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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May 24. 2024

남프랑스 생활이 실감 난 건 바로 '라면' 끓이던 순간

갑자기 남프랑스에 살게 된 우리 가족의 적응기


작년 가을, 술을 한잔 걸친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 프로그램 신청 도전장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짧게 고민하고 "해 봐!" 한마디를 던졌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열성을 다하는 남편은 어려운 미션을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이 통과해 냈고, 우리는 정말 프랑스 남부의 어느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둘이 거의 같은 급여 수준을 가진 맞벌이 신혼부부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쳇바퀴 같이 돌아가는 일상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던 서른의 우리였다.



16살, 해외에서 만나 서울에 정착한 지 5년

31살, 다시 짧지만 긴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모든 프랑스살이 혹은 유럽살이 이야기는 <어쩌다 유럽>으로 기록하려 한다.


나와 남편 그리고 중국에서 데려온 율무까지,

우리는 정말 '어쩌다' 유럽으로 오게 되었기에 -






남프랑스 생활 적응기 -1-


사실 프랑스에 살게 되었다는 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내렸을 때에도,

아비뇽 떼제베 기차역에 내렸을 때에도,

새롭게 살게 될 집에 막 들어왔을 때에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율무가 안전히 비행을 견뎌줘서 고맙다

드디어 짐을 끌고 다니는 여정에서 해방이다

집 정리를 빨리 해야 여기에 정을 붙이겠구나


이게 그 당시 나에게 들던 생각이었다.


그러다 별거 아닌 한 순간에 이 상황이 실감 났다.

"나 에비앙 생수에 라면 끓여 먹네?"




첫날 남편과 급하게 먹은 라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나는 사치는 아니냐는 듯이 남편에게 물었다.

 "라면도 에비앙으로 끓이는 거야?"




나보다 3개월 먼저 프랑스에 온 남편은 이미 적응한 듯 대답했다.

"1리터 6병에 몇 유로밖에 안 해~"




한국에선 1L에 3천 원 남짓 팔리고 있다.

역시 뭐든 '산지'에서 소비하는 것이 최고인 건가!




 P.S. 그래도 짜파게티는 수돗물로 끓인다




이제 갓 일주일 정도 살아본 나는 아직도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떨린다.

16살에 여동생과 둘이 중국으로 떠나, 10년을 넘게 살았던 경험만 믿고 당연히 잘 적응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15년을 넘게 더 살아버린 나는 '겁'이 많은 인간이 되어버렸다.



언제쯤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프랑스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열심히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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