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린 Aug 01. 2024

30대 사랑에 관한 고찰(feat. 충격 소개팅썰)

오랜만에 소개팅이 들어왔다. 이성 관계에는 ‘3초 룰’이란 게 있다던데, 주로 남자에게 적용된다고 한다. 하나, 둘, 셋, 3초 만에 파악한 첫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향후 관계를 예측해 준다는 거다. 나는 첫눈에 반하는 타입이 아니고, 금사빠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첫인상의 선입견이 세지는 거 같긴 하다.


젊을 때(어릴 때?)야 젊음 자체가 무기니까 조금 뚱뚱하고 못생겨도 특유의 에너지와 생기, 패기에 푹 빠졌다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수분이 탈탈 털린 마른오징어처럼 생기를 찾기가 서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소개팅이 점점 면접 같아지는 걸까?      


아무튼 이번에 소개받을 남자는 수능 상위 4 퍼쯤 돼야 입학 가능한 대학을 나온 스타트업 직원이라고 했다. 깔끔한 외모에 성격도 좋다는 주선자의 말에 ‘이게 웬 떡이지?’, ‘아직 안 가고 기다리길 잘했군!’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 첫인상

첫 느낌을 말하자면 ‘남자다움’에 반했다. 그 느낌이 구릿빛 피부에서 온 건지, 위풍당당한 몸짓이나 삐쭉 세운 헤어스타일에서 온 건지, 내면의 강인함에서 온 건지 아리송했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의 총합이 그의 분위기이겠지.      


서로 ‘이성적 끌림’을 경험했다는 확신 속에 몇 번 데이트를 하며 기분 좋은 만남을 이어갔다. 그런데 세 번째 데이트 날, 이상하게 그늘져 보이는 그의 표정 때문에 불길한 마음이 스쳤다. ‘내가 갑자기 싫어졌나?’, ‘말실수한 게 있나?’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내가 걱정한 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는 여러 번 시뮬을 돌려본 듯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은 제가 20대 때 40대 선배와 동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사업이 어려워졌는데, 선배가 계속 신규 투자를 하자는 바람에 무리하게 고금리 대출을 많이 받았어요. 결국 사업은 망했고, 빚은 제가 갚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 신불자가 되었고요. 지금은 제1 금융권 계좌 개설은 어렵고, 취업도 프리랜서 고용만 가능해요. 휴대폰과 차, 사는 집도 가족들 명의이고... 언젠가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파산 신청도 고려 중이고요. 솔직히 막막하지만 지금 일하는 곳은 아는 사람과 오래 했으니 당장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     


정신이 아득해지고 귓가가 고장 난 듯 먹먹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말해줘서 고맙다’, ‘생각을 신중히 해봐야 하는 영역 같다’고 대강 얼버무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큰 충격이었다. 내 연애스토리에서 이런 전개는 상상도 못 해봤다.      


잠시 시간을 벌어두고 친구 여럿에게 물어보았다. 조심스럽게 ‘NO’라고 말한 친구가 대부분이었고, 침묵을 지키는 친구도 한두 명 있었지만, ‘GO’를 외치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대였다면 한 번쯤 기회를 줘봤을까? 그런데 우리는 늦은 30대에 진입하였다. 모험심이나 반전을 꿈꾸기에는 시간과 에너지의 총량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국 관계를 접었다. 이런 내가 속물 같기도 하고, 더일찍 얘길 안 해준 그가 야속하기도 하고, 심경이 복잡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감정 소모를 한번 겪으면 연애에 대한 의지와 의욕이 뚝 떨어진다는 거다. 그러면 소개팅이고 뭐고 다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지.


다시 한번 힘을 내고자 부끄럽지만 글을 써본다. 글을 쓰면서 바닥난 에너지도 차오르고, 화난 마음과 복잡한 생각도 정리되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한번 더 힘을 내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1년 2개월만에 브런치를 다시 찾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