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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리엔 May 24. 2024

먼 타국에서 나를 한 발자국 내딛게 하는 생명체

갑자기 남프랑스에 살게 된 우리 가족의 적응기


프랑스에 오기 전, 현지생활에 금방 적응할 거라 다짐했다.

나름 해외생활을 10년 넘게 했던지라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달까?


15살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떠났던 나,

서른도 넘은 나이에 해외 가서 적응 못하겠어?


응, 못하네...

웬걸, 첫 일주일은  혼자 집 단지를 나가는 것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가 갑자기 인사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익히 들었던 인종차별로 괜한 욕을 먹지 않을까 두려웠다.

혼자 또는 율무와 걸어 다니면서도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맞다.

이럴 땐 더 많이 나가고, 더 많이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다 알지만 그냥 아직 무서운 것뿐이다.




다행히 나의 외출메이트 율무가 있어줘서 참 다행이다.

겁이 많아진 나를 굳이 밖으로 나가고, 걷게 해주는 감사한 생명체


강아지의 천국에 온 걸 알았는지, 집 안에서는 배변을 하지 않으려는 율무

이 멀리까지 데리고 와놓고 밖에 산책도 안 나가면 나쁜 사람이 된 듯한 죄책감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몸을 일으켜 율무와 무조건 나가본다!

굳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키고 발걸음을 옮긴다는 게 중요하다.




오래된 성을 중심으로 구도심을 이루고 있는 아비뇽(Avignon)

우리 집은 거실 테라스에서 성벽이 보이는 빌라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1-2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성 밖을 거닐 수 있다.

성벽을 따라 길이 참 잘 나있고, 트램노선으로 인해 잔디밭도 있다.


율무는 프랑스에 와서, 거의 매일 이 성벽을 걷고 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는 리드줄을 살짝 풀어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다.


그렇게 율무와 성벽을 좌로 우로 하루씩 둘러보고, 집 단지 내 정원을 한 바퀴 돈다.

한 시간 남짓 시간으로 그래도 조금 이 도시와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엔 반려견을 더 좋은 환경에 '데려와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그저 우리가 마음 편하려 율무를 모셔온 것이다.

지금 난 율무가 없었다면, 어느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율무와 산책을 나서며 엘리베이터를 타다 위층 이웃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겁내지 마~" 라며 율무의 이름을 묻는다.

어려운 발음을 노력해서 "유울무?" 불러본다.

그러곤, 나를 쳐다보며 되묻는다.

"꽃의 이름을 딴 거야? 이 아이 이름을 어떻게 지었어?" 


나는 머쓱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대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율무라는 이름을 왜 지었는지 물어왔기에.

"음.... 곡물 이름이에요, '쌀'이랑 비슷한..."


어떤 의미인지 모를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서로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했다.

그리곤 아주머니가 문 앞에서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이 아이 여자야, 남자야?"

"여자예요!"

"난 3층에 사니까, 무슨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문을 노크해"


여기에서 처음으로 남편 외 다른 사람과 길게 나눈 대화이자, 처음으로 너무나 감사함을 느낀 대화였다.

불안함에 몸서리치던 나에게 처음으로 친절한 한 마디였다.

그냥 매너 좋게 한마디 던진 것이어도 상관없다. 난 그냥 기뻤다.



"뤼얼리!? 오~ 땡~뀨우~"

나는 잔뜩 과장된 말투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내가 혼자 정원을 산책했다면,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상상할 수 없었을 경험이다.

다시 한번 율무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와줬다는 것을 깨닫는다.



난 이 아이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왠지 율무에게 참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새삼 율무가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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