반대 세력인 조조를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나름 깜짝 반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코에이의 '삼국지 조조전' (출처 oldpcgames.co.kr)





재미있는 점은 조조의 재해석 바람에 따라 조조의 외모 이미지 또한 변해갔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조조의 외모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에서 잘생긴 인물의 외모는 가감없이 잘생겼다고 묘사한 점, 그리고 조조가 평소 최염의 외모를 부러워했다는 점 등에서 조조의 실제 외모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조의 재평가 바람이 불기 전 '코에이(KOEI)'의 삼국지 시리즈에서 묘사된 조조의 외모를 보면, 대체적으로 노회한 정치인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출시한 작품부터는 점차 '냉미남'형 외모로 바뀌어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파격적인 군주로 인기가 많은 '오다 노부나가'와 조조가 비교된다고 합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게임에서 조조의 외모 또한 같은 제작사의 다른 게임에서 묘사된 '오다 노부나가'의 외모와 거의 유사한 이미지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 탓에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조조는 미남형으로 묘사되는 편입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조조 일러스트 변천사. 5편(1995)까지는 후덕한 털보인데, 6편(1998)부터 '냉미남'형으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KOEI)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요? 이렇게 조조의 재평가 바람이 불면서, 조조가 가진 고유의 캐릭터도 점차 빛을 잃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전형적인 악역이라기 보다는 작중 가장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평소 흠모했던 관우가 끝내 자신을 따르지 않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워하면서 관우의 심정을 이해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평소 탐탁치 않게 생각한 양수가 계속 자신의 머리 위에서 놀자, 명분이 생기자마자 단숨에 베어버리지요. 벼랑끝까지 몰렸다가 겨우 역전승을 거둔 관도대전에서는 원소의 진영에서 자신의 부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서신들이 발견되자, '나도 마음이 흔드렸는데, 저들은 오죽했겠는가?'라며 모두 없던 일로 눈감아주기도 했지만, 순욱처럼 오랜시간 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일지라도 조조가 구석을 받는 것에 대해 반대의 뜻을 가지게 되자 비참한 최후(자결)을 명합니다. 허유가 원소를 배신하여 조조의 진영으로 왔을 때, 겉으로는 허유를 환영하는듯 했으나 완벽하게 믿지 못해 허유에게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 놓다가 들통당한 뒤 깨갱하는 장면도 조조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부터 불어온 재평가 바람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조조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개성은 희석되고 점점 '파격적이면서 쿨하고 유능한 철의 군주'의 이미지만 부각되었습니다. 심지어『창천항로』에서 묘사된 조조는 약점이란 없는 무결점의 인물로 신격화 됩니다.『창천항로』에서 작가는 『삼국지연의』에서 신격화된 제갈량을 비꼬기 위해, 조조를 통해 '사람다움을 몸에 다시 묻히고 다시 오라'라고 제갈량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제갈량은 이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 같던 외모가 급격하게 사람처럼 변하게 되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사람답지 못한 인물은 완전무결한 조조였습니다.





신격화된 제갈량을 비판하는 조조. 하지만 이 작품에선 본인이 제일 신격화되었습니다 (출처 : 창천항로 中)




하지만 드라마『삼국』의 조조는 입체적이면서 매력적인 조조로 완벽하게 돌아왔습니다. 이 작품에서 조조는 기본적으로 매 순간마다 빠르게 상황을 계산하여 '자신의 이득에 가장 최선이 되는 선택'을 판단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고 결정을 내리면, 아무리 비정한 행위라도 주변에 평판 때문에 실행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장개가 조조의 아버지를 죽였을 때 조조는 슬퍼하기는 했으나, 서주를 공격하기 위한 대의명분을 얻은 것 사실을 같이 떠올립니다. 도겸을 토벌한다는 상소를 순욱이 조조 대신 미리 써놓았는데, 조조는 '네가 썼으면 내 맘에 딱 맞겠지'라고 말하며 읽어보지도 않은 채 아버지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동합니다. 서주 대학살을 감행한 이유도 사적인 분노 표출이 아닌 '군량 부족' 문제로 묘사됩니다. 이것 역시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행동을 판단하고, 그 선택에 대한 주변 제후들이나 후대의 평가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조조의 성향이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순욱이 쓴 상소는 딱히 읽어볼 필요가 없다는 조조 (출처 : 넷플릭스 캡쳐)




조조의 빠른 상황 판단은 부하들을 대할 때도 잘 드러납니다. 부하가 아무리 잘했어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는 격렬하게 질책합니다. 그러나 부하가 아무리 못했어도 군심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으면 과장된 표현력을 동원해 격하게 격려를 해줍니다. 그 어느 때보다 뼈아픈 적벽대전의 패전에 군심이 바닥을 치자, 조조는 속은 쓰리지만 허저에게 '그깟 병사 좀 잃었다고 질질 짜느냐' 라며 힘을 북돋아 줍니다. 이러한 조조의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때에 따라 변하는 행동들은 '공포정치'의 근간이 되어 조조의 절대 권력을 지탱해줍니다. 이처럼 그동안 재평가 바람이 불며 많이 희석되었던『삼국지연의』속의 간웅적인 면모가 기본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무작정 비정한 간웅이 아닌, 조조의 능글능글하고 유쾌한 인간적인 면모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품 내내 소소한 개그와 수많은 명대사를 쏟아냅니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가 '네놈의 고기를 씹겠다'라고 욕설을 퍼붓자, '내 고기 씹는 거 말고 참신한 것 좀 없냐?' 라고 재치있게 응수할 줄 아는 캐릭터입니다. 먹방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하면서 항상 무언가를 먹는데, 주변에 꼭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게 참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연출이 됩니다. 자리에 앉아서 젓가락으로만 먹는 쌀밥도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작중 초반부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중반부 부터는 한 제국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것에 무색하게 굴욕적인 장면을 가장 많이 연출합니다. 적벽대전에서 패한 뒤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는 그 동안 보여준 절대 권력자의 위엄는 온데간데 없이 이보다 더 처량할 수 없습니다. 관우로부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여 도망친 뒤, 관우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마자 바로 남군성에 돌아가면 몇 배나 더 큰 깃발을 꽂을 것이라며 재기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 실제 조조도 저렇게 실패에 기죽지 않고 꿋꿋히 버텨내는 강력한 멘탈의 소유자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끝난 것처럼 싹싹빌다가 관우가 사라지자 바로 재기를 다짐하는 조조 (출처 : 넷플릭스 캡쳐)




결론적으로 『삼국』의 조조는 그 동안 재평가 바람을 타고 오히려 평면적으로 변해가던 조조라는 캐릭터의 완벽한 부활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배우 진건빈의 열연이 더해져 중국 삼국시대에 관심이 없거나, 삼국지에 대한 스토리 지식이 없는 시청자라도 조조의 유쾌함과 에너지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묘사된 캐릭터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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