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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린 Aug 06. 2024

운전 잘 못하면 경계선 지능이라고요?

feat. 아이유에 관한 이야기

운전면허를 취득한 1년 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신체 건강하고 가방끈도 나름 긴 나는 빠르면 3일, 늦어도 한 달 만에 '증'을 쥘 수 있을 거란 건방진 생각을 했지만, 부끄럽게도 한 달 반이나 걸렸다. 그래도 뭐 어떤가? 점수나 등수를 새길 것도 아니니 과정은 비밀로 간직하고 합격의 기쁨만 누리면 되지.

     

그런데 면허 취득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운전 첫날 골목길에 주정차된 차량 사이드미러를 후려며 났던 ‘펑’ 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아저씨는 부상당한 사이드미러를 수건으로 연신 닦으며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어떻게될지 모르니.”라고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죄책감과 여운을 가볍게 토스하신 후 보험사 직원과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떠나셨다.      


이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운전치’가 되었고, 누가 봐도 웃음 터질 만큼 큰 ‘왕초보’, ‘서행’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도로 위에서 남한테 피해 주지 말기’가 내 인생관, 인생 목표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봤다. 자신은 살면서 ‘경지’, 즉 경계선 지능인은 피하고 싶다는, 당시 이슈였던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설명글이었는데, 여기에 ‘길치에 운전 못하고 젓가락질 못하는 사람도 의심스럽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수 만 명의 ‘운전치’와 ‘포크 성애’를 한방에 보내버렸다. 나는 속으로 발끈했지만, 댓글에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담백하게 반박글을 적기 시작했다.     


ID: soulynn “아이유도 길치에 운전 안(못)하는데요? 그럼 아이유도 지능 문제예요?” (중략)


그녀가 콘서트장에서 길을 잃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매니저에게 번쩍 들려 옮겨지는 영상은 늘 조회수가 수백만 뷰다. 나는 자기 분야에 TOP을 찍은 그녀를 보며 ‘운전이나 방향감각은 지능과 별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해 왔다.  물론 어느 날 유튜브에 올라온 ‘아이유 운전 썸네일’을 보고 놀라 허겁지겁 클릭한 적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토크쇼를 펼치며 스무스하게 운전하는 그녀를 보니 왠지 힘이 빠졌고, 면허 선배인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것은 만우절 기념 연출 영상이었고, 다시 팬심과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이유의 무면허’는 우리 같은 ‘운전치’, ‘무면허자’들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반박 사례’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운전은 지능과 정말 상관이 있을까? 언어성 지능은 차치하더라도 동작성 지능과 상관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에 대부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과고, 명문대 출신 여성도 심한 길치인걸...

     

그리고 운전스킬이 정말 지능지수와 밀접하다면 최소한의 하한 기준도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아는 지적 장애 판정을 받은 IQ 60대의 20대 남성은 지금도 도로 위를 쌩쌩 달린다. 물론 돌발 상황 대처나 사고 후 수습이 필요할 때 지능의 영향을 받을 순 있겠지만, 무사고인걸 보니 어느 정도 수준의 운전능력 획득은 충분히 가능한듯하다.


심지어 2019년에는 쥐를 훈련시켜 차량을 조작해서 목적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고, 포유류보다 지능이 낮은 금붕어도 학습을 통해 운전하여 목적지까지 이동하였다고 한다.


운전과 지능 간의 상관이나 인과가 뚜렷하다면 법적 이슈나 조치가 벌써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그냥 그럴 것 같아서’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지능’이라는 민감한 키워드에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건 조심해줬으면 싶다. 겁이 많아 위험회피 기질이 높을 수도 있고, 드물지만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다. 또 걷다가 남들보다 자주 부딪고 자빠지는 사람들처럼 자기 생각에 골몰해 조금 부주의했을 수도 있다. 이제 나의 동지인 ‘운전치’와 ‘길치’들에게 해명할 일이 조금은 줄어들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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